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틀: Fidelio. 전2막. 독일어 대본은 장-니콜라스 부일리(Jean-Nicolas Bouilly)의 소설 L'amour conjugal(Der Triumph der ehelichen Liebe: 결혼한 사랑의 승리)을 바탕으로 요셉 폰 존라이트너(Joseph von Sonnleithner)가 썼다. 휘델리오는 여주인공 레오노레의 극중 가명이다.
초연: 1805년 11월 20일 비엔나 테아터 안 데아 빈(Theater an der Wien). 이듬해 3월 20일 같은 극장에서 수정본 초연. 이듬해 5월 23일 비엔나의 캐른트너토르극장에서 개정본 초연
주요배역: 레오노레(휘델리오로 가장한 플로레스탄의 부인), 플로레스탄(레오노레의 남편: 정치범), 돈 피짜로(형무소장), 로코(형무소 간수), 마르첼리네(로코의 딸), 야퀴노(로코의 조수), 돈 페르난도(스페인 귀족, 장관)
음악적 하이라이트: 트럼펫 시그널, 기적적 구조를 표현한 멜로디, 자유에 대한 송가, 죄수들의 합창에 따르는 모티프, 경이로운 4중창, 레오노라의 아리아에 대한 호른 모티프, 플로레스탄의 아리아, 플로레스탄의 아리아에 대한 오보에 멜로디
베스트 아리아: Ha! Welch' ein Augenblick![아, 그대의 눈길](T), Hat man nicht auch Gold daneben[황금에 문이 멀지 않은 사람도 있지요](S), O welche Lust[오 얼마나 큰 기쁨인가](이시스 신전 승려들의 합창), Mir ist so wunderbar[얼마나 좋은지](S), Abscheulicher! Wo eilst du hin?[더러운 인간! 어디를 급히 가는가?](S) Gott! welch' Dunkel hier![하나님이여, 이곳은 어찌하여 이다지도 어두운가요?](T)
사전 지식: 사랑의 힘으로 억압에서 자유를 얻는다는 해피엔딩 이야기. 베토벤은 관현악의 거장이다. 그의 교향곡은 전율을 느끼게 할 정도로 위대하다. 당연히 이 오페라에서도 오케스트라 연주와 합창곡이 효과적으로 조화되어있다. 휘델리오는 징슈필(Singspiel) 형태이다. 1805년의 초연은 그런대로 성공이었으나 그렇다고 대단한 성공도 아니었다. 당시 비엔나를 프랑스군이 점거하고 있었기 때문에 오페라에 대한 관심이 적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814년의 수정본 공연은 위대한 승리였고 그로부터 악성 베토벤의 위대함은 누구도 부인할수 없는 것이 되었다. 오페라의 어떤 부분에서는 모차르트의 영향을 받은 것을 알아 볼수 있다. 그보다도 갸보(Gaveaux) 또는 패르(Paer)의 영향을 받았다는 해석도 있다. 무엇보다도 베토벤은 당시 프랑스 혁명을 다룬 케루비니와 메울의 작품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았다고 한다.
에피소드: 휘델리오는 베토벤이 남긴 유일한 오페라이다. 베토벤은 원래 오페라에 대하여 별 관심이 없었다. 그러다가 잘하면 돈을 벌수 있다는 친구들의 권유로 마지못해 쓰게 되었다. 완벽을 기하는 베토벤은 이 오페라를 수없이 고쳐 썼다. 주인공 플로레스탄(Floretan)의 첫 아리아는 무려 16 번이나 다르게 작곡했다. 마음에 안 든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동안의 16곡을 적은 오선지는 무려 346페이지에 달했다. 베토벤은 그 중에서 단 한 곡만을 사용했다. 서곡은 완전히 다른 4편을 썼다. 베토벤이 작곡한 4편의 서곡 중 처음 3편은 정작 휘델리오 공연 때에는 한번도 연주되지 않고 있다. 그냥 ‘레오노레 서곡 1번, 2번, 3번’이라고 부를 뿐이다. 비록 오페라 공연에서는 서곡으로 사용되지 않고 있지만 모두 훌륭한 작품으로서 영광을 받고 있다. 그 중에서 오늘날에도 가장 많이 연주되는 서곡은 제3번이다. 네 번째 서곡은 그냥 ‘휘델리오’에 붙인 서곡이라고 부른다. 초연은 그런대로 성공이었다. 그러나 베토벤은 만족하지 못했다. 그는 초연이후에도 악보 고치기를 계속했다. 친구들은 이제 더 이상 고치지 말라고 간청했으나 베토벤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다. 휘델리오가 처음 완성되었을 때는 3막이었으나 길다고 생각한 베토벤이 2막으로 줄였다.
