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의 궁전/영욕의 빌라

클림트 빌라

정준극 2020. 2. 29. 12:15

클림트 빌라


클림트 빌라


클림트를 모르는 사람을 없을 것이다. 오스트리아가 자랑하는 세계적인 화가이다. 그가 그린 '키스' 또는 '유디트' 등은 거리의 기념품 상점 같은 곳에서도 쉽게 만날 수 있는 작품이 되어 있다. 클림트는 비엔나에서 활동하면서 여러 장소에 스튜디오를 가졌었다. 하지만 오늘날 온전하게 보전되어 있는 스튜디오는 한군데 밖에 없다. 히칭의 클림트 빌라이다. 클림트가 1911년부터 1918년까지 살았던 집이다. 1차 대전의 와중에 살면서 작품활동을 했던 집이다. 윗 사진에서 보는대로 아름답고 단아한 건물이다. 주소는 비엔나의 13구 히칭의 펠트뮐가쎄(Feldmuhlgasse) 11번지이다. 베스트반호프(서부역)에서 전치 58번을 타고 운터 장크트 바이트(Unter St Veit)에서 내리면 된다. 또는 지하철 U4를 타고 운터 장크트 바이트 역에서 내려 찾아도 된다. 클림트 빌라는 1월 8일부터 12월 31일까지 문을 연다. 화요일부터 일요일까지이며 월요일은 문을 닫는다. 공휴일에도 문을 연다. 그만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다는 증거이다. 오전 10시에 문을 열어 오후 6시에 문을 닫는다. 입장료는 2020년 현재 10 유로이다. 클림트 빌라는 쇤브룬에서 가까운 곳에 있기 때문에 쇤브룬에 들른 다음에 시간을 내서 클림트 빌라를 가도 무방할 것이다.


클림트 빌라 1층의 작업실 복원


운터 장크트 바이트 지역은 비엔나에 속해 있으면서도 시골 답게 조용하고 한적한 곳이다. 하기야 최근에는 집들이 많이 들어서서 그런 한적함은 점차 사라지고 있지만 말이다. 클람트 빌라는 운터 장크트 바이트의 넓직한 공원의 한 쪽에 자리잡고 있는 네오 바로크 스타일의 건물이다. 클림트가 이 집에서 지낼 때에는 집의 모습이 오늘날 처럼 되어 있지는 않았다. 세기말(Fin-de-Ciecle)의 비엔나에서는 교외에 오두막집과 같은 주택을 가지는 경향이 많았다. 이 빌라도 마찬가지였다. 단층의 오두막집이었다. 다만, 정원만은 로맨틱하였고 집 주변에는 과일나무들이 빽빽히 들어서 있었다. 다시 말해서 클림트는 사치스러운 빌라에 살지 않았다. 당시의 사람들이 클림트 빌라라고 하니까 왕족이나 귀족 부호들의 빌라를 연상했을지 모르지만 전혀 그런 타입이 아니었다. 세월이 흐름과 함께 오두막집과 같은 빌라는 한 층을 높이는 등 점차 확장되었다. 클림트의 작업실이었던 그라운드 틍(우리 식으로 1층)은 오리지널 오두막집 형태를 최대로 간직코자 했다. 커다란 장방형 유리창에서 쏟아져 들어오는 햇빛이 화가의 작업실이란 것을 금방 알게 해 준다. 창문 밖으로는 정원이 펼쳐지는데 바로 눈 앞에 다가서 있는 것 같다. 클림트는 이 작업실에서 12 점의 작품을 완성했다고 한다. 그리고 수백장에 이르는 소묘도 남겨 놓았다. 위의 사진에서 볼수 있듯이 작업실의 이젤에는 '신부'와 '부채를 든 여인'의 복사품이 전시되어 있다.


