비엔나의 궁전/영욕의 빌라

영욕이 점철된 헤르메스 빌라

정준극 2020. 2. 15. 22:23

비엔나의 빌라


빌라라고 하면 우리식으로 연립주택 정도를 연상할지 모르지만 비엔나의 빌라는 그런 것이 아니다. 간단히 말해서 작은 궁전이다. 그래서 빌라를 또 다른 표현으로는 슐뢰쎌(Schlössel)이라고 부른다. 글자그대로 작은 궁전이다. 비엔나 시내와 근교에는 웅장한 궁전들이 있다. 호프부르크와 쇤브룬 궁전, 그리고 벨베데레 궁전 등이다. 모두 관광 1번지들이다. 반면에 비엔나에서 조금만 떨어진 곳에 있는 빌라들은 상대적으로 관심을 받지 못했다. 그러나 만일 비엔나의 자연과 문화예술과 낭만적인 건축예술에 대하여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다면 교외에 산재해 있는 빌라들을 방문해 보는 것도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다. 대표적인 빌라가 헤르메스 빌라이며 이밖에도 클림트 빌라, 오토 바그너 빌라 등이 있다. 그런가하면 좀 더 교외로 나가면 가이뮐러슐뢰셀(Geymüllerschlössel)이 있고 빌라 바르톨츠(Villa Wartholz), 스키바 프리마베시(Skywa-Primavesi) 또는 빌라 바르(Villa Bahr), 그리고 로스하우스(Looshaus) 등도 있다. 주로 히칭과 푀츨라인스도르프에 있다. 비엔나에 와서 시간의 여유가 있으면 이들을 탐방해 보는 것도 큰 즐거움일 것이다. 결코 후회는 하지 않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다만, 인터넷 등을 참조하여서 관람 가능시간 등을 사전에 체크하는 것이 필요하다.


헤르메스 빌라


○ 헤르메스 빌라(Hermes Villa)


씨씨라는 애칭의 엘리자베트 왕비가 잠시 지냈던 빌라이다. 씨씨는 이 빌라를 '꿈의 궁전'(Schloss der Träume)이라고 불렀다. 그만큼 이상적인 아름다운 궁전이라는 뜻이다. 헤르메스빌라에 대하여는 본 블로그의 다른 항목에서 이미 소개하였지만 기억을 되살리는 의미에서 다시 간략히 소개코자 한다. 한마디로 매력적인 곳이다. 쇤브룬 궁전에서 서쪽으로 몇 킬로 거리에 있는 라인츠 자연보호지역 안에 있다. 라인츠 자연보호지역, 또는 야생보호지역은 넓이가 6천 에이커나 되는 광활한 곳이다. 그곳의 한 쪽에 헤르메스빌라가 자리잡고 있는 것이다. 이제 헤르메스빌라가 어떤 점에서 매력적인 곳인지를 알아보자.


헤르메스 빌라. 앞의 기념상은 그리스 신화의 헤르메스. 빌라가 아니라 궁전이다.


첫째, 세기의 왕비 씨씨에 대하여 존경하고 사랑하는 마음이 있다면 반드시 찾아 보아야 할 곳이다. 씨씨에 대하여는 호프부르크에 있는 씨씨박물관도 있지만 그것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씨씨의 공식적인 생활에 대한 것이다. 반면에 프란츠 요제프 황제와 씨씨의 개인적인 생활을 알고 싶으면 헤르메스빌라를 찾아가야 할 것이다. 씨씨는 하나뿐인 아들 루돌프가 자살을 하자 더구나 비엔나의 궁전생활이 싫었다. 지나친 가식과 궁중법도가 씨씨의 자유분방한 생활을 옥죄였다. 그런 중에도 씨씨는 남편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사랑을 기대하였으나 황제는 허다한 공무로 그러하지 못하였다. 씨씨는 기회만 있으면 비엔나의 궁전을 떠나 유럽의 이곳저곳을 방황하였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는 그러한 씨씨의 마음을 붙잡아 두고자 했다. 그래서 라인츠의 한 쪽에 아름다운 궁전을 지어 씨씨로 하여금 마음을 붙이고 지내도록 했다. 하지만 실은 그것도 별로 소용이 없긴 했다. 씨씨는 한동안 헤르메스 빌라에 정착하는 듯 했으나 다시 방황의 여정을 계속하였고 그러다가 스위스에서 어떤 이탈리아 무정부 주의자의 흉기에 찔려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씨씨는 헤르메스 빌라를 마련해준 남편 프란츠 요제프에게 고마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 씨씨는 헤르메스 빌라를 '꿈의 궁전'이라고 불렀다. 씨씨는 간혹 시를 쓰며 여가를 보냈다. 씨씨의 시 중에서 헤르메스 빌라를 셰익스피어의 '한여름 밤의 꿈'에 등장하는 요정나라 여왕 타티아나의 마법의 궁전처럼 표현한 구절이 있다. 씨씨가 헤르메스 빌라를 '꿈의 궁전'이라고 부른 연유를 알수 있다. 오늘날 헤르메스 빌라는 19세기 합스부르크 황제들의 개인 생활 스타일을 볼수 있는 감동을 주는 곳으로서 각광을 받고 있다. 궁전 안에 있는 여러 아름답고 우아한 가구들과 장식물들을 보면 합스부르크의 영화를 짐작할수 있다. 특히 씨씨의 침상이 그러하다. 18세기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 시대의 침상이다. 다행하게도 헤르메스 빌라의 가구들은 두번에 걸친 전화를 모면할수 있었다. 그리하여 오늘날 전시되어 있는 가구들은 당시의 오리지널들이다.


