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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안티와 원자력

정준극 2007. 5. 18. 18:50
 

키안티와 원자력


이탈리아 와인 중에 키안티(Chianti)라는 것이 있다. 와인을 좋아하는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모를 리가 없는 이탈리아의 대표적인 와인이다. 문예부흥의 발상지인 피렌체(플로렌스)에서 자동차로 한시간 정도 걸리는 곳의 키안티구릉지대가 이 적포도주의 고향이다. 상당수 이탈리아 사람들은 키안티를 이탈리아의 대표급 와인으로 서슴없이 추천한다. 한번 맛을 들이면 잊지 못하고 또 찾게 된다는 그럴듯한 선전의 영향도 작용했겠지만 그보다도 자기들도 이탈리아를 대표하는 와인이 있어야 겠다는 의식에서 키안티를 내세운 모양이다. 그래서인지 외국에서 이민생활을 하고 있는 이탈리아 사람들은 키안티 한잔을 앞에 놓고 향수에 젖은 듯 공연히 머뭇거리는 모습을 간혹 목도할수 있다. 그 한잔의 와인이 키안티 중에서도 귀부인에 속한다는 키안티 크라시코이면 더욱 그럴것이다. 이렇듯 이탈리아 사람들이 키안티에 대하여 애정을 갖고 있는 반면에 다른 나라 사람들은 별로 관심이 없는 눈치다. 프랑스 사람들은 짐짓 ‘키안티? 그게 뭐지?’라는 식이고 독일 사람들은 한폼 재느라고 ‘아, 그런게 있지! 근데 깊은 맛이 없어! 자프트(주스)같아!’라는 은근한 코멘트이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사람들도 이같은 프랑스나 독일의 관점에 동조하고 있음은 나름대로 연유가 있을법하다. 사실 포도주 팬들이야 키안티에 대하여 상식이 있겠지만 와인보다는 진로를 선호하는 사람들로서는 키안티가 뭐 말라 죽은 것인지 관심도 없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 원자력을 하는 사람들의 경우에는 키안티에 대하여 관심 있는 추억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만일 원자력사람들의 모임에 키안티가 한병쯤 등장하게 되면 ‘아니, 이거 키안티 아닌가?’라면서 자못 감개가 깊은 듯 시선을 허공에 두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노장들이지만! 


유럽에서 히틀러와 무솔리니가 기세를 부릴 당시,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엔리코 페르미(Enrico Fermi)는 사랑하는 부인 라우라(Laura)가 유태인이었기 때문에 나치의 핍박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미국 망명을 결심했다.  페르미의 망명 작전은 미국의 입장에서 상당히 조심스럽게 추진되었다. 혹시라도 히틀러나 무솔리니가 ‘아니, 지금 당신 어디 가시오?’라면서 훼방을 놓지나 않을까 해서였다. 물론 전쟁 및 인종청소 등 이것저것 정신없었던 히틀러로서는 그까짓 이탈리아의 물리학자 한 사람 정도는 별로 대수로운 존재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래서 짐짓 미국행을 묵인했을지도 모른다. 만일 그랬었다면 그건 히틀러의 대단한 오산이었다고 밖에 할 수 없다. 페르미박사는 세계 최초의 원자로를 만들어 핵분열의 연쇄반응을 인위적으로 콘트롤할 수 있음을 입증한 위대한 물리학자였다. 페르미박사의 이같은 역사적인 업적은 2차 대전을 마무리하는데 큰 기여를 한 것이었으며 나아가 원자력발전을 비롯하여 오늘날 원자로를 이용한 수많은 사업의 기틀을 마련해준 놀라운 것이었다. 페르미박사가 세계 최초의 원자로인 CP-1 (Chicago Pile 1호: 파일은 원자로를 의미함)룰 건조한 것은 시카고대학교 축구장 스탠드 안쪽의 별로 신통치도 않은 어두컴컴한 임시 실험실이었다. 그 당시까지만 해도 원자가 연쇄반응으로 핵분열을 일으켜 막대한 에너지를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이 연쇄반응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조절할수 있는지는 미지수였다. 만일 연쇄반응을 마음대로 조절만 할수 있다면 그것은 인류 역사에 있어서 천지가 개벽하는 엄청난 일이 아닐수 없었다. 페르미박사와 동료들은 흑연벽돌로 원자로를 만들어 핵분열 연쇄반응자기제어의 실험에 성공하였다. 1942년 12월 2일이었다. 그러므로 1992년은 원자로 탄생 50주년이 되는 뜻 깊은 해이다. 우리나라 최초의 원자로인 트리가 마크 2호(TRIGA Mark-Ⅱ)는 페르미박사의 시카고 파일1호(CP-1)로부터 꼭 20년 후인 1962년에 가동되었다. 서울 공릉동 그 자리에 아직도 건재해 있다. 그러므로 1992년은 우리나라 원자로 가동 30주년을 기록하는 해이다. TRIGA Mark-Ⅱ를 역사적인 유물로서 계속 보존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다.