원래 이 오페라의 타이틀은 레오노레였다. 하지만 레오노레라는 이름의 오페라가 이미 여러 편 나와 있었기 때문에 혼돈을 주기 싫어하는 베토벤은 제목을 고치기로 했다. 그래서 휘델리오가 되었다. 오페라 휘델리오의 무대는 스페인의 세빌리아이다. 자유분방한 집시 여인 카르멘, 유쾌한 반항아 피가로(세빌리아의 이발사), 그리고 ‘운명의 힘’에 의하여 복수극에 휘말려야 했던 알바로와 그의 연인 레오노라가 생각나는 곳이다. 그렇지만 휘델리오의 무대인 세빌리아에서는 매력적인 노래와 춤, 유쾌한 코미디, 운명적인 결투장면 같은 것은 찾아 볼 수 없다. 다만 베토벤의 휘델리오와 베르디의 ‘운명의 힘’ 사이에서 공통점이 있다면 여주인공의 이름이 레오노레(Leonore)와 레오노라(Leonora)라는 것, 그리고 둘다 남장을 하고 나온다는 점이다.
줄거리: 시대는 1700년대. 장소는 스페인의 세빌리아 인근의 어느 형무소. 줄거리를 시작하기 전에 한마디: 플로레스탄(Florestan)은 좋은 사람이다. 혁명을 지지하는 스페인의 귀족이다. 좋은 사람이 있으면 나쁜 사람이 있기 마련이다. 이 경우에는 형무소장 피짜로(Pizzaro)이다. 이름을 보면 피짜를 아주 잘 먹는 사람이라고 생각되지만 피짜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왕당파인 피짜로는 혁명의 주도인물인 플로레스탄과 개인감정도 있는 터이므로 그를 납치하여 형무소 지하 깊숙한 골방에 집어넣고 플로레스탄이 죽었다는 소문을 퍼뜨린다. 하지만 플로레스탄의 아내인 열녀 레오노레(Leonore)는 이 소문을 믿지 않는다. 급기야 남편을 구해야 한다는 일념으로 남장을 하고 형무소의 간수보조로 취직한다. 이름도 바꾼다. 새로운 이름은 휘델리오이다. 아무도 휘델리오라는 새로온 간수 보조원이 여자인줄 모른다.
제1막, 남장의 레오노레/휘델리오는 간수장인 로코(Rocco)로부터 지하 깊숙이 별도의 감방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낸다. 한편, 악질 형무소장 피짜로에게 급한 편지가 한 장 온다. 총리대신 각하가 형무소를 시찰하기 위해 곧 온다는 내용이다. 피짜로는 총리대신이 오기 전에 속히 정적 플로레스탄을 처형키로 마음먹는다. Ha! Welch' ein Augenblick!(아, 얼마나 좋은 기회인가?)는 기회주의자 피짜로의 아리아이다. 그는 간수장인 로코에게 어서 속히 플로레스탄을 처형하라고 지시한다. 하지만 로코는 그 지시를 거부한다. 자기 이력서에 ‘잔인한 살인자’라고 기록될 것을 걱정했던 것 같다. 한편, 남편에 대한 처형명령 소식을 들은 레오노레/휘델리오는 몹시 당황한다. 레오노레/휘델리오는 분명히 이 감방속에 사랑하는 남편이 갇혀 있을 것으로 믿고 로코를 설득하여 죄수들을 밖에 나와 산책하도록 한다. 이때에 죄수들이 부르는 합창. 기막히게 좋다. ‘광명을 향하여! 자유를 향하여!’이다. 가슴을 울리는 거룩한 남성합창곡이다. 그러나 죄수들 중에 남편은 없었다.
