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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우외환(內愚外煥)

정준극 2007. 5. 22. 14:51
 

내우외환(內愚外煥)


노태우 전 대통령이 엄청난 액수의 비자금을 숨겨 가지고 있다가 발각되었다는 망신스러운 뉴스는 마침 상하이에 하루 머물던 날 그곳 중국 TV를 통해 알게 되었다. 상하이 중심가에 있는 쳉시(城市)호텔 식당의 TV를 통해서였다. 그 자리에는 일본, 태국, 필리핀, 인도네시아, 베트남, 말레이시아, 그리고 중국 사람들이 한꺼번에 앉아 있었기 때문에 모두들 그 뉴스를 보게 되었다.


우리 일행은 베이징에서 있었던 원자력 국민이해증진 방안을 토의하는 세미나에 참석한 후 중국이 자랑하는 국산1호 원전인 친샨(泰山)원전을 방문하기 위해 상하이에 1박하게 되어 그 호텔에 체크 인 했던 터였다. 모두들 따뜻한 차를 마시며 친샨원전의 터빈이 상하이의 어느 공장에서 만든 것이라느니 하는 얘기를 나누면서 여행으로 피곤했던 몸들을 추스르고 있었다. 원자력계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얘기의 중심은 자연히 원전에 관한 것이었다. 중국사람은 물론이려니와 인도네시아, 태국 등등 다른 나라 사람들도 한결같이 코리아의 원전 프로그램에 대하여 부러운 칭찬을 보내고 있었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은 자기나라의 바탄(Baatan)원전이 전직대통령 마르코스의 부정부패 때문에 완공해 놓고서도 아직까지 사용조차 못하고 있음을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한국은 원전건설 때에 정치성 뇌물이 오고가지 않았기 때문에 오늘날에 이르기까지 가동중 10기, 건설중 6기라는 놀라운 실적을 쌓게 된 것 같다고 부러워했다. 나는 환하게 기분이 좋았지만 속으로 ‘모르시는 말씀! 전두환 대통령 때 원전발주와 관련해서 뇌물이 오고 갔다는 얘기가 있었는데... 5공 청문회도 있었고... 정말 그 소문은 어떻게 결판났나? 무혐의였던가?’라고 뇌까려 보았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식당 한구석에 있는 TV를 통해 노태우 전대통령의 엄청난 비자금 소식을 알게 되었던 것이다. 처음엔 무슨 말인지 몰라서 함께 있던 중국 CNNC(핵공업총공사) 사람에게 무슨 내용이냐고 물어 보았더니 설명인즉 노 전대통령이 재임기간 중 막대한 정치자금을 은밀히 모았다는 것이고 그런 내용을 이현우라는 사람이 검찰에 가서 사실이라고 확인했던 것이다. 또 노태우씨는 그런 엄청난 액수의 비자금을 정치자금으로 기업체로부터 받을 때, 그리고 대형 국책사업을 추진할 때에 막대한 커미션을 받아 인 마이 포킷(In My Pocket)으로 챙겼을 것이라는 해설이 있었다는 것이다. 이날 저녁, 홍콩의 스타TV 역시 노씨의 비자금 이슈를 크게 다루고 있었다. 홍콩TV는 한국의 국방사업인 율곡사업과 원전건설에 따른 콤미션 가능성 얘기도 보도했다. 정말 창피해서 혼났다. 망신도 분수가 있는 법인데 이건 여러 나라 사람들 앞에서 도무지 창피스러워서 얼굴을 바로 들지 못할 정도였다. 특히 창피스러웠던 것은 원전발주를 둘러싸고 거액의 커미션을 받아 챙겼을지도 모른다는 얘기였다. 같이 앉아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그 렇다면 코리아의 원전은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게 아니냐는 얘기도 농담 비슷하게 나왔다. 필리핀에서 온 사람은 다시한번 바탄원전도 마르코스 전대통령이 뇌물을 받아먹는 통에 아직까지 국민들 사이에서 원자력에 대한 이미지가 나쁘다고 설명했다.


대통령은 나라와 국민의 프라이드를 지켜 줄 의무가 있다. 그런데 우리의 노 전대통령은 무슨 할 일이 그렇게도 없으셔서 나같이 하찮은 사람도 상하이에서 망신당하게 만드시는지 모르겠다. 하기야 어디 대통령을 지내셨던 분 뿐이랴?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의 은총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기원합니다.’라고 읊으시며 간증하시던 어떤 종교인의 경우는 어떠한가? 또 우리 과학계는 어떠한가? 별별 고집과 자만심과 이기심 때문에 대다수 과학기술인들의 그 별 볼일 없는 프라이드마저 형편없이 만들고 계시는 분은 없는지? 개혁을 한답시고 비정상적인 일을 정상적인 것처럼 추진하고 있는 분이 혹시 계시다면 그분에게 말해주고 싶다. 순리대로 진실을 따르는 것이 바로 개혁이란 것을. ('95.  12월호)

 

 

 

필리핀의 바타안 원자력발전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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