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페라 이야기/오페라 이해하기

오페라가 뭐길래?

정준극 2007. 5. 7. 15:54

오페라가 뭐길래?

Opera의 복수형태는 Operas 이다

이탈리아가 원산지인 종합공연예술

 

베르디의 '돈 카를로'의 한 장면. 메트로폴리탄 오페라하우스. 오페라는 음악, 연기, 배경, 의상, 조명, 소도구 등이 복합된 종합예술이다.

                        

오페라(Opera)라는 단어는 라틴어에서 작품이라는 뜻인 오푸스(Opus)라는 단어의 복수형태이다. 그러므로 오페라라는 단어는 '작품들'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오늘날 오페라라는 단어는 공연예술의 한 형태를 말하는 독립적인 단어로 정착되었다. 그래서 오페라라는 단어가 이미 복수형태임에도 불구하고 오페라의 복수를 표현하는 단어가 생겼다. 영어에서는 오페라스(Operas)이며 이탈리아어에서는 오페레(Opere)이다. 이제 단어에 대한 소개는 끝났으므로 '오페라는 무엇인가?'라는 주제로 들어가보자. 오페라는 연극이나 무용처럼 공연예술의 한 장르이지만 실은 그 모든 것을 종합한 공연예술이다.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오페라는 성악가들과 악기를 연주하는 음악인들이 텍스트와 음악으로 구성된 드라마틱한 작품을 공연하는 것이다. 오페라의 음악은 보통 스코어(Score)라고 부르며 오페라의 텍스트는 리브레토(Libretto)라고 부른다. 리브레토는 글자그대로 풀이하면 '작은 책'이다. 오페라 한 편에 나오는 대사 또는 가사를 적어 놓으면 한 권의 작은 책이 되기 때문이다. 오페라를 공연할 때에는 대체로 무대 세팅을 한다. 극적인 분위기를 연출하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무대 세팅은 의무사항은 아니다. 어떤 건물이나 자연을 있는 그대로 무대의 배경으로 삼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궁전 안에서나 또는 교회에서 별도의 무대배경을 만들어 놓지 않고도 오페라를 공연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오페라는 일반적인 연극의 여러 요소들을 종합하고 있다. 연극처럼 연기(액팅), 배경, 의상 등을 갖추며 어떤 경우에는 춤도 곁들인다. 대화체의 대사는 그대로 대사로서 말할 수도 있고 음악 반주에 맞추어 말할 수도 있다. 음악반주에 맞추어 대사를 말하는 것을 레시타티브(Recitative)라고 부른다. '낭송하다'는 뜻의 단어인 리사이트(Recite)에서 파생된 단어이다. 오페라는 일반적으로 오페라극장(오페라 하우스)에서 오케스트라 혹은 소규모의 앙상블의 반주로 공연한다. 하지만 장소와 무대가 중요한 것은 아니다. 야외에서도 공연할수 있고 심지어는 공장이나 지하철 역에서도 공연할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여러 어려운 용어를 섞어가면서 오페라가 무엇인지 설명했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오페라는 음악, 연극, 무용의 기본 요소로 구성된 종합적인 공연예술이며 여기에 무대장치, 조명, 분장, 의상, 소도구, 음향기술 등이 가미된 종합예술이라고 보면 된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역사상 첫 오페라로 간주되고 있다. 그 전에도 오페라가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지만 오페라라고 부르기에는 완벽한 것이 되지 못하였고 더구나 스코어가 분실되어서 어떤 음악인지도 모르기 때문에 그것은 첫 오페라로 간주하지 않고 있다.

 

