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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베시와 하숙집 음식

정준극 2007. 5. 22. 14:49
 


헤베시와 하숙집 음식


덴마크의 수도 코펜하겐의 옛이름은 하프니아(Hafnia)이다. 라틴말로 항구라는 뜻이다. 그 옛날 로마제국의 문화적 영향이 북구의 유트란드반도까지 미쳤던 것이다.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 과학자로는 단연 닐스 보어를 꼽을 수 있다. 닐스 보어의 원자이론은 오늘날 원자물리학의 금과옥조처럼 되어 있는 것이다. 덴마크는 그의 공적을 높이 기려서 코펜하겐에 ‘닐스보어연구소’를 세웠다.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 얼마 전, 헝가리 출신의 화학자 게오르그 헤베시(G. Hevesy)는 ‘닐스보어연구소’의 객원 연구원으로 일했다. 방사성동위원소 연구에 있어서 탁월했던 헤베시는 코펜하겐에서 오늘날 원자번호 72번의 하프늄(Hafnium)이라고 부르는 새로운 원소를 발견하는 놀라운 업적을 이룩했다. 하프늄이란 이름은 코펜하겐의 옛 이름 하프니아에서 따온 것이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92종류의 자연원소 중에서 도시 이름을 딴 것은 아마 하프늄뿐일 것이다. 하프늄은 지르코늄이란 광석에서 뽑아낸다. 그 과정이 좀 어렵다. 그렇지만 쓸모는 상당히 많다. 우리 연구소에 있는 하나로 연구용원자로의 정지봉과 제어봉은 하프늄으로 만든 것이다. 원자로 안에서의 핵분열 반응을 정지토록 하고 콘트롤하는 용도로는 하프늄이 제일 합당하기 때문이다.


헝가리의 부다페스트 대학을 마친 헤베시는 덴마크로 가기 전 뜻한 바 있어서 영국 맨체스터로 건너왔다. 맨체스터는 당시 산업혁명의 본거지였다. 때문에 세계 어느 곳보다도 과학기술연구가 흥성했던 곳이었다. 맨체스터대학교는 그러한 활동의 중심지였다. 헤베시는 이 대학교의 ‘러더포드연구실’에서 방사성동위원소의 이용에 관한 연구에 매진했다. 그 결과 1943년 노벨화학상을 받는 영광을 차지했다. 방사성동위원소는 실로 수없이 많은 분야에서 각양각색으로 이용되고 있다. 의료, 농업, 공업, 고고학, 환경, 생물학, 유전공학 등등.... 헝가리 출신의 과학자 헤베시는 바로 이러한 수많은 이용의 초석을 놓은 주역이다.


헤베시가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연구할 때에는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못하여서 적당히 허름한 하숙집에 기거하고 있었다. 그는 돈을 절약하기 위해 아침은 굶고 점심은 학교에서 적당히 때웠지만 저녁만은 어쩔 수 없어서 하숙집의 밥을 돈내고 먹기로 했다. 예나 지금이나 하숙집 밥상은 형편없는 것이 관례였던지 헤베시가 보기에도 며칠 전, 심지어는 몇주 전에 먹었던 음식이 그대로 저녁상에 오르는 것 같았다. ‘증거를 잡아서 구두쇠 아줌마에게 따끔한 경고를 해야지!’ 이렇게 마음먹은 헤베시는 참으로 원자력과학자답게 방사성동위원소를 이용해서 증거를 잡기로 마음먹었다. 그는 인체에는 아무런 해가 없는 방사성동위원소를 아주 조금 하숙집으로 가져와서 남은 음식에 슬쩍 집어넣었다. 며칠 후 바로 그 음식이 다시 나온 것 같다고 생각한 그는 간단한 방사능탐지장치(금판 검전기)를 이용해서 그 음식에서 방사능이 나오는 것을 알아내고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헤베시는 하숙집 아줌마에게 ‘이거 어느 날 저녁에 먹었던 바로 그 음식 아니오?’라고 힘차게 외쳤다. 하숙집 아줌마가 놀래서 털썩 주저앉은 것은 말할 나위도 없다. 방사성동위원소의 실생활 이용의 시초가 다름 아닌 ‘하숙집의 먹다 남은 음식 판별작전’으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은 재미있는 일이다.


근년에 들어서서 방사성동위원소에서 나오는 방사선을 이용하여 온갖 식품의 위생처리와 장기저장하는 방법이 세계적으로 널리 각광을 받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건조채소류, 향신료 등 약 20개에 달하는 식품류가 이미 보건복지부의 방사선처리 승인을 받아 실용의 길을 터놓은 바 있다. 방사선조사(照射)는 가장 안전하고 확실하며 경제적인 식품처리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히 일부의 이른바 소비자단체에서는 방사선으로 식품을 처리하면 마치 당장 죽을 것처럼 난리를 피우고 있다. 딱한 일이다. 도대체 이 세상 어떤 과학자가, 더구나 국가기관의 과학자로서 국민의 건강과 위생을 일부러 망치려고 연구하고 개발하는 경우가 어디 있겠는가? 희다고 설명하고 근거를 제시하는데도 굳이 검다고 내세우는 이유는 무엇일까? 무엇이든지 정확히 알고 나서 판단하는 일이 중요하다. (199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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