燈火可遠 有感
우리나라에선 이른바 썸머 타임 제도가 오래 전부터 실시되고 있지 않지만 구미 여러 나라에선 아직도 이 제도가 효과적으로 실시되고 있다. 썸머 타임 시절엔 여름철 새벽녘이나 저녁나절의 시간이 대충 일조(日照)시간과 맞아 떨어져 시차 리듬이 통했는데 썸머 타임이 사라진 요즘엔 오후 다섯 시라고 해도 훤하고 아침 여덟 시라고 해도 그다지 늦은 시간이 아닌 것 같아서 옛날 썸머 타임이 생각나기도 한다. 그리고 1년에 하루 이틀 정도는 썸머 타임 시작이나 해제를 핑계로 삼아 시간이 바뀌는 것을 몰랐다느니 하면서 늑장을 부릴 여유도 있었다.
썸머 타임을 미국에서는 Daylight - saving Time이라고 부른다. 일광절약시간이라고 번역할 수 있다. 썸머 타임이라고 부르든지 또는 데일라이트 세이빙 타임이라고 부르든지 어쨌든 이 조치는 나라마다 일조시간을 더 유용하게 이용하기 위해 실시하는 것이어서 일견 생활의 과학화까지 인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라고 하겠다. 썸머 타임은 대개 6월말쯤 시작해서 9월말에 해제된다. 재미난 것은 썸머 타임을 해제하는 날짜와 시각이 나라마다 다를 경우가 있다는 점이다. 오스트리아와 헝가리는 9월 마지막 일요일 통상 새벽 3시에 한시간을 되돌려 놓는다. 새벽3시가 순식간에 새벽4시가 되는 것이다. 프랑스, 노르웨이, 폴란드, 유고슬라비아는 새벽 2시에 변경한다. 특별한 이유가 있어서 그렇게 정한 것은 아닌듯 싶다. 구소련은 10월 1일 0시를 기하여 썸머 타임을 해제하고 겨울 시간으로 바꾼다. 영국, 아일랜드, 미국, 캐나다는 땅덩어리가 하도 넓어서 시간대 지역별로 썸머 타임을 시작하고 해제한다. 그런 날이면 언제나 약간의 혼잡과 소동이 뒤따른다고 한다. 비행기 타러 너무 일찍 공항에 나간다든지, 약속 시간에 공연히 일찍 나가서 상대방이 안 나왔다고 화를 낸다든지 하는 그런 경우를 말한다. 호주와 뉴질랜드의 경우는 좀 색다르다. 10월 28일에 썸머 타임이 아닌 스프링 타임을 실시한다. 봄이 시작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호주와 뉴질랜드에서는 봄이 시작되지만 우리의 땅은 역시 추색이 짙어 가는 등화가친(燈火可親)의 계절을 맞이한다. 독서의 계절이다. 책 속에 지식과 지혜가 담겨 있다. 책을 읽는 국민은 사회를 위하여 봉사하고 국가를 위하여 헌신할 도리를 알게 된다. 책을 읽는 사람은 멸시받지 않는다. 불행하게도 우리나라 사람은 책을 읽지 않는다. 한국도서출판협회인가 어디인가가 조사한 데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은 한 사람이 1년에 겨우 책 한 권을 읽을까 말까라는 것이다. 하루에도 70종이 넘는 신간이 쏟아져 나오고 있음에서 불구하고 책들을 읽지 않는다는 말이다. 부끄러운 일이다. 동경의 지하철에서 책을 읽고 있는 수많은 모습들, 쾰른의 우 반(U-Bahn)에서 책을 읽고 있는 수많은 모습들, 런던의 튜브(Tube)에서 책을 읽고 있는 수많은 모습들-.부러운 일이다. 1993년은 책의 해라고 한다. 엑스포와 연계하여 대전에서는 도서 특별전시회가 열리기도 했다. 등화가원(燈火可遠)의 계절이 되지 않도록 다짐을 해야겠다. (1993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