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퀴리 부인과 5백 프랑

정준극 2007. 5. 22. 14:48
 

퀴리 부인과 5백 프랑


퀴리 부인을 모르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특히 원자력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퀴리 부인이 누군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면 그건 말도 안되는 소리다. 퀴리 부인은 노벨상을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씩이나 받은 여성이다. 라듐을 발견해서 받았고, 폴로늄이란 새로운 원소를 발견해서 또 받았다. 퀴리 부인은 원래 폴란드 사람이다. 이름은 마리 스크로도브스카였다. 프랑스에 와서 피엘 퀴리라는 훌륭한 동료분과 혼인했기 때문에 마담 퀴리가 되었다. 퀴리 부인은 지금부터 60여 년 전인 1934년 7월 4일 프랑스의 한적한 시골인 오토 사부아에서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그의 유해는 교통사고로 일찍이 세상을 떠난 부군과 함께 시골의 조용한 교회 묘지에 안장되었다. 그 퀴리 부인의 유해가 사후 61년 만에 파리의 판테옹으로 옮겨졌다. 바로 지난 4월 20일 화려하고 장엄한 의식과 함께 판테옹으로 옮겨진 것이다.


판테옹은 원래 로마나 그리스에서 여러 신(神)을 함께 모신 신전, 즉 만신전(萬神殿)을 말한다. 그러나 프랑스에서는 국가적 위인을 모신 곳을 말하며 구체적으로는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성 쥬느비에브 성당을 말한다. 성 쥬느비에브라는 분은 그 옛날 5세기 경 훈족의 아틸라가 파리를 침공했을 때 파리의 성문에서 외적을 막아내다가 장렬하게 순교한 성자이다. 그래서 파리 사람들은 성 쥬느비에브를 파리의 수호성인으로 모시게 되었고 그의 무덤에 성당을 건축했으니 이것이 오늘날 세계적으로 알아 모시는 웅장하고 거룩한 판테옹의 전신이다.


판테옹은 국가적으로 위대한 인물에게 봉헌된 건물이다. 성 쥬느비에브 이래 처음 모셔진 인물은 프랑스 대혁명 당시의 위대한 정치가 겸 사상가인 미라보였다. 프랑스 대혁명은 이른바 ‘여명의 시대’를 여는 역사적 사건이었다. 그래서 사람들은 정치가나 군인들만 모실 것이 아니라 위대한 사상가도 모셔야 한다고 주장했다. 당시 새로운 민권사상을 만인에게 불어 넣어 준 위대한 사상가는 볼테르와 루소였다. 지금부터 2백여년전 볼테르와 루소의 유해는 장엄하고도 화려한 의식과 함께 판테옹으로 옮겨졌다. 그 이후 오늘에 이르기까지 약 50명 남짓의 위인들이 판테옹으로 주소지를 옮김으로서 사시사철 온 백성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 나라를 지키다가 전장에서 장렬하게 산화한 장군들은 물론, 위대한 문인과 과학자도 판테옹 가족이 되었다. 빅톨 위고와 에밀 졸라가 만인이 추앙하는 빛나는 자리에 모셔졌고 화학자 라보아지에와 수학자 라그랑지도 판테옹에 모셔졌다. 판테옹에는 아무나 입주할 수 없다. 반드시 대통령의 추천이 있어야 하고 의회의 결정이 있어야 한다.


얼마전 미테랑 대통령은 일대 용단을 내리는 선언을 했다. 판테옹에 여성이 한분도 없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일이므로 차제에 위대한 여성을 한분 모시도록 하자는 것이었다. 미테랑 대통령은 프랑스를 빛낸 가장 위대한 여성으로서 퀴리 부인을 거론했고 국회도 이의가 없음을 결정했다. 퀴리 부인이 비록 프랑스 사람이 아니고 폴란드 출신이지만 그가 현대과학 기술에 끼친 엄청난 기여, 특히 원자력물리학 분야와 원자력화학 분야에 끼친 공적을 높이 평가하여 위인 열사의 반열에 들어가도록 한 것이다. 퀴리 부인의 판테옹 입주식에는 미테랑 대통령뿐만 아니라 폴란드의 바웬사 대통령도 참석하였다. 그런가 하면 프랑스는 최근 5백 프랑 짜리 새로운 지폐를 발행하면서 그 앞면에 퀴리 부인의 초상을 그려 넣었다. 그때까지 통용되고 있는 프랑스 지폐 중에서 가장 높은 액수의 것은 2백프랑 짜리다. 그런데 프랑스 정부는 그 보다 훨씬 고가의 지폐를 발행하면서 영광스럽게도 퀴리 부인을 내세웠던 것이다. 원자력의 어머니 퀴리 부인은 이렇게 하여 다시 한번 세인의 추앙을 받게 되었다. 비바 마담 퀴리! 비바 원자력! 우리나라는 언제나 원자력 과학자가 그런 대접을 받게 될까? (‘95.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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