페르미박사의 원자로 프로젝트는 극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만일 적국인 독일이나 이탈리아가 원자폭탄제조의 첩경인 페르미박사의 프로젝트 내용을 소상히 알게 되면 여간 큰 문제가 아닐수 없기 때문이었다. 드디어 시카고대학교에서 페르미박사의 원자로를 사용한 핵분열의 자기제어가 성공을 거두자 함께 있던 모든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지 않을수 없었다. 이들은 역사적인 성공을 자축하기 위해 와인으로 건배를 하였다. 그 때 마신 와인이 바로 키안티였다. 그러므로 이후 원자력과학기술자들에게 있어서 키안티로 건배하자는 말은 무슨 큰 원자력프로젝트에 성공했다는 의미과 같다.


기왕에 와인 얘기가 나왔으니 말인데 식당에서 만좌한 가운데 와인을 마실 때 치르지 않으면 안되는 의식이 있어서 부연코자 한다. 우선 그런 의식을 보면 우스워서 참을수 없는 경우가 많다. 와인을 주문하기 위해 와인 리스트를 달라고 하면 우리나라 식당에서야 한 장짜리 간단한 리스트를 던져 주겠지만 서양에서는 마치 라이프 잡지 보다 더 두터운 단행본을 가져다준다. 프랑스 등지의 유명 레스토랑에서는 와인 리스트를 대체로 손으로 멋있게 흘려서 적어 놓기 때문에 프랑스 사람들조차 읽기가 어렵다고 한다. 아무려나 거기 적혀 있는 꼬부랑글씨를 알아보고 읽을수 있다면 굳이 와인 리스트를 볼 필요도 없을 것이다. 호스트는 대개 종업원이 가져다 준 와인 리스트를 뒤척이다가 뭐가 뭔지 모르겠다고 말하자니 창피하므로 주인장 좀 오라고 허세를 부린다. 유명 호텔의 레스토랑 같으면 소몰리에라고 하는 와인 마스터가 있게 마련이다. 정장차림에 소몰리에를 입증하는 굵직한 목걸이를 하고 있는 사람이다. 그 소몰리에가 점잖게 다가와서 허리를 굽히고 ‘무얼 도와드릴까요?’라고 물으면 호스트는 마지 못하는 척하면서 ‘에, 오늘 추천할 만한 와인이 뭐 있어요?’라고 말하므로서 자기의 단견과 무식을 회피코자 한다. 그러면 소몰리에가 마침 적당하게 좋은 와인이 있다고 하면서 추천한다. 호스트는 짐짓 자기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다는 듯 ‘그럼 그걸로 하지요!’라고 말하여 와인 셀렉션의 의식을 마친다. 한가지! 우리나라 식당에서 하우스 와인을 주문하는 것은 주의가 필요하다. 싸구려 와인을 잔에 담아 내놓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이윽고 웨이터 또는 소몰리에가 하얀 냅킨에 정중히 반쯤 둘러싼 와인 한 병을 모시고 나타나 호스트에게 레벨과 생산년도 등을 확인토록 한 후에 비로소 병마개 코르크를 빼낸다. 호스트는 마치 ‘바로 이거야! 내가 원하던 것이!’라는 듯 만족하게 고개를 끄떡인다. 웨이터는 병마개인 코르크를 빼 내기 전에 먼저 병마개를 둘러싸고 있는 납 껍질을 벗겨낸다. 웨이터는 주머니에서 그럴듯한 손칼을 꺼내어 납 껍질을 조심스럽게 벗겨낸다. 만일 웨이터가 주머니에서 스위스 군용칼과 같은 세속적인 칼을 꺼내어 껍질을 벗겨 낸다면 이 또한 마땅치 못한 일이다. 웨이터는 자기만의 날렵한 손칼을 가지고 있는 것이 보통이다. 숙달된 웨이터는 병의 주둥이가 약간 들어나 보이도록 납 껍질을 벗겨낸다. 오래 묵은 와인일수록 병 주둥이를 둘러싸고 있는 금속성 껍질이 부식할수 있기 때문에 납 껍질을 벗겨 낼 때에 그 부스러기 입자가 병 주둥이에 남지 않도록 조심하는 것이다.


