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룰루와 나토

정준극 2007. 5. 22. 15:21
 

룰루와 나토


국음식점에 가보면 둥근 식탁 위에 빙빙 돌릴 수 있는 또 하나의 둥그런 상이 있어서 그걸 돌려 이 사람 저 사람이 음식을 자기 앞으로 손쉽게 가져와서 먹을 수 있도록 해 놓은 것이 있다. 이것을 레이지 수잔(Lazy Susan)이라고 한다.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게으른 수잔’이다. 청조 말엽, 광뚱지방에서 선교사로 있던 어느 서양사람 집에 수잔이라는 똘똘한 중국인 하녀가 있었다고 한다. 중국음식을 무척 좋아했던 그 선교사는 기회 있을 때마다 손님들을 청하여 이 요리 저 요리를 푸짐하게 만들어 놓고 잘 먹었다고 한다. 손님들이 와서 요리를 즐길 때마다 수잔은 힘들어서 죽을 지경이었다. 식탁에 빙 둘러앉은 손님들에게 요리접시를 일일이 들고 가서 서브를 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어떻게 하면 편하게 서브를 할 수 있을 것인가? 그래서 고안해 낸 것이 바로 나중에 ‘레이지 수잔’이라고 일컫게 된 회전식 2중식탁 이다. 정말 실용적인 아이디어가 아닐 수 없다.


그 ‘레이지 수잔’이라는 용어를 원자력분야에서 빌어쓰고 있다. 연구용원자로의 용어로 쓰고 있다. 원자로 안에서 방사성동위원소를 만들 때 여러 타겟을 빙빙 돌려가며 중성자를 쪼일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둥근 판을 말한다. 똘똘한 하녀 수잔이 원자력 분야에도 기여를 했으니 가상한 일이다.


룰루(Lulu)는 루이자(Louisa)라는 여자 이름의 애칭이다. 수잔이나 마찬가지로 서양에서는 아주 흔한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룰루라는 애칭은 대단히 착하고 멋있는 여자를 지칭할 때 사용한다. 마치 프랑스 사람들이 예쁘고 귀여운 아가씨를 미미라고 부르는 것과 같다. 미미라고 하면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의 여주인공을 떠올리게 된다. 이 오페라의 여주인공 이름은 원래 루치아(Lucia)지만 귀엽고 예쁘게 생겼기 때문에 미미라고 부르게 된 것이다. 룰루라는 이름이 사람들의 사랑을 더 받게 된 것은 오스트리아의 알반 베르그라는 작곡가가 쓴 오페라 ‘룰루’ 때문이다. 이 오페라의 사랑스럽고 예쁜 여주인공인 루이자를 룰루라고 불렀다. 그 룰루라는 이름이 근자에 원자력계의 색다른 유행어가 되었다. Locally Unwanted Land Use 라는 말의 머릿글자를 따서 LULU라고 부르기 시작한 것이다. 지역주민이 원하지 않는 부지사용이라는 뜻이다. 지역주민의 반대 때문에 원전이나 방사성폐기물처분장 부지를 구하기 어렵게 되자 한탄조로 나온 유행어이다. 귀엽고 예쁜 이미지의 룰루라는 이름이 NIMBY의 동의어가 된 셈이다. 아무리 애를 써도 지역주민의 반대 때문에 국가적으로 필요한 부지를 구하지 못하는 안타까움이 룰루라는 이름에 함축되어 있어서 씁쓸하다. 그 몹쓸 놈의 지역이기주의 및 집단이기주의! 그리고 상업주의!


요즘엔 또 하나의 원자력용어가 생겨났다. NATO이다. 나토라고 하면 누구나 알다시피 북대서양조약기구를 말한다. 그 나토와 원자력이 무슨 관련이 있다는 말일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NATO는 No Action Talk only, 즉 아무런 행동은 없고 말뿐이라는 말의 머리글자를 따온 것이다. 국가 원자력사업이 지역이기주의 및 극단적인 반핵 환경운동 때문에 난관에 봉착해 있는데도 당국은 다 잘 될 것이라고 말만 앞세울 뿐 실제로는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못하고 있음을 한탄하는 용어이다. 그뿐아니라 정부는(정확히 말해서 공무원들은) 원자력반대를 일삼는 환경운동 단체들에게 잘 보이려고 여러 가지 노력을 아까지 않고 있는 경우도 볼수 있다. 한마디로 한심하다. (1999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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