오페라는 서구의 고전음악 전통을 이어 받은 예술분야이다. 오페라는 16세기 말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었다. 역사상 첫 오페라라고 불리는 작품은 1598년 플로렌스(피렌체)에서 공연된 자코포 페리(Jacopo Peri)의 '다프네'(Dafne)라고 한다. 그런데 실은 '다프네'의 스코어가 분실되어서 어떤 내용의 오페라인지 모른다. 그래서 혹자들은 1607년에 초연을 가진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Claudioo Monteverdi)의 '오르페오'(L'Orfeo)를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라고 내세우고 있다. 스코어가 온전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그거야 어찌되었든 아무튼 이탈리아의 피렌체(플로렌스)에서 출발한 오페라는 유럽의 각지역으로 전파되었다. 그러는 한편으로 독일에서는 하인리히 쉬츠(Heinrich Schutz), 프랑스에서는 장 바티스트 륄리(Jean-Baptiste Lully), 영국에서는 헨리 퍼셀(Henry Purcell)이라는 뛰어난 작곡가들이 등장하여 '어떻게 하면 우리나라의 전통있는 오페라를 만들수 있을까?'라며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8세기에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유럽의 거의 모든 곳을 압도하고 있었다. 단, 프랑스만은 예외라고 할수 있지만 그래도 프랑스에서의 이탈리아 영향은 무시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그나저나 프랑스 오페라의 아버지라고 할수 있는 장 바티스트 륄리도 실은 이탈리아 출신이다. 당시 이탈리아 오페라의 가장 대표적인 형태는 오페라 세리아였다. 오페라 세리아(Opera seria)는 '무겁고 심각한 내용의 오페라'라고 말할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코믹 오페라 또는 오페라 부파에 대하여 순수오페라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장 바티스트 륄리의 '아르미드'에서 댄스의 장면. 프랑스 오페라에서는 댄스가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유럽의 여러 곳에서 이탈리아 오페라가 독점적인 역할을 하게 되자 이에 따라서 이탈리아의 오페라 작곡가들도 유럽의 곳곳으로 자리를 옮겨 활동했다. 프랑스의 장 바티스트 륄리도 실은 이탈리아인이었고 영국의 헨델은 독일에서 태어났지만 이탈리아에서 이탈리아 오페라에 전념했던 인물이며 그밖에도 신성로마제국의 수도인 비엔나에도 안토니오 비발디와 안토니오 살리에리와 같은 이탈리아 오페라 작곡가들이 활동하고 있었다. 독일도 마찬가지였다. 크리스토프 빌리발트 글룩이라는 걸출한 작곡가가 등장했지만 그 역시 이탈리아 오페라를 만들었다. 18세기에 가장 위대한 작곡가인 모차르트도 이탈리아 오페라를 만들었다. 처음에는 이탈리아어 대본에 의한 오페라 세리아를 만들다가 나중에는 코믹 오페라를 만들었다. '피가로의 결혼'(Le nozze di Figaro). '돈 조반니'(Don Giovanni), '여자는 다 그래'(Cosi fan tutte)가 대표적이다. 이와 함께 모차르트는 '후궁에서의 도주'와 '마술피리'를 통해 독일어 대본의 오페라를 위한 랜드마크를 세워주었다.

 

모차르트의 '피가로의 결혼'에서 케루비노가 백작부인을 위해  만든 노래를 수잔나의 반주에 따라 부르고 있는 장면

 

19세기의 상당기간은 벨칸토 스타일이 정점을 이루었다. 로시니, 도니체티, 벨리니의 벨칸토 오페라들은 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되는 작품들이다. 19세기 초반에는 또한 프랑스에서 다니엘 오버와 자코모 마이에르베르 등에 의한 그랜드 오페라가 선을 보이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부터 후반까지는 오페라의 '황금시기'로서 특별히 이탈리아에서는 베르디가, 독일에서는 바그너가 오페라의 무대를 주도하였다. 오페라의 '황금시기'는 20세기 초반에도 계속되었다. 이탈리아에서는 베리스모 오페라가 등장하였고 프랑스에서는 현대적 감각의 프랑스 오페라가 나타났다. 푸치니와 리하르트 슈트라우스의 작품들이 세계 무대를 장식하였다. 19세기에는 서구의 오페라 전통이 동구에도 전파되었다. 러시아와 보헤미아(현재의 체코 공화국)에서 활발하였다. 20세기 중반부터는 현대적인 여러가지 새로운 스타일들이 시도되었다. 예를 들면 아놀드 쇤버그와 알반 베르크에 의한 무조주의(Atonality)와 병렬주의(Serialism)이다. 이어서 이고르 스트라빈스키에 의한 신고전주의(Neoclassicism), 필립 글라스와 존 아담스 등에 의한 미니말리즘(Minimalism)이 등장하였다. 20세기에 있어서는 한편으로 녹음기술의 발달로 엔리코 카루소와 같은 위대한 성악가들의 노래를 편하게 들을수 있게 되었다. 레코드는 오페라 인구의 저변확대에 크게 기여하였다. 오페라는 또한 반드시 오페라극장의 무대에서뿐만 아니라 라디오와 텔리비전을 통해서 보급되었다. 지금까지가 대체적인 오페라의 역사이며 이제부터 좀 찬찬히 들여다 보기로 한다. 

 

하인리히 쉬츠의 '다프네'의 한 장면. 베니스의 라 페니체 무대.

 

[오페라 용어]

