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백년소계

정준극 2007. 5. 22. 14:48
 

백년소계


교육은 국가 백년대계를 위한 것이라고 한다. 교육의 중요성을 그만큼 확실하게 표현한 말도 없을 것이다. 그나저나 훌륭한 교육을 위해서는 교사의 자질도 매우 중요하려니와 그보다도 교육의 근본이 되는 교과서가 완벽한 내용으로 되어있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올해 처음 발간된 중학교 환경 교과서를 보니 이건 도무지 속상한 내용이 많아서 가만히 앉아 있기가 어려울 정도다. 교육부가 한국교육개발원이란 데에 의뢰하여 펴낸 환경 교과서의 내용은 경우에 따라서 정확한 설명이 부족할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일부 내용이 사실과 틀리게 명시되어 있기까지 하다. 때문에 어린 학생들이 잘못된 지식을 가지게 될 것 같아 걱정이 태산이다. 다른 단원의 내용은 잘 몰라도 제6장 ‘원자력 에너지’편에서는 이곳저곳 탓할 부분이 많다.


예컨대 원자력 발전을 설명하는 중에 ‘화력발전의 경우보다 대기오염을 일으킬 가능성이 적다’라는 부분이 있다. 바꾸어 말하면 원자력 발전소에서도 화력발전소처럼 이산화탄소 등이 어느 정도 나올 수 있다는 소리다. 원자력발전소에서는 석유나 석탄을 사용하지 않는다. 대신 우라늄을 사용한다. 이런 사실은 삼척동자도 다 아는 내용이다. 그런데도 마치 화력발전소처럼 대기오염의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한 것은 무슨 연유 때문일까?


제일 문제가 되는 부분은 체르노빌에 관한 내용이다. 체르노빌 사고 당시 사망한 사람은 31명이다. 국제원자기구(IAEA)가 공식 발표한 숫자이다. 그런데 교과서에는 당시 방사능오염 정화 책임자의 발표라고 하면서 사망자가 6천 내지 8천 명에 이른다고 적혀 있다. 국제적 공신력이 있는 기관의 발표는 뒷전으로 미루고 누군지 확실치도 않은 사람의 발표를 교과서에 그대로 인용한다는 것은 문제가 있어도 한참 있는 일이다.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사고가 일어난 지 6년 후에 6천 내지 8천 명이 사망했다고 느닷없이 주장하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신빙성이 없는 얘기이다. 한편 스리마일 아일랜드의 경우에도 모순되는 설명이 더러 눈에 띈다. 교과서에는 ‘원자로가 터져서’ 일어난 사고라고 설명되어 있다. 그러면서 원자로가 파괴되면서 방사성물질이 넷째 번의 방호벽(원자로 건물 내부철판을 말하는 듯)을 뚫고 나갔다고 되어 있다. ‘원자로가 터졌다’든지 ‘원자로가 파괴되었다’는 설명은 천만의 말씀이다. 원자로 안에서 핵연료가 녹았을 뿐이다. 방사능이 원자로건물의 내부 철판을 뚫고 나가지도 않았다. 우째 이런 설명이 있을 수가 있는지?


방사능폐기물과 관련한 설명에서도 타당하지 못한 내용을 상당히 발견할 수 있다. 우선 ‘처리’와 ‘처분’을 구별하지 못하고 있다. 무조건 ‘방사성폐기물 처리장’으로 되어 있다. ‘처리’라는 것은 방사성폐기물의 양을 줄이거나 또는 드럼통 속에서 움직이지 않도록 단단히 만드는 것을 말하며, ‘처분’은 영구히 매립한다는 것을 말한다. 기술적으로 엄연히 다른 내용을 한데 묶어서 사용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것이다. 어디 그 뿐인가? 원자력 발전에 관한 반대 의견이랍시고 하면서 ‘스위스나 스웨덴의 경우에 이미 가동중인 원자력 발전소까지 폐쇄하고 있다’고 적어 놓았다. 정말 ‘천만의 말씀’이다. 스웨덴에서는 정치적 문제 때문에 고려중이지만 스위스에서는 가동 중인 원전을 폐쇄했던 일이은 없다. 또 앞으로 그렇게 하지도 않을 작정이다.


더구나 가관인 것은 학급에서의 역할놀이를 지도하는 글에 어쩌면 그러하게도 반핵의 터무니없는 주장을 그대로 반영해 놓았는지 알 수 없는 일이다. 예컨대 ‘주민들은 무서운 피해를 줄 수 있는 방사성폐기물에 공포심을 가지고 있는데도 정부는 관리를 잘하면 된다고 한다’는 설명이 있다. 이건 정말 사실과 다른 설명이다. 그런 터무니없는 설명이 교과서에 그대로 반영되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도대체 누가 집필한 것일까? 집필진의 면모를 일견하니 아무리 찾아보아도 원자력전문가는 한사람도 없다. 교과서와 같은 중요한 책자를 만드는데-. 정말 그래도 괜찮은 것일까? 국가 백년대계(百年大計)를 위한 교과서가 아니라 백년소계(百年小計)를 위한 교과서인 듯싶다. (‘95.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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