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도 잘 지키자
경부고속도로 양재-신탄진간의 버스전용차선제가 일반 주말에도 적용되고 있다. 평소 2시간 남짓 걸리던 서울-유성 고속버스 시간이 20분이나 단축되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다. 일단 사회적으로 정한 제도는 누구를 막론하고 잘 지켜야 한다. 그것이 성숙된 민주시민으로서 당연히 보여줄 처신이다. 하지만 그런 사소한 규범조차 일부러 지키지 않는 얌체족들이 의외로 허다하여 밉살스럽기가 한이 없다. 거의 모든 선량한 소형차 운전자들이 1차선을 비켜서서 다른 차선으로 줄지어 가고 있는데 버젓이 버스전용차선으로 쏜살같이 달리고 있는 양심불량의 족속들은 과연 어떤 부류의 인간들인지 모르겠다. 나만 빨리 가면 되고 나만 편하면 된다는 속셈인 것 같다. 그런가 하면 ‘다른 사람들은 지켜라. 난 지키지 않겠다. 난 내 맘대로다.’라는 식의 상식부족 및 반사회적 가치관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 같다. 이래가지고서야 언제 ‘세계화’를 이루고 언제 ‘선진 국민’이 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양담배 소비량이 급격히 늘고 있으며 양주 판매량은 작년보다 7퍼센트나 늘었다는 소식이다. 양담배 피우다가 걸리면 길거리에서 창피 톡톡히 당하고 벌금까지 무는 고초를 겪게 했으며 양주를 마신다고 하면 마치 매국노 같은 취급을 받던 때가 바로 엊그제 같은데 세상이 바뀌어도 무척 바뀐 것 같다. 한마디로 요즘은 수입이 너무 많은 것 같다. 바야흐로 외제 범람시대에 들어선 느낌이다. 오늘날은 개방화시대이다. 그런 시대에 살면서 수입은 무조건 나쁘고 수출만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다. 그렇지만 이건 해도 너무한 것 같다. 마치 일부 졸부들의 기호충족용인 듯 불요불급하지도 않은 온갖 것이 다 수입되고 있다. 심지어는 건강식품이라고 해서 별별 기괴한 동물까지 마구 수입하고 있으니 그런 물건을 수입하는 사람들은 나라를 지키겠다는 것인지 그렇지 않겠다는 것인지 알 수 없다. 국민들도 스스로 분수에 넘치는 외제품 소비를 삼가야 할 것이다. 지난 2월의 소비재수입 증가율이 46퍼센트를 넘어섰다는 사실을 가볍게 여겨선 안될 것이다. 수입외제만을 선호하는 무분별한 행동은 억제되어야 한다. 남들도 펑펑 사서 쓰는데 나만 국산품 애용사상을 지킨다는 것이 억울하다고 생각하면 안된다. 나라도 잘 지켜야 우리나라 농어촌이 살아나고 우리나라 공장이 살아난다. 이렇듯 누구든지 ‘나라도 잘 지켜야지’하는 생각을 먹는다면 그건 괜찮은 결과를 가져올 것이다.
근자에 우리 연구소를 비롯한 우리나라 원자력 산업계는 ‘원전기술수출’에 대하여 상당히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야말로 세계화를 향한 바람직한 행보가 아닐 수 없다. 원자력분야의 핵심기술을 천신만고 끝에 자립하고 나서 이제 그 기술을 제3국에게로까지 진출토록한다는 것은 원자력 기술자립의 연륜이 비교적 일천한 우리 입장에서 참으로 대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가? 뭐가 뛰니까 뭐도 뛴다고 너나 내나 할 것 없이 지나친 기술수출 의욕 때문에 혹시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안하고 있는데 김칫국부터 마시는 행태가 있지나 않은지? 더구나 핵심기술을 보유하고 있지 않은 입장에서 마치 ‘원전기술수출’을 도맡아 한다고 내세우는 것은 도무지 민망한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나저나 ‘수출’에만 초조한 나머지 자칫 국가 위상까지 떨어트리게 되지 않을까 한가닥 우려까지 갖게 한다.
‘원전기술수출’을 위해서는 국내 관련기관이 일념으로 합심하여 드라이빙할 필요가 있다. 각 기관은 제각기 나름대로 맡은 분야가 있고 지켜야 할 도리가 있는 것이다. 내것 네것 가릴 것 없이 모두 내가 할 일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분수를 모르는 행위이며, 나아가 요즘같이 치열한 국제경쟁 체제에서 핀잔만 받고 낙오되기가 딱 맞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렇다고 남이 짐짓 의욕적으로 나서고 있는데 왈가왈부하고 싶은 생각은 거의 없다. 나라 체면 때문이다. 그래서 ‘나라도 잘 지키자’는 생각을 갖게 한다. 그래야 ‘나라도 잘 지키는 셈’이 되기 때문이다. (‘95. 5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