제2막에 들어와서야 쇠사슬에 얽매인 주인공 플로레스탄이 처음으로 무대에 등장한다. 그는 베토벤의 노래를 부른다. ‘신이시여, 이곳은 어찌하여 이토록 어둡나이까?’(Gott! Welch' dunkel hier!)이다. 플로레스탄은 레오노라/휘델리오의 곁을 지나치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아보지 못한다. 그러나 휠링(Feeling)이라는 것이 있지 않는가? ‘여보! 나요, 나!’ 이렇게 하여 두 사람은 극적으로 만난다. 이러한 때에 악독한 피짜로가 등장하지 않을수 없다. 피짜로는 아직 사형이 집행되지 않은 것을 알고는 자기가 직접 사형집행인까지 겸직키로 작정한다. 칼을 들어 플로레스탄을 찌르려는 순간, 레오노라/휘델리오가 ‘죽이려면 그의 부인부터 먼저 죽이시오!’(Tot' erst sein Weib!)라고 외치면서 남편의 앞을 가로 막고 나선다.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총리대신 각하가 극적으로 현장에 나타난다. 모든 사정이 밝혀진다. 사필귀정! 피짜로는 감옥행, 두 사람은 행복한 이중창이다. 얘기가 좀 더 발전되어 총리대신과 플로레스탄이 실은 옛날 친구였다는 사실도 밝혀진다. 죄수들이 부르는 환희의 합창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 슈타츠오퍼(Staatsoper)와 휘델리오
비엔나의 중심지에는 두 개의 기념비적인 건물이 있다. 슈테판성당과 국립오페라극장(Staatsoper)이다. 슈테판성당이 비엔나의 심장(Heart)이라면 슈타츠오퍼(Oper라고 함)는 비엔나의 영혼(Soul)이다. 오퍼(Oper)의 건물은 역사적인 여러 스타일을 복합하여 건축되었다. 두 사람의 당대 유명한 건축가가 건축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 건물이 독창성이 없다고 논란을 벌였다. 황제 자신도 이 오페라극장에 대하여 별로 관심이 없다는 식으로 대하였다. 시민들의 비난과 황제의 무관심에 충격을 받은 건축가중 한 사람은 자살했다. 또 한 사람 역시 얼마 후에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건축가들의 비운에도 불구하고 이 오페라극장은 그후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게 되지만 오퍼를 세계 제일의 공연장으로 만든 것은 건물이 아니라 공연되는 작품과 출연자의 수준이었다. 슈타츠오퍼 개관기념 공연은 모차르트의 ‘마적’이었다. 이를 기념하여 지금도 슈타츠오파 2층 회랑에는 마적의 여러 장면을 대형 타페스트리에 담은 작품들이 걸려 있다.
1945년 3월, 2차 세계대전의 마지막 와중에서 슈타츠오퍼는 폭격을 받아 잿더미가 되었다. 그날, 비엔나 시민들은 모두 눈물을 흘렸다. 시민들은 너나 할것 없이 오페라극장에 모여 부서진 파편 하나하나를 정성껏 주워 모았다. 어느 때가 되었든 복구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전쟁이 끝나고 모든 것이 어려운 때에, 비엔나 시민들은 다른 무엇보다도 오페라극장의 재건을 생각했다. 정부도 오페라극장 복구비를 우선적으로 배정했다. 부족한 경비는 시민들의 성금으로 충당했다. 재건에는 10년이 결렸다. 1955년 9월, 슈타츠오퍼의 재건 기념으로 휘델리오가 공연되었다. 비엔나뿐만 아니라 오스트리아 전국이 기쁨에 쌓였다. 극장에 들어가지 못한 수많은 시민들은 극장 밖에서 스피커를 통해 공연 실황을 들었다. 감격과 환호의 도가니였다. 특히 죄수들의 합창인 ‘어둠에서 빛을!’이 장엄하게 흘러나오자 모두들 전쟁으로부터의 자유와 해방의 기쁨을 되새기며 눈시울을 적셨다. 공연이 끝났지만 거리의 시민들은 아쉬움과 감격 때문에 극장 주변에서 발길을 돌리지 못했다. 극장안에 있던 사람들은 더 집에 가지 못했다. 길이 막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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