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와 책임감
누구에게든 권리가 있으면 의무가 뒤따르기 마련이며, 자유가 있으면 책임감이 따르기 마련이다. ‘자유가 아니면 죽음을 달라’고 할 정도로 대단히 중요한 자유란 무엇인가? 한마디로 남에게 속박당하지 않고 마음대로 행동하고 마음대로 말할 수 있는 것을 뜻한다. 남에게 속박당하지 않고 자유롭게 행동하고 자유롭게 말하는 것이 인간생활에 있어서 얼마나 귀중한 것인지는 자유를 속박당해 본 사람만이 알 수 있는 일이다. 그러나 자유를 누린다고 해서 함부로 행동하고 제멋대로 말을 해도 된다는 것은 결코 아니다. 무엇보다도 남에게 속박당하지 않으려면 남을 속박해서는 안될 것이다. 자유스런 행동에는 책임이 뒤따르기 때문이다. 남에게 피해를 끼치는 일은 남을 속박하는 일이다. 남에게 피해를 입히면서까지 마음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것은 자유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의 일이다. 그런 사람은 이 사회에서 불필요한 존재가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세상이 점점 복잡해지고 사회가 점점 개인주의 일변도로 변화하게 되면서부터 자유와 책임감에 대한 가치관도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무엇보다도 자유와 책임감에 대한 올바른 정의를 차츰 망각해가고 있는 듯 싶다. 요즘 젊은 세대 사이에서 오가고 있는 ‘자유’와 ‘책임감’에 대한 죠크를 들어보면 우습기도 하지만 세태를 풍자한 것 같아서 뒤 끝에 남는다.
얘기인 즉 이렇다. 어떤 신통치 않은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의 이름은 아무래도 좋다. 이 학생으로 말하자면 공부는 제대로 못하여 아는 것은 없는 주제에 자기 잘난 척은 은근히 하는 인물이다. 어느 날 도덕 선생님이 ‘자유’와 ‘책임감’에 대하여 각각 글짓기를 해오라고 숙제를 내주셨다. 생각 끝에 숙제랍시고 해온 글짓기의 내용은 이렇다 우선 ‘자유’에 대하여-
‘학교에서 집에 돌아오니 아무도 없었다. 부엌에 들어가 밥을 한사발 퍼 먹고 졸려서 방에 누워 있었다. 얼마 후 어머니가 들어오시면서 ‘아니, 이놈은 학교 갔다와서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뭐 하는 거냐, 응?’라고 소리치셨다. 나는 일어나기가 귀찮아서 이렇게 대꾸했다.
‘엄니, 나 피곤해서 자유-’
다음은 ‘책임감’에 대하여-
‘학교에서 돌아와 책가방을 마루에 던져놓고 방에 들어가 자기 시작했다. 얼마쯤 잤을까, 밖에서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렸다. ‘아니, 얘는 맨날 책 산다고 돈 달래더니, 어이구, 무겁기도 해라! 이 가방 속에 든 것이 모두 ‘책임감’?
물론 이 얘기는 한낱 우스개소리에 불과할지 모르지만 ‘자유’와 ‘책임감’에 대하여 무엇하나 제대로 가리지 못하는 이른바 신세대 사고방식을 짐짓 핀잔하는 것 같아서 고소를 금치 못하게 하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어디 신세대 뿐이랴? 기성세대, 특히 원로급 기성세대 중에서도 ‘자유’와 ‘책임감’을 똑똑히 구분하지 못하는 위인들이 자못 다수 있는 것 같아 속이 상할 정도인 것이 오늘의 현실이다. 예컨대 근자에 우리 원자력계의 모모하는 원로분들이 솔선하여서 ‘원자력연구소가 핵심설계 기술을 자립했다고 하는 한국형 경수로란 존재하지도 않는다. 미국형경수로라고 해야 옳다’고 내세운 것은 표현의 자유는 알고 계시되 그에 따른 ‘책임감’은 모르시는 소치가 아닌가 싶다. 사실을 사실로 받아들이지 않는 무분별한 주장은 공연히 중론을 분열시키는 것이 아닐 수 없다. 그리고 그로 인하여 과연 무슨 소득이 있다는 것인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1994년 10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