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사파’를 아십니까
김일성이 죽기 얼마전 자유의 품을 찾아 귀순한 여만철씨 가족은 북한에 소위 기쁨조라는 것이 있다고 폭로하여 우리를 놀라게 한 바 있다. 북한은 방방곡곡에서 어린 여학생들을 간택하여 특별 신체검사를 마친 후 김일성 부자의 궁녀로 키우고 있으며 이들을 기쁨조라고 부른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어이없는 얘기를 들으면서 지금 세상이 어느 때라고 진시황이나 연산군처럼 주지육림 속에 파묻혀 살고 있는 왕조가 있을까라고 생각되어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았었다. 그러면서 한편으론 그저 한심해서 답답한 심정이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바로 얼마 전에는 북한이 국가사업으로 마약밀매를 하고 있고 또 그런 암거래를 통해 챙긴 돈으로 일부 특권계층의 향락을 위해서는 물론, 이른바 적화통일용 무기확보를 위해 쓰고 있다는 충격적인 보도를 접하게 되었다.
근자에 러시아 방첩기관이 밝힌 바에 따르면 지난 5월 북한의 사회안전부 소속 요원(우리 같으면 경찰공무원)들이 블라디보스토크에서 마약밀매를 하다가 덜미를 잡혔다고 한다. 북한이 과거 러시아 사람을 상대로 얼마나 마약밀매행위를 했는지는 모르지만 러시아 당국이 북한 밀매꾼을 잡고 보니 순수마약인 헤로인을 무려 8.5kg이나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이 정도라면 블라디보스토크는 물론 모스크바시민 전체에게 주사할 수 있는 엄청난 양이라고 한다. 북한은 러시아사람들은 글자그대로 주사파(注射派)로 만들려고 했을까? 마약의 퇴폐적인 해독이 얼마나 비참하고 가증스러운 것인지는 삼척동자도 다 아는 사실 아닌가? 그런데도 김일성이 죽자 대한민국의 곳곳에 분향소를 설치하는 소동을 벌였는가 하면 조문사절단을 보내야 한다고 법석을 떨었고 주체사상이 어쩌니 저쩌니 하고 있으니 남한의 주사파와 모북(慕北)주의자들은 북한 마약밀매의 정당성에 대하여 부디 한번 설명 좀 해주었으면 좋겠다.
북한은 오래 전부터 세계도처에서 술․담배 밀수를 해온 것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렇지만 이번에 들통 났듯이 북한 공직자가 국가차원의 마약밀매를 했다는 사실은 어처구니가 없다 못해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며 또한 외국 언론에는 남북한 구별하지 않고 똑같은 ‘코리언’으로 보도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하니 국제사회에서 대한민국까지 싸잡아서 창피를 막심하게 당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보다도 우리를 더욱 기가 막히게 만드는 것은 마약밀매로 자금을 확보하여 러시아로부터 핵물질을 사들이려고 했다는 점이다. 러시아 당국의 발표가 단순히 ‘핵물질’이었기 때문에 그것이 무엇을 말하는 것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으나 짐작컨대 구소련이 핵무기의 탄두로 사용했던 고순도의 플루토늄이 아닌가 싶다. 북한이 마약밀매를 하면서까지 ‘핵물질’을 확보하려는 진짜 속셈은 과연 어디에 있는 것일까. 그거야 ‘적화야욕’을 위한 ‘무력통일’의 못된 꿈을 머리지 못해서라고 밖에는 말할 수 없는 일이다.
북한이란 나라는 워낙 거짓말에 이력이 배인 집단이다. 자기네 인민들한테 말도 안되는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식은 죽 먹듯 하는 것은 오히려 약과이고 국제적으로도 거짓말을 능수능란하게 해대는 데에는 그저 두손 바짝 들 수밖에 없는 형편이다. 요즘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는 소위 ‘북한 핵의혹’의 과정을 지켜보면 북한이 얼마나 거짓말을 누워서 떡먹듯이 하고 있으며 신뢰성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는 나라인지 잘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런 북한이 마약밀매를 하면서까지 핵의혹을 증폭시키고 있다. 그래서 우리로서는 실로 답답한 일이 아닐 수 없다. 바라건대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주사파와 모북주의자들은 제발 이런 실상을 직시해야만 할 것이다. 아직도 ‘북이 붕괴하면 우리의 입지도 약해진다!’고 생각하고 있으며 ‘민족’이란 단어를 내세워 ‘북의 핵무기개발을 나무라지 말아야 한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다거나 또는 근자에 국민적 관심이 되고 있는 ‘한국형경수로’에 대하여 ‘우리나라가 기술능력이 뭐 있느냐’는 식으로 말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들에겐 청량리가 가장 제격일 것이다. (1994년 9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