1층의 거실


다른 방에 있는 가구들은 미안한 말이지만 거의 모두 오리지널이 아니다. 개중에는 오리지널을 복원한 가구들도 상당수가 있다. 당시의 사진을 보고 가구들을 복원한 것이다. 빌라에 전시되어 있는 클림트의 그림들은 모두 복사품이지만 계단 등에 붙어 있는 스케치 작품들은 대부분 오리지널이다. 아무튼 클림트는 이 빌라에서 수많은 스케치 작품들을 남겼다. 그중에서도 '안락의자에 앉아 있는 여인'의 초상화는 대표적이다. 클림트 빌라는 오늘의 모습으로 보존하게 된 데에는 '클림트 협회'와 '예술및 치료교육 재단'(Trust of Artistic and Healing Education)의 노력이 컸다. 오스트리아 최고의 화가인 클림트에게 다대한 영감을 준 스튜디오를 복원하는 일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니었다고 한다. 클림트가 영향을 받은 외국, 특히 아시아의 미술, 여인들, 자연의 역동성, 과수원, 그리고 집안에 널려 있는 장식품에 이르기까지를 한 곳에서 모두 보여 줄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었다.

               

클림트의 동양 사랑이 엿보이는 방


클림트는 동아시아 미술을 사랑하였다. 빌라의 또 다른 전시실을 살펴보자. 벽면에 일본 목판화들이 전시되어 있다. 가느다란 분위기의 가구는 요제프 호프만이 솜씨이다. 바닥에는 커다란 유겐트슈틸 카펫이 깔려 있다. 다시 말하지만 클림트가 매력을 느끼고 영감을 얻은 대상은 동양의 장식품들, 동양적인 색채, 동양의 가면들, 그리고 무엇보다 누드의 여인들이었다. 클림트의 누드 초상화들은 일본의 에로틱한 판화로부터 영감을 받았다는 얘기다. 당시 비엔나의 분리주의자들이 추구했던 사항 중의 하나는 유럽 이외의 지역에서의 예술을 유럽 예술에 접목하는 것이었다. 클림트은 공교롭게도 일본 미술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이다.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스',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1'과 '아델레 블로흐 바우어 2', 또는 '생명의 나무' 등과 동양 미술의 연관성은 쉽게 발견할 수 있는 것이다.


'장미가 있는 과수원'


1층(우리 식으로는 2층)과 발코니 등은 1923년의 로맨틱한 비엔나의 '장미의 기사' 스타일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스타일은 클림트 자신이 꾸민 것이 아니라 그후에 살던 사람들이 꾸민 것이다. 나무 판자들을 이어서 붙인 마루와 램프(아랫층으로 내려가는 계단)는 20세기 분위기이다. 윗층에는 클림트의 대표작 중에서 몇 점의 복사품이 전시되어 있다. '아델레 블로흐 1'과 '아델레 블로흐 2', 그리고 '해바라기'이다. 1층에는 피아노 한대가 놓여 있다. 아마도 사교 모임에 필요했던 것이리라. 아무튼 1층은 작업하기에 편하도록 스페이스가 넓은 것이 특징이다. 뒷 정원으로 내려가는 길애는 섬세한 주물 철책이 설치되어 있다. 아무튼 이 빌라를 복원할 때에 연방유산청Bundesdenkmalamt)는 가능한한 100년 전의 모습을 손상하지 않는 방향으로 추진하였다. 그러한 생각 때문인지 정원도 종전 그대로 보존하였다. 클림트의 '장미가 있는 과수원'(Orchard with Roses)는 1912년 이 정원에서 그린 것이다. 다만, 실제의 정원과 그림에서 보인 정원은 차이가 있다. 비엔나에서 클림트의 오리지널 작품을 만날수 있는 곳은 '레오폴드 미술관', '벨베데레 미술관', '응용-현대 미술관'(MAK)등이다. 그리고 비엔나의 제체시온에서는 클림트의 '베트벤 프리즈'(Beethoven Frieze)를 볼수 있다. 


클림트 빌라는 결혼식 장소로 사랑을 받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