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영욕의 빌라

빌라 봐르톨츠(Villa Wartholz)

정준극 2020. 2. 25. 10:17

○ 합스부르크 최후 황제의 저택 빌라 봐르톨츠(Villa Wartholz)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의 라이헤나우 안 데어 락스(eichenau an der Rax)에 있는 빌라 봐르톨츠는 합스부르크 황실과 무관한 곳이 아니다. 1918년, 1차 대전이 끝날 때까지 합스부르크 최후의 황제인 칼 1세와 황비 치타(Zita)의 저택이었기 때문이다. 칼 1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프란츠 요제프 황제가 1916년에 서거하자 그의 뒤를 이어 제국의 황제로 즉위한 사람이다. 프란츠 요제프 황제에게는 손자가 되는 인물이다. 칼은 그가 아직도 청년일 때에 빌라 봐르톨츠에서 미래의 부인이 되는 치타를 처음 만나 사랑을 느끼게 되었고 그로부터 몇년후에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의 슈봐르차우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1918년에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황제로서 대관식을 가졌다. 합스부르크 최후의 황태자인 오토는 이 빌라에서 태어났다. 오토는 마을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다.


핑크 빛이 아름다운 빌라 봐르톨츠


빌라 봐르톨츠는  1870-72년에 당대의 거장 하인리히 폰 페르스텔(Heinrich von Ferstel)이 역사주의 양식으로 지은 건물이다. 폰 페르스텔은 비엔나의 보티프키르헤와 비엔나 신대학교 본관건물 들을 설계한 인물이다. 빌라 봐르톨츠는  당초에 오스트리아의 칼 루드비히 대공을 위해 지은 것이다. 칼 루드비히 대공(1833-1896)은 프란츠 요제프 황제의 동생이다. 칼 루드비히 대공의 아들이 차기 오스스트리-헝가리 제국의 황위계승자로 지명된 프란츠 페르디난트 대공이다. 페르디난트 대공이 사라예보에서 암살 당하므로서 1차 대전이 촉발되었다. 빌라는 탑이 있는 성채처럼 생겼지만 군사적 목적으로 지은 것은 아니다. 오락용으로 지은 성이다. 성에서 내려다보는 계곡의 경치는 아름답다. 칼 루드비히 대공은 이곳에서 체류하면서 사냥을 즐겼다. 그런데 실은 칼 루드비히 대공의 자택도 이곳에서 머지 않은 락스 강변에 있다.


빌라 봐르톨츠의 온실


라이헤나우 주변 지역은 예전부터 귀족들이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했다. 더구나 빌라 봐르톨츠는 귀족들, 예술가들, 과학자들이 자주 모이는 장소로서 이름나 있었다. 근자에는 아름다운 자연 경관으로 관광지로서도 인기가 높다. 특히 남부철도가 개설되고 나서부터 많은 관광객들이 찾아오고 있는 곳이 되었다. 전쟁이 끝나고 오스트리아 제국이 공화국이 되자 합스부르크 법이 통과되었고 이에 따라 빌라 봐르톨츠는 오스트리아의 국고에 귀속되었다. 합스부르크 가족은 오스트리아 정부에 대하여 빌라 봐르톨츠의 소유권을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하였고 이 소송은 수년간 지속되었지만 아무런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마침내 1973년 오스트리아 정부는 이 빌라는 니더외스터라이히 주정부에 매각하였다. 그후 1982년 부터는 개인소유가 되었다. 봐르톨츠라는 명칭은 근처에 있는 후기 고틱 양식의 유적인 길거리 예배처로부터 유래한 것이다. 이 예배처의 이름은 '기다림'(Wart)였다. 이 예배처의 십자가는 1500년 경에 만들어진 것이라고 한다. 빌라 봐르톨츠에서는 2008년부터 봐르톨츠 문학경연대회가 열리고 있다. 

          

빌라 봐르톨츠의 식당


빌라 봐르톨츠는 평소에 일반이 접근하기 어렵지만 매주 수요일과 일요일에 온실에서 열리는 커피와 케이크 시간에는 두리번 거릴수 있다. 기왕에 빌라 봐르톨츠를 관람할수 있다면 인근에 있는 슐로스 로트쉴트(Schloss Rothschild)에도 들려서 내부를 들여다보고 이어 미술품 전시실을 둘러 보는 것도 큰 수확이다. 슐로스 로트쉴트는 19세기에 바론 나타니엘 로트쉴트가 지은 것이다. 웅장하고 매력적인 저택이다. 주소는 봐이트호펜 안 데어 입스(Waidhofen an der Ybbs)의 슐로스베그(Schlossweg) 2번지이다.



라이헤나우 안 데어 락스에 있는 슐로스 로트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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