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대할 자유 찬성할 자유
올해도 어김없이 보덕봉에 봄이 찾아왔다. 독자 제위의 이해를 돕기 위해 말씀드리자면 보덕봉은 우리 원자력연구소를 굽어 내려다 보고 있는 산봉우리이다. 누구나 말하듯이 희망이 샘솟는 봄이 올해도 어김없이 우리 앞에 다가왔다. 그러나 우리연구소 직원들, 특히 원자력환경관리센터 직원들의 마음은 아직도 답답한 안타까움에 얽매여 있을 뿐이다.
방사성폐기물처분장부지 확보를 위한 노력 -. 올해로서 벌써 5년째 접어든다. 올해는 기필코 확정이 되어야 할 터인데… 전망은 아직도 아지랑이 같아서 갈피를 잡기가 쉽지 않다. 돌이켜보면 89년 영덕을 비롯한 동해안 3개지역에서의 실패, 90년말의 저 유명한 안면도사태, 91년말 서울대가 6개 후보지를 발표한 이후 전국적인 소요, 그리고 총선과 대선이라는 정치 일정의 와중에서 부지확보라는 대명제는 뒷전에 몰려 오늘에 이른 것이 우리 연구소가 경험해야 했던 답답한 역정(歷程)이었다.
햇수로 5년-. 그 짧지 않은 기간동안에 우리 연구소의 원자력환경관리센터 직원들이 겪어야 했던 힘겨운 고초는 아마 필설로는 형용키 어려울 것 같다. 예를 들어 극히 최근에 일어났던 두가지 사건만 보자. 그 하나는 작년 5월, 환경관리센터 직원 2명이 서산에 내려갔다가 야밤에 여관방에서 반투위(반대투쟁위원회) 측으로부터(그중에는 공추련 요원도 끼어 있었음) 입에 담을 수 없는 폭언과 온갖 위협을 다 받은 일이다. 이른바 서산 서류 탈취사건이다. 반투위 괴한들이 우리 환경관리센터 직원들이 투숙하고 있는 여관방에 쳐들어와 깨진 소주병으로 우리 환경관리센터 직원들을 죽이겠다고 위협했다. 그리고는 우리 직원들이 갖고 있던 서류일체를 강탈해 갔다. 환경관리센터 직원들이 서산에 내려가서 묵고 있었던 것은 안면도 사람들이 이것저것 설명을 해달라고 했기 때문이다. 우리 직원들은 신변상의 위험 때문에 안면도에는 들어가지도 못하고 가까운 서산에 묵고 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국가 연구기관의 직원들이 마음 놓고 지방 출장도 다니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었다.
또 하나는 지난 1월 18일 안면도 주민 김남영씨의 이른바 민주당사 양심선언 사건이다. 폐기물처분장 자원 신청에 발벗고 나섰던 한면도 고남면의 김남영이라는 사람이 이날 아침 민주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자청하고 ‘자원유치활동을 위해 연구소로부터 돈으로 매수당했으며 연구소는 자원유치자의 숫자를 늘리기 위해 인장을 도용하기도 했다’는 주장을 버젓이 했다. 이른바 그 양심선언 내용이 신문과 방송에 보도 되었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국민은 우리 연구소를 얼마나 마땅치 못하게 생각했을 것인가? 속이 상한다.
김남영씨 등이 안면도 고남면에서 유치운동을 할 때 반투위로부터 받은 박해는 이루 말할 수 없다. 고추수확을 앞두고 일손을 구하지 못하여 그대로 농사를 망쳤다. 일체의 상거래를 중단했기 때문에 생필품조차 구할 수가 없었다. 이들이 우리 연구소에 피해를 호소하여 왔을 때 우리는 국가사업인 방사성폐기물 처분장 유치사업을 위해 애쓰다가 재산상의 손해를 본 것을 참으로 안타깝게 생각하여 각자 봉급에서 십시일반으로 얼마씩 갹출하여 성금을 마련했던 것이고 그중에서 일부를 김남영씨에게 전달했던 것이다. 그 사실을 김남영씨는 연구소로부터 매수당했다는 식으로 주장했으니 다만 어처구니가 없을 뿐이다.
우리는 김남영씨 개인을 탓할 생각은 없다. 우리는 그가 그렇게밖에 말할 수밖에 없도록 영향력을 행사한 배후세력에 대하여 유감을 표명코자 하며 탓하고 싶은 것이다. 우리 모두 알다시피 민주주의 사회에서는 반대할 자유도 보장되어야 하지만 찬성할 자유도 엄연히 보장되어야 한다. 원자력사업에 대한 찬성의 자유마저도 극렬 반핵의 위협과 폭력에 의해 제재 받는다는 것이 오늘날의 세태이고 보면 과연 우리는 이 세태를 탓해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우리들의 연약함을 탓해야 할 것인가? (1993년 3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