헤르메스 빌라의 씨씨 침실


둘째, 비엔나의 교외에 있다고 해서 볼품 없는 궁전 또는 빌라라고 할수는 없다. 씨씨의 은신처라고 할수 있는 헤르메스 빌라는 당대의 거장 칼 하제나우어가 설계했다. 하제나우어는 비엔나 시내에 있는 여러 슈타트팔레(시내궁전)을 설계했으나 특히 미술사박물관과 자연사박물관을 설계했다. 그런 위인이 설계한 헤르메스 빌라이므로 당당한 건물이 아닐수 없다. 한편, 헤르메스 빌라의 내부는 역사주의와 아르 누보 양식으로 장식되어 있다. 아르 누보 양식은 천재적인 구스타브 클림트의 솜씨이다. 여기에 한스 마카르트(Hans Makart)와 프란츠 마츄(Franz Matsch)의 솜씨도 곁들여져 있다. 씨씨의 신체단련실(체육실)은 특별한 눈길을 끄는 장소이다. 벽면과 천정의 그림과 장식이 인상적이다. 이 방에 씨씨의 흉상과 기타 기념상들이 있다. 또한 발코니의 주물 철책은 아름답기가 이를데 없다. 정원에 나가보자. 완벽하게 조성된 하나의 예술품이다. 아름답게 만들어진 철책 아케이드, 그리고 잘 가다듬은 관목들이 발길을 떼지 못하게 한다. 빌라의 앞에는 그리스의 헤르메스 신상이 있다. 이 빌라를 헌정한 신이다. 빌라의 뒤편에는 분수가 있고 그 건너에 역사적인 마사가 있다. 빌라 뒤편의 정원이 더욱 웅장하고 섬세하다. 그러므로 비엔나의 교외에 있다고 해서 헤르메스 빌라는 뛰 떨어진 건물과 조경이라고 보면 곤란하다.


분수가 있는 빌라의 뒷편 정원


셋째, 헤르메스 빌라는 드넓은 라인츠 야생동물지역의 한쪽에 자리 잡고 있으므로 그 이유만으로도 친숙한 시골에 와서 있는 듯한 느낌을 준다. 건물들의 숲에 싸여 있는 빌라가 아니라 자연 속에 파묻혀 있는 빌라인 것이다. 비엔나 근교에서 이만큼 시골 기분을 낼수 있는 곳은 아마 합스부르크의 사냥숙사가 있는 마이엘링이나 비엔나 숲 정도일 것이다. 한마디도 헤르메스 빌라는 제국의 분위기를 흠뻑 느낄수 있으며 동시에 아름다운 자연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헤르메스 빌라는 가볍게 관람할수 있는 궁전이지만 그보다도 주위의 자연에서 한없이 즐거움을 느낄수 있는 곳이다. 라인츠는 한때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사냥터였지만 오늘날에는 야생동물 보호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이곳에는 멧돼지를 비롯해서 사슴, 양 그리고 수많은 새들이 둥지를 틀고 있다. 오솔길을 산책하면서 야생동물들을 만날수 있는 것은 헤르메스 빌라만이 줄수 있는 특권이다.


라인처 토르


헤르메스 빌라는 일반적으로 봄철과 여름에 문을 열고 있다. 봄철의 종려주일부터 가을의 만성절까지이다. 정확한 관람시간은 인터넷에서 찾아보는 것이 좋다. 간혹 관람금지 구역이 설정되기도 한다. 이 또한 안터넷에서 미리 알수 있다. 교통편은 시내에서 전차 60번을 타고 헤르메스슈트라쎄(Hermesstrasse)에서 내려 다시 버스 60A를 타고 라인처 토르(Lainzer Tor)에서 내리면 된다. 그래서 라인처 토르(라인츠 문)을 통해 들어가면 된다. 빌라는 라인츠 문에서 약 10-15분 걸어가면 나온다. 


헤르메스슈트라쎄/슈파이징거슈트라쎄 전차 정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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