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슐가와 느라카

정준극 2007. 5. 22. 15:28
 

슐가와 느라카


이슬람 국가에서는 아직도 남자가 4명까지의 부인을 둘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단순히 종교상의 규범이 아니라 아예 법으로 그렇게 규정하고 있는 나라가 대부분이다. 그런 규범이 만들어 질 수밖에 없었던 과거의 연유야 신경 쓸 바 아니지만 요즘과 같은 남녀평등의 선진 문명사회에서 남자가 4명까지의 부인을 둘 수 있다고 하는 것은 아무래도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하기야 동방예의지국이라고 자처하는 우리나라에서조차 부인을 4명까지 공식적으로 거느릴 수  있다고 하면 솔깃해 할 남자들이 수두룩하겠지만 적어도 도덕적인 가치관을 지니고 있는 사람이라고 하면 ‘아니, 아직도 그런 나라가 있다니…’라면서 짐짓 놀라움을 표시할 것이다.


얼마 전 방글라데쉬의 다카에서 있었던 국제회의에서 우연히도 자기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맞이했기 때문에 함께 살고 있다는 어떤 부인을 만나 얘기를 나눌 수 있었다. 약간은 유치한 궁금증이 발동하여서 ‘혹시 질투 같은 것은 나지 않는지요? 남편이 밉지는 않는지요? 만약 남편이 세 번 째 부인을 데려온다면 어떻게 할 것입니까?’라고 물어 보았다. 이슬람교에 충실한 이 부인의 말씀인 즉 ‘남편이 두 번 째 부인을 맞이한다면 원래 부인은 슐가에 좋은 자리를 차지하게 됩니다. 다른 사람을 미워하면 느라카에 갑니다. 이슬람교의 가르침에 그런 내용이 있습니다’라고 대답해 주었다. 슐가라고 하는 말은 아랍어로 천국이라는 뜻이고 느라카는 지옥이란 뜻이다. 이슬람교에 따르면 저 높은 하늘에 천국이 있어서 착한 일을 많이 한 사람, 알라 신에게 열심히 기도한 사람, 선지자 모하메드의 탄생지인 메카 등 성지를 순례한 사람, 이슬람교를 수호하기 위한 성전(聖戰)에 참여한 사람, 그리고 남편이 두 번째 부인을 거느릴 경우에 첫 번째 부인은 인터뷰없이 슐가에 자리를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다.


 슐가는 7층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한다. 맨 윗 층이 로얄 층이다. 좋은 자리를 확보하게 된다는 것은 바로 슐가의 로얄 층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말이다. 하루에 다섯 번씩 꼬박꼬박 알라 신에게 열심히 기도한 사람, 없는 돈에 온갖 고난을 무릅쓰고 성지 순례 다녀온 사람, 성전에 참여하여 옛날 장총 한 자루를 들고 목숨을 초개처럼 여기며 싸운 사람보다도 두 번째 부인을 본 사람의 첫째 부인이 더 좋은 자리를 차지하도록 예약되어 있다는 얘기는 참으로 뜻밖의 설명이었다. 나중에 슐가라는 곳에서 아주 좋은 자리를 차지할 수 있다는데 무슨 걱정과  무슨 질투가 있을 수 있겠는가? 그나저나 두 번 째 이하의 부인들은 아무리 맘씨가 곱고 신앙심이 두텁다고 해도 슐가의 로얄 층에는 감히 들어가지 못할 터이니 어느 누가 신이 나서 세컨드, 써드로 들어가겠는가? 알라 신은 참으로 묘수를 내어놓아 슐가를 내세운 가정 평화를 유지코자 했고 한편으로는 여성의 사회적 위상을 은근히 올려놓아 준 것 같다.


요즘엔 이슬람 여성으로서 슐가에 좋은 자리를 차지 할 수 있는 또 하나의 기회가 있다고 한다. 다름 아니라 사회적으로 훌륭한 일, 가치 있는 일을 하면 나중에 슐가에 들어 갈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직도 여러 이슬람 국가에서는 여성이면 당연히 집안 깊숙한 내실에 쥐죽은듯 있어야 하고 기본 교육조차 받을 필요가 없다고 규정하는 입장이다. 실제로 최근 아프카니스탄의 탈리반 정권은 그런 규정을 새롭게 강화하여 시행하고 있다. 그런 입장에서 많은 이슬람 국가에서 여성의 사회 활동이 점점 확대되어 가고 있는 것은 시대가 변하고 있음을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아닐 수 없다. 회교국인 파키스탄에서는 얼마 전 여성이 수상을 지냈다. 현재 인도네시아의 부통령은 여성이다. 철저한 회교국이라는 방글라데쉬의 국무총리도 여성이다. 이들 회교국에서 여성의 과학 기술계 진출도 날로 확대되어 가고 있다. 웬만한 남성들도 도전하기 어렵다는 원자력 분야에 있어서 여성 전문인의 활동이 두드러지고 있는 것은 좋은 보기이다. 회교적 전통 때문에 머리칼을 감추는 의상을 입고 실험실에 있기는 하지만 이들 국가의 원자력연구소를 방문해 보면 여성 원자력 전문인의 활동이 의외로 활발한 것을 알 수 있다. 남성 전유의 이슬람 사회에서 여성의 권익을 새롭게 찾으려는 노력 때문인지 오히려 대단히 열심이다. 무던히도 인내하면서 일하는 모습이 아름답다. 슐가의 좋은 자리는 당연히 이들 차지일 것이다. 느라카는 뻔뻔스러운 남성들 차지이고… (200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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