코르크를 빼 낼때에도 숙달이 필요하다. 우선 스크류를 돌릴때 코르크의 부스러기가 생기면 곤란하다. 그런 웨이터나 소몰리에라면 와인을 다룰 자격이 없다. 코르크 마개를 빼 낼때의 소리는 단순하고 경쾌해야 한다. 가볍게 퐁하는 소리가 나면 된다. 피식하는 소리가 나면 곤란하다. 그렇게 코르크를 빼 낸 다음에 웨이터는 호스트의 글라스에 와인을 따른다. 글라스의 4분의 1정도만 따르는 것이 정석이다. 다른 종류의 술 같으면 절대로 호스트에게 먼저 따라주지 않는다. 와인만이 호스트에게 먼저 따라준다. 샴페인이나 호제도 그렇지는 않다. 그러면 호스트는 글라스를 들어 냄새를 맡는 척하며 한 입 마신다. 어떤 사람은 무슨 대가나 되는 것처럼 입안에서 혀를 굴려 와인을 음미한후 눈을 지그시 감은채 와인을 목구멍으로 넘긴다. 그렇게 시음하는 중에 웨이터는 호스트의 뒤에서 와인 병을 신주 모시듯이 들고 묵묵히 근엄하게 서있다. 아무튼 이렇게 시음의 의식을 치룬 호스트는 고개를 끄떡이며 ‘베리 꿋’ 또는 ‘트레 비안’을 나직하게 외치면서 자못 만족을 표시한다. 진짜 만족하는 것인지 아닌지는 아무도 모른다. ‘생각한 것과는 맛이 다르니 다른 것으로 바꾸어 오시오!’라고 요청하는 호스트는 지금까지 한번도 보지 못했다. 만일 그랬다가는 ‘웃기는 놈이네!’라는 웨이터의 보이지 않는 비웃음을 감수해야 할 것이다. 호스트가 시음을 끝내면 웨이터는 주빈부터 순서에 따라 와인을 따라 준다. 호스트의 옆자리에 앉아 있다거나 여성이기 때문에 먼저 따라 주는 법은 없다. 대체로 주빈인 게스트는 호스트의 건너편에 앉기 마련이다. 웨이터는 별도의 요청이 없는한 글라스의 3분의 2를 채운다. 그리고 백포도주의 경우에는 물과 얼음을 반반씩 넣어 채운 아이스 버킷에 와인이 남아 있는 병을 놓아둔다.


호스트가 와인을 시음하는 의식에 대하여는 두가지 학설이 있다. 첫째는 중세로부터의 관습으로 손님에게 와인병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이라는 것이다. 손님을 청한 주인은 술에 독이 들어 있지 않다는 것을 자기가 먼저 마심으로서 입증할 필요가 있었다. 상당히 신빙성이 있는 주장이다. 식사할 때 나이프를 왼손에 들고 먹도록 한것도 안전 때문이라는 이유가 타당성을 지니고 있는 만큼 호스트의 와인 시음도 안전 때문이라는 이유가 타당한것 같다. 또 한가지 이유는 손님에게 와인을 대접하기 전에 그 와인이 적정온도로 보관되었는지를 확인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먼저 시음한다는 주장이다. 와인은 적, 백을 불문하고 그 술의 체온을 적온으로 유지해야 한다. 왜 그렇게 까다로운지 모르지만 이 모든 것이 와인을 아끼는 심정에서 연유되었다고 생각하면 마음이 편할 것이다. 예를 들어 백포도주는 화씨 45도가 적온이라고 한다. 만일 온도계가 없을 경우에는 2시간전에 냉장고에 넣어 두거나 아이스 버킷에 15분 정도 넣어 두면 된다. 적포도주의 경우에는 실내온도대로 마셔야만 나름대로의 맛을 볼수 있다고 한다. 요즘의 웬만한 식당들은 난방장치가 잘 되어 있어서 실내온도가 평균 섭씨 23도정도이다. 그러나 예전에는 이보다 낮은 18-20도 정도였다. 온도계가 없는 경우에는 냉장고에 약 5분만 넣어 두면 실내온도와 같은 와인을 맛볼수 있다. 그러므로 호스트가 와인을 시음하는 이유는 그 와인이 적정 온도에 있는지를 테스트하기 위해서라는 것이다. 참 까다롭다. (199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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