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실화와 우화

정준극 2007. 5. 22. 10:09
 

寓話와 實話


이솝우화 한 토막! 아버지와 어린 아들이 늙은 나귀를 시장에 내다 팔기 위해 먼길을 떠나게 됐다. 한참을 가다가 마을 청년들을 만났다. ‘나귀는 타고 가라는 것인데 오히려 모시고 가다니… 저런 미련한 사람들이 다 있나?’라며 비웃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과연 그렇구나!’라고 생각하고 자신들의 미욱함을 탓했다. 아들이 말했다. ‘아버지는 나이도 많으시고 기력도 부족하실 터이니 아버지가 타고 가셔요.’ 참으로 사려깊은 아들이었다.


아버지가 나귀를 타고 한참을 가는데 이번에는 일단의 아낙네들을 만났다. 수다스런 아낙네들이 가만있을 리 없었다. ‘아이구, 연약한 어린아이는 걸리고 낫살이나 먹은 자기만 편하게 타고 가다니…사람이 어쩜 인정머리가 없을수 있단 말인가?’ 아버지가 듣고 보니 그도 그런 것 같았다. 아버지 왈, ‘얘야, 이거 도무지 쑥스러워서…네가 타고 가거라. 어린 네가 얼마나 힘들겠니?’


아들이 한참 타고 가는데 이번에는 나무 그늘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네들을 만났다. 노인네들은 하나 같이 혀를 쯧쯧 차면서 핀잔을 퍼부었다. ‘요새 젊은 애들은 도무지 돼먹지 않았단 말이야. 늙은 아비는 걷게 하고 자기만 편하게 가다니-. 양심 불량, 도덕 부재…’ 아들이 듣고 보니 딴은 그도 그런 것 같았다. 어떻게 할까? 결국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함께 나귀를 타고 가면 동리 사람들의 귀중한 충고를 다 들어주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와 아들이 늙은 나귀를 타고 갈길을 재촉하게 되었다. 한참을 가는데 이번에는 한 무리의 농부들을 만났다. 농부들이 가만히 있을 리가 없었다. ‘저런 나쁜 사람들이 있나! 불쌍한 동물을 저렇게 학대하다니!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지만 일은 일대로 시켜 먹으면서 고생만 죽도록 시키는구나! 이 더운 여름에 두 사람씩이나 타고 가다니…’라고 말하면서 아버지의 아들의 도덕성을 의심이나 하듯 비난을 퍼부었다.


아버지와 아들은 그 말도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 어떻게 해야 하나? 드디어 생각해낸 묘책! 나귀를 메고 가기로 했다. 아버지와 아들은 나귀를 메고 낑낑거리면서 걸어가기 시작했다. 얼마 못 가서 일단의 이웃마을 사람들을 만나게 되었다. 마침 개울을 가로지르는 가느다란 다리 위에서였다. 이웃마을 사람들은 두 사람이 나귀를 메고 가는 모습이 너무도 어이없고 한심해서 큰 소리로 ‘와하하하’라고 웃어댔다. 이 웃음소리에 나귀가 번쩍 놀래서 화다닥 하다가 그만 개울로 떨어졌다. 전신 부상을 당한 나귀는 이제 시장에 내다 팔 수 없게 되었다.


근자에 이르러 우리 원자력 연구소가 땀흘려 맡아 하고 있는 원자로계통설계사업과 원전연료설계사업에 대하여 이를 이관해야 하느니 어쩌느니 하면서 말도 많고 주장도 많고 억지와 수작도 많다. 하지만 연구소는 연구만 하고 사업은 무슨 무슨 회사로 넘기라는 주장은 도대체 원자력 기술 자립이라는 것이 무엇인지 그 개념조차 알지 못하는 허무한 사람들이 꾸며낸 것이 아닐 수 없다. 우리 연구소가 혼신의 노력을 기울여 수행하고 있는 원전 사업-. 그것은 말이 사업이지 실은 원자력 기술자립 그 자체이다. 이 세상에 기술자립 의지를 의도적으로 외면하거나 사장시키려는 나라는 하나도 없을 것이다. 이솝의 나귀 이야기처럼 행여 우를 범하는 우리 모두가 아닌지 다시한번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1993년 8월)


'보덕봉 메아리 > 보덕봉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원자력과 핵  (0) 2007.05.22
등화가원 유감  (0) 2007.05.22
에펠탑과 한빛탑  (0) 2007.05.22
반대할 자유 찬성할 자유  (0) 2007.05.22
키안티와 원자력  (0) 2007.05.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