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방콕 소야곡

정준극 2007. 5. 22. 15:13
 

방콕 소야곡


여름휴가 때 어디라도 다녀올 계획이냐고 물으면 이윽고 방콕이라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더러 있다. 태국의 수도 방콕을 다녀오겠다는 말이 아니라 그저 아무 데도 가지 못하고 ‘방에나 콕 박혀 있겠다’라는 뜻이다. 그러면 진짜로 방콕에 다녀올 계획인 사람들은 무어라고 대답할 것인가? ‘방에나 콕 박혀있겠다’고 말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아하, 황금사원과 환락의 도시 방콕을 다녀오겠다는 뜻이구나!’라고 믿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런 농담은 삼척동자라도 다 아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얘기 거리로서는 별 의미가 없다. 하지만 굳이 방콕을 들먹이는 것은 이 도시가 최근 지구온난화의 영향 때문에 가마솥으로 변해있다는 얘기를 하고 싶어서이다. 방콕은 세계의 다른 곳에 비해 지구 온난화의 영향을 두배나 더 받고 있다는 것이다.


지구기온변화를 연구하는 동남아센터의 최근 조사결과에 따르면 지난 50년간 세계의 평균기온 상승은 0.7%에 지나지 않았지만 방콕의 경우는 1.2%나 올라갔다는 것이다. 그래서 요즘의 날씨는 매일 평균 섭씨 35도를 넘는다는 것이다. 그러니 가마솥 같다고 아니할 수 없다. 말이 섭씨 35도이지 캐캐한 툭툭(3륜차)의 매연이 뒤덮여 있는 거리를 그런 찜통더위 속에서 걸어 다닌다는 것은 정말 참기 힘든 일이다. 지난번에 방콕을 가 보았더니 거리의 교통경찰들은 물론이고 웬만한 거리 노점상인들도 거의 모두 마스크를 하고 있었다. 매연 때문이었다. 그런 더위와 매연은 그 곳에서 태어나고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조차 참기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그런 실정이니 그저 틈만 있으면 시원한 물을 찾아 마신다. 그래서인지 방콕만큼 코카콜라가 잘 팔리는 지역도 없다. 물이나 청량음료수를 사먹지 못할 형편에 있는 사람들은 아무 물이나 마신다. 배탈나는 것은 시간문제이다.


게다가 훅하는 습기 또한 보통 이상이다. 거의 매일같이 오후만 되면 쏟아지는 소나기 때문이다. 소나기가 지나간 후의 거리와 건물에서는 김이 무럭무럭 솟아오른다. 방콕을 껴안듯이 흐르는 챠오프라야 강도 습기 및 악취 생성에 대단한 기여를 하고 있다. 줄줄이 늘어선 수상가옥 들에서 배출되는 각종 생활폐기물이 강물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을 한눈에 볼 수 있다. 강 위에는 수많은 모터보트들이 마치 수상레이스를 하듯 소리를 내며 이리저리 쏜살같이 달린다. 방콕시민들의 교통수단인 챠오프라야 강의 시내버스들인 셈이다. 이들 모터보트에서 배출하는 오염물질 또한 심상치 않은 실정이다. 방콕에는 지하철이 없다. 지반이 물렁물렁해서 지하철을 놓기가 어렵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생각컨대 아마 자금난 때문인 듯하며 더구나 거의 10년이나 걸리는 지하철 공사를 하자면 그 기간동안 지상 교통이 지금보다 훨씬 더 엉망진창의 교통지옥이 될 터이니 그러면 태국 최대의  수입원인 관광수입이 타격을 받을 것이므로 당장 어찌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다. 지하철을 운행하려면 많은 양의 전기가 필요한데 그것은 또 어떻게 공급하느냐는 어려움도 있다. 하기야 대용량의 발전소를 제꺽 지으면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뜩이나 오염대문에 난리인데 화력발전소를 지을 수는 없고, 수력발전을 건설하자니 방콕주변에는 그럴만한 대상이 없을뿐더러 공사비가 많이 들고... 등등의 이유 때문에 손을 못쓰고 있다. 그러면 원자력발전소를 건설하면 될 것 아닌가? 웬만한 나라들은 모두 원자력발전소를 지어서 이모저모로 혜택을 받고 있는데 태국은 왜 망설이고 있는 것일까? 더구나 태국으로 말씀드리자면 아시아에서는 제일 처음으로 전기를 생산해서 사용했던 자랑스런 나라가 아니던가? 기록에 의하면 지금으로부터 약 1백 60년전 라마 5세, 즉 그 유명한 츌라롱코른왕 때 왕의 생일을 기념해서 방콕의 왕궁에 아시아에서는 처음으로 전기 불을 밝히는 축하행사를 했다고 한다. 그런 자부심을 지닌 선구자적 태국이므로 부족한 전기를 충당하기 위해 현대첨단기술의 총아인 원자력발전소를 지어도 한참 전에 지었을 터인데 원자력발전소는커녕 연구용원자로를 새로 짓는 일 조차 난관에 부딪혀 옴짝 못하고 있다.


태국에는 ‘평화를 위한 원자력청’(Office of Atomic Energy for Peace)이라는 정부기관이 있다. 이 나라의 유일한 국립원자력연구소이다. 이곳에는 오래 전부터 아주 작은 규모의 연구용원자로가 하나 있다. 트리가마크 2호이다. 이것 가지고는 필요한 연구를 제대로 하지 못할뿐더러 의료용과 산업용 방사성동위원소도 생각대로 생산할 수 없기 때문에 몇 년전 일대용단을 내려 무려 열출력 10㎿의 새로운 연구용원자로를 건설키로 결정했다. 방콕에서 한참 떨어진 옹카락(Ongkarak)이란 곳에 새로 부지를 조성하고 짓기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롭게 진행되는 듯 했다.


그런데 IMF가 닥쳐와 자금난에 봉착했고 더구나 지역주민 및 환경단체들의 무조건적인 반대 때문에 건설공사는 한발자국도 진척되지 못하고 있다. 더구나 스님을 앞세운 지역주민들은 이곳에 건설하는 시설이 원자력발전소라고 믿고서 열심히 반대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게 아니라 연구하는데 쓰는 원자로라고 해도 그게 그것 아니냐면서 난리를 핀다는 것이다. 더구나 2000년 2월 방콕에서 일어난 방사성동위원소 분실사고로 인하여 서너명의 젊은이가 목숨을 잃는 끔찍한 일까지 있었다. 원자력 사업의 추진을 대단히 어렵게 만든 사고였다. 때문에 이러다가는 새로운 원자로가 언제 착공에 들어갈지 그저 까마득하다는 얘기다. 참 딱하다. 암을 진단하고 치료하는 물건을 만드는 시설이라고 쉽게 설명해도 막무가내기로 반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모두들 목하 전전긍긍이라는 것이다. 태국의 연구로 건설 사업이 글자그대로 ‘방콕’이 되지 않을까 걱정이다. (1999년 3월)

 (*후기: 방콕에는 2003년을 기하여 지하철이 한 구간 개통되었고 고가 철도도 생겼다. 그리고 2005년 현제 태국의 옹카락 프로젝트는 우리식 표현으로 방콕이 되었다.)

 

방콕 에메랄드호텔에서 열린 IAEA 주관의 원자력 PA 세미나에서 토론을 주관하고 있는 필자(중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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