오페라의 언어는 대본(리브레토)이라고 한다. 어떤 작곡가들은 직접 자기 오페라의 대본을 쓰기도 했다. 예를 들면 리하르트 바그너이다. 대부분 작곡가들은 전문 대본가와 협동하여 오페라를 만들었다. 모차르트가 로렌초 다 폰테와 콤비가 되었던 것은 좋은 예이다. 전통적인 오페라는 '넘버 오페라'(Number opera)가 대부분이다. 노래에 있어서 두가지 모드로 구성되어 있다. 하나는 레시타티브이며 또 하나는 아리아이다. 레시타티브는 대사를 음악반주에 맞추어서 얘기하는 스타일이다. 아리아는 출연자가 자기의 감정을 보다 확실하게 표현하는 노래이다. 오페라에서는 듀엣, 트리오, 쿼텟 등 중창이 나올수 있고 합창은 어떤 액션에 대한 코멘트로서 이용된다. 오페라에는 여러 형태가 있다. 그중에서 징슈필, 오페라 코미크, 오페레타, 세미 오페라 등에서는 음악 반주에 의한 레시타티브를 사용하지 않고 그냥 대화체의 대사로 말하는 경우가 많다. 레시타티브의 중간에 멜로디 스타일의 구절이 나오는 것은 아리오소라고 부른다. 바로크 시기와 고전 시기에는 레시타티브가 두개의 기본 형태를 갖추었다. 세코(Secco)라는 것과 아콤파냐토(Accompagnato)라는 것이다. 세코라는 것은 드라이(dry)하다는 뜻이다. 주로 단어의 악센트에 의해서 자유롭게 리듬을 붙여서 말하는 것이다. 세코는 콘티누오(continuo)의 반주로 부른다. 콘티누오는 하나의 저음 악기로 연주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프시코드 또는 첼로가 사용된다. 아콤파냐토는 오케스트라가 반주를 하는 것을 말한다. 아콤파냐토는 스트루멘타토(Strumentato)라고 부르기도 한다. 19세기 까지는 오페라에서 아콤파냐토가 우세를 보였다. 그만큼 오케스트라의 역할이 커졌다. 그런데 리하르트 바그너는 오페라에서 레시타티브와 아리아의 구분을 거의 없애는 가히 혁명적인 작곡을 하였다. 바그너는 '끊임이 없는 멜로디'를 모색했던 것이다. 바그너 스타일을 따른 작곡가들로서는 스트라빈스키를 들수 있다. 그의 '난봉꾼의 행로'(The Rake's Progress)가 그러한 스타일을 표방하였다.

 

스트라빈스키의 '난봉꾼의 행로'. 현대적 연출. 함부르크 슈타츠오퍼

 

[오페라의 오리진]

오페라라는 용어를 처음 사용했을 때에는 단순히 라틴어의 '작품' 또는 '작업'이라는 단어의 복수형태로만 생각하지는 않았다. 솔로(독창)과 합창, 낭송, 연기, 춤이 종합되어 무대에서 스펙터클하게 펼쳐지는 예술을 말했다. 앞에서도 언급했듯이 1597년에 공연된 자코포 페리의 '다프네'라는 오페라가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되고 있지만 불행하게도 스코어가 분실되어서 어떤 형태의 것인지 알수가 없다. 다프네는 당시 '바르디의 방'(Camerata de' Bardi)에 모인 플로렌스의 인본주의자들, 즉 엘리트 서클에 속한 사람들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다프네'는 고전적인 그리스의 드라마를 리바이발하려는 시도로서 만들어진 것이다. 그리스의 연극을 재현하려는 노력을 르네상스의 일환으로 간주하였다. 카메라타의 멤버들은 그리스 연극에서 코러스 파트는 원래 노래를 부르는 파트라고 생각했다. 심지어 코러스 파트뿐만 아니라 다른 출연자들도 노래를 불렀다고 믿었다. 그래서 당시의 연극에서도 그런 노래 부르는 상황을 다시 부활하자는 것이 원래 의도였다. 그러다보니 앙상블의 음악 반주가 필요했고 솔로도 필요했으며 중창도 필요했고 합창도 필요하게 되었다. 이렇듯 연극에 음악을 가미한 것이 초기의 오페라였다. 그리고 그 연극들의 내용은 주로 고대 그리스의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었다. 자코포 페리의 '다프네' 스코어는 분실되었지만 그 다음에 발표한 '에우리디체'(1600)는 스코어가 남아 있다. 그래서 학자들은 자코포 페리의 '에우리디체'가 최초의 오페라라고 내세웠다. 그런데 당시의 오페라로서 오늘날에도 자주 공연되는 작품이 있다. 클라우디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이다. 1607년에 만투아 궁에서의 공연을 위해 작곡한 것이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페리의 작품보다도 보다 본격적인 오페라라는 인상을 주는 것이었다. 그래서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를 최초의 오페라로 간주하는 학자들도 많이 있다. 당시에 만투아의 곤자가 가문은 몬테베르디를 고용하여 오페라의 공연을 크게 지원하였다. 그래서 성악가들을 처음으로 고용하여 활용했다. 이들을 콘체르토 델레 돈네(concerto delle donne)라고 불렀다. 여성 합창단이었다. 만투아 궁에서는 실제로 오페라의 주인공이 되는 성악가를 고용하기도 했다. 마다마 에우로파(Madama Europa)는 역사상 최초의 오페라 프리마 돈나라고 볼수 있다. 원래 그의 이름은 에우로파 로시(Europa Rossi)였다. 그러다가 신화에 나오는 에우로파(유럽)의 이름을 따서 예명으로 사용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 오슬로 국립오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