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나비다드 유감

정준극 2007. 5. 22. 15:26
 

나비다드 유감


무슨 증명서를 떼러 동회에 갔더니 민원서류 신청서가 놓여 있는 탁자 위에 동전을 모으는 조그만 통이 하나 있었다. ‘당신의 100원이면 굶주린 사람의 한끼 식사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라는 쪽지가 붙어 있었다. 동전이 제법 수북하게 들어 있었다. 동전이 얼마나 모였는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100원이면 배고픈 사람의 한끼를 해결해 줄 수 있다는 데에 관심이 쏠렸다. 100원으로 무얼 먹을 수 있단 말인지?


세계 인구는 약 60억 명이라고 한다. 45억 명이라고 해서 ‘아이구 대단하구나. 이러다가는 인구 폭발 때문에 서 있을 땅도 없어지는 게 아닌가?’ 라고 걱정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 물경 60억 명이라는 것이다. 아무튼 그 중 4분의 1인 15억명이 하루에 천원도 채 못되는 수입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 중에서 절대 빈곤 때문에 기아선상에서 허덕이는 사람들만 따지면 무려 8억 2천 6백만명이나 된다는 것이다. 단 돈 천원, 다시 말해서 단 돈 1달라를 가지고 하루를 견디기 위해 무얼 사서 먹을 수 있단 말인가? 영양실조는 분명한 일일 테고 이런저런 병에 걸리는 일 역시 시간문제일 것이다. 그나저나 병에 걸리더라도 무슨 수로 치료를 받는단 말인가? 돈이 없을터인데… 그러다 보니 먹지 못해 영양실조에 합병증까지 가세해서 목숨을 잃는 경우가 부지기수일 것이다.


어린이들의 경우에는 특히 그러하다. 다섯 살도 안된 어린이들이 영양실조와 질병으로 매년 수백만 명씩 죽어 간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은 그저 놀랍다기 보다는 오늘날과 같은 물질 풍부시대에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 일이다. 21세기에 그런 일이 있을수 있다니? 뉴 밀레니엄을 맞이하고 나면 당장 무슨 수가 생기는 것처럼 떠들어대지 않았던가?


서울 시내 어떤 유명 호텔에서 10여명이 송년회를 했는데 1천만원을 썼다고 한다. 신문에 났다. 우리 나라만해도 20만명의 어린이가 밥을 굶고 있다는 사실을 이들은 알고나 있는지? 국제기아대책기구의 홍보대사로 활동하고 있는 탤런트 임동진씨의 설명이다. 최근 국민적 분노를 사고 있는 대형 금융 비리사고에 대한 뉴스를 보고 나면 ‘이 놈의 세상…’이란 소리가 저절로 나오게 된다. 그 중에서도 어떤 젊은 사람이 금융기관으로부터 1천여억원을 부당하게 대출 받아 이리저리 개인적으로 썼다는 얘기는 참으로 기가 막힌 일이 아닐 수 없다. 1천억원이라면 우리나라가 자랑하는 연구용원자로 하나로(HANARO)의 총 건설비와 맞먹는 것이다. 따지고 보면 우리나라 유일의 이 연구용 원자로 건설사업은 정부로부터의 예산 지원이 여의치 못해서 무려 10년이라는 세월이 걸린 대형 국책사업이었다. 어렵게 건설했지만 보람은 대단했다. 순전히 우리 기술로 건설한 이 원자로는 세계가 부러워하는 시설이다. 각국에서 기술을 배우거나 공동 연구를 하려고 훈련생과 전문가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는 시설이다. 우리나라 원자력 기술의 위상을 세계에 드높인 시설이다. 이같은 하나로 연구용원자로의 총 건설비와 부당대출을 해서 유야무야 썼던 돈이 맞먹는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울분을 토해야만 할 일이다.


땀 흘려 노력해서 정당하게 돈을 벌지 않은 사람들… 남을 속여서 깨끗지 못한 방법으로 축재한 파렴치한 인간들…사회의 암적 존재이며 악랄한 바이러스들이다. 바로 얼마 전 컴퓨터를 쓰는 여러 사람들에게 고통을 주었던 나비다드 바이러스와 같은 존재들이다. 나비다드가 있으면 무조건 잡아 없애는 것이 상책이다. 그래야 온전한 프로그램들이 살수 있다. 나비다드라는 말은 스페인 말로 크리스마스라는 뜻인데 어쩌다가 컴퓨터 악성 바이러스의 명칭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더구나 나비다드 바이러스는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기승을 부리고 있으니 크리스마스를 미워해야할 판이다. 하지만 이런 저런 것을 떠나서 다만 바라건대 어려운 이웃을 기쁘게 해주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나의 넉넉함을 나누어 줄 수 있는 크리스마스가 되었으면 한다. (200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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