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엠씨 스퀘어

정준극 2007. 5. 22. 15:22
 

엠씨 스퀘어


일본 혼슈의 허리부분에 있는 후꾸이껜, 드넓은 동해를 바라보며 츠루가(敦賀)라는 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주민 6만 8천의 비교적 작은 도시. 교토로부터 JR 라이쵸(雷鳥) 특급기차를 타고가면 한시간 남짓 걸린다. 츠루가역전에 있는 작은 로터리가 어쩐지 낯설지 않게 느껴진다. 그 로터리 한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동상이 눈길을 멈추게 한다. 갑옷을 입고 칼을 차고 있는 늠름한 모습. 츠루가 아라히토라고 적혀 있다. 동상의 한쪽켠에는 츠루가 유래비라는 명판이 붙어있다.


일본서기에 의하면 약 2천년전인 숭신천황시절, 하루는 어떤 장부가 홀연히 배를 타고 바다를 건너 이 지역에 나타났다고 한다. 한반도 임나국의 왕자 츠루가 아라히토였다. 그는 사람들을 추스려 마을을 이루고 다스리기 시작했다. 츠루가라는 이름은 이렇게  해서 유래되었다. 그래서인지 아직도 츠루가에는 한국인의 후예라고 생각되는 사람들이 더러 살고 있다. 아무튼 후꾸이껜의 츠루가시 일대는 역사적으로 우리나라와 관계가 깊다. 츠루가를 중심으로 도처에 신라와 그 인접나라들의 발자취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그 츠루가가 일본 원자력 개발의 중심지역으로 부각된지 오래이다. 후꾸이껜에는 모두 15기의 원전이 있다. 그 중 상당수가 바로 츠루가일대에 포진하여 있다. 저 유명한 고속증식로 원형로인 몬쥬(文殊)를 비롯해서 고속증식로 실험로인 조요(常陽), 개량형 원자로로 개발중인 후겐, 미하마발전소, 오이발전소, 츠루가발전소, 다카하마발전소, 원자력발전훈련센터, 원자력안전시스템연구소, 원자력보수훈련센터가 모두 이곳에 집결되어 있다. 일본원전 사업의 전시장.


그건 그렇고, 근자에 츠루가가 유명해진 것은 무어라해도 몬쥬사고 탓이 크다고 할 수 있다. 몬쥬가 뭐길래 툭하면 몬쥬사고의 교훈이니 어쩌니 하는 것일까? 몬쥬는 일본이 야심만만하게 추진하고 있는 고속증식로개발계획의 핵심에 있는 원자로이다. 고속증식로라는 것은 한마디로 말해서 사용한 연료보다 더 많은 양의 연료를 생산해 내는 꿈과 같은 원자로이다. 이 원자로가 상용화되면 오랫동안 우라늄핵연료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그러므로 우리처럼 우라늄마저 수입해서 써야하는 일본으로서 고속증식로 개발은 기어코 도전해 볼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실로 일본은 일찍이 1970년대 초반부터 고속증식로 개발계획을 착실하게 추진했다. 그리하여 1995년 8월, 그 동안의 모든 지식과 기술을 바탕으로 해서 몬쥬를 완성했고 전력을 시험생산하기 시작했다. 대성공이었다. ‘이제는 됐다’라고 생각했다. 원래 몬쥬라는 명칭은 석가모니 부처님의 왼편에 서있는 지식과 지혜의 상징 문수보살에서 따온 이름이다. 그러므로 요컨대 몬쥬라는 이름에는 원자력 기술과 인간의 지혜를 조화시키겠다는 바람이 함축되어있다. 사람들은 몬쥬의 성공으로 ‘일본 원자력만세’를 외치며 들떠 있었다.


그러던 것도 잠시 뿐, 몇 달후인 12월 8일, 생각치도 않았던 사고가 일어났다. 원자로와는 직접 관련이 없는 곳이지만 냉각제로 쓰는 나트륨이 파이프에서 새어나온 것이다. 물론 이 나트륨은 방사능을 띠지 않은 것이다. 하지만 나트륨은 특성상 화재의 가능성이 다분히 있는 물질이므로 무척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그 나트륨이 새어나온 것이다. 그깟 나트륨이 조금 샜다고 해서 그게 그렇게 큰 문제였을까. 문제는 심리적인 면이었다. 몬쥬는 연료의 일부로서 플루토늄을 사용하고 있다. 플루토늄이라고 하면 대뜸 핵폭탄을 연상하기 마련이다. 그래서인지 몬쥬에서 사고가 나자 이만저만 소란이 아니었다.


일본 원자력계는 실추된 신뢰를 회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애를 썼다. 정보공개와 정직성을 다시 한번 원칙으로 삼았다. 특히 언론에 대한 진실하고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애썼다. 사고이후 몬쥬발전소에서 잠시 떨어진 홍보관에 별도의 프레스 센터를 설치하여 만반의 협조를 아끼지 않는 것은 대표적 조치이다. 그 프레스 센터의 명칭을 엠씨스퀘어(MC²)라고 했다. 미디어 센터 스퀘어(Media center Square)의 머리글자를 따서 그렇게 이름을 붙였다. 어디서 많이 보던 공식 같은데…어쨌든 한국과 깊은 관계가 있는 츠르가 지역에 일본뿐 아니라 세계 원전의 장래를 판가름할 고속증식로 개발센터가 있다는 것은 신통한 일이다. 그나저나 21세기에 들어서서는 고속증식로가 정말 실용화될까?  (1999년 12월)

 

츠루가 역전 광장에 있는 고구려 왕자 도래기념상 (왕자이름은 아라사도라고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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