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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 커피

정준극 2007. 5. 22. 15:30
 

비엔나 커피


왜 자꾸 비엔나 얘기가 등장하냐고 의아해 하는 사람들이 있을지 모르겠다.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본주가 비엔나에 있기 때문에 비엔나에 대하여 관심이 무척 많아서 이다. 우리나라 커피숍에는 비엔나커피가 있지만 정작 비엔나에는 비엔나커피라는 메뉴가 없다. 비엔나의 카페나 식당에 가서 비엔나커피를 달라고 청하면 대부분 고개를 갸우뚱거리면서 다시 주문해 달라는 표정이다. 비엔나에서 마실 수 있는 커피를 모두 비엔나커피라고 할수 있으므로 아무 커피나 달라는 뜻이라면 말이야 되지만 ‘웬 정신 나간 놈인가?’라는 오해를 받기 쉽다. 그러므로 무식하다는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비엔나에서 비엔나커리를 시키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말하는 비엔나커피, 즉 진한 커피에 휘핑크림을 얹어 주는 것은 원래 비엔나에서 아인슈패너라고 하한다. 이것이 비엔나를 대표하는 커피의 대명사이다. 그러나 요즘에는 카푸치노 스타일의 멜란즈(Melange)가 가장 보편적인 비엔나의 커피로 인식되고 있다. 멜란즈라는 단어는 프랑스어로 혼합한다는 뜻이다. 서로 다른 문화, 예술 또는 전통 따위가 혼합되어 있는 상태를 말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상 원래의 근간은 없어지지 않고 남아 있어서 이질적인 중에서도 독립적인 풍미를 맛볼 수 있다는 복잡한 뜻을 지닌 단어이다.


멜란즈 커피를 마시는 방법도 비엔나 특유의 스타일이 있다. 먼저 커피 잔에 커피 슈가를 한두 스푼 넣는다. 그 다음에 강하게 볶은 커피를 진하게 뽑아내어 잔에 적당히 붓는다. 이어서 생크림을 세게 휘저어서 거품이 나도록 만든 것을 커피 잔이 넘치도록 얹는다. 생크림에 아이스크림을 섞어서 차갑게 만들어 줄 경우도 있다. 이렇게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가 통상 말하는 비엔나커피, 즉 멜란즈이다. 멜란즈를 마시는 데에도 순서가 있다. 우리야 그저 스푼으로 크림과 설탕을 휘휘 저어서 훌쩍훌쩍 마시지만 이건 비엔나 스타일이 아니다. 비엔나 사람들은 설탕을 넣었어도 그것을 젓지 않고 마신다. 처음에는 위에 얹어 있는 휘핑크림의 부드럽고 달콤한 맛을 짭짭 음미한다. 그런 후에는 다소 쓴맛이 느껴지는 진한 커피를 살며시 마신다. 마지막으로 이미 넣어 둔 설탕이 뜨거운 커피에 녹아 달콤하게 된, 그러면서도 쌉쌀한 맛이 감도는 커피를 즐긴다.


합스부르크 왕가의 전통이 아직도 면면히 살아 숨쉬는 오스트리아이다. 음악과 사랑의 도시 비엔나가 커피로 이름 떨치게 된 연유에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가장 유력한 것은 터키의 영향을 직접 받았다는 설이다. 약 4백년 전, 이슬람교도인 오스만 터키가 비엔나를 침공하여 상당 기간을 지배한 일이 있다. 모차르트와 베토벤의 피아노 곡 중에 ‘터키행진곡’이 있다. 모차르트나 베토벤은 모두 비엔나에서 살다가 비엔나에서 세상을 떠난 음악가들이다. 그런데 웬 터키 주제의 음악이냐고 반문할지 모르지만 한때 터키가 비엔나를 점령하여 자기네 문화를 당분간 심어 준 영향이 있음을 상기하면 이해가 쉽게 갈 것이다. 각설하고, 비엔나에서 터키군이 기독교군의 반격을 받아 패배하여서 퇴각할 때에 원두커피를 많이 남기고 갔다고 한다. 처음에 비엔나 사람들은 터키 군이 남기고 간 커피를 어떻게 조리하는지를 몰라 우물쭈물했는데 마침 터키 사람으로서 전쟁에 참가했다가 오스트리아로 전향한 아무개라는 사람이 뜻한바 있어서 터키 식의 커피 만드는 법을 널리 전파함으로서 오늘날 대전 궁동에 있는 모차르트라는 커피샵에서도 비엔나커피, 즉 멜란즈를 맛볼수 있게 되었다.


커피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은 10세기에 아라비아의 어떤 의사가 쓴 책이다. 그전에는 구전으로 에티오피아에서 몇 천년 전에 사람들이 커피를 먹었다느니 하는 얘기가 있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전해 내려오는 얘기일 뿐이다. 기록에 의하면 커피가 소화에도 좋고 이뇨에도 좋으며 강심에는 더욱 좋다고 되어 있다. 건강식품 선전이 따로 필요 없을 정도의 커피 예찬이다. 아랍 사람, 즉 이슬람교도들이 커피에 대하여 애착을 가지고 유난히 즐기고 있는 이유는 마호메드에 얽힌 전설 때문이다. 마호메드가 병상에서 알라신에게 기도하고 있을 때 천사장 가브리엘이 커피 한 사발을 가져다주었는데 그걸 마시고 난 마호메드가 원기 왕성하여 이런 저런 힘 자랑을 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슬람교도들이 커피를 애지중지하지 않을 수 없는 입장이 된 것은 설명이 필요 없는 얘기가 아닐 수 없다. 또 기원 후 3세기경 홍해에 가까운 어느 수도원에서 수도사들이 커피를 마시기 시작했더니 밤에 잠이 오지 않아 기왕에 기도를 장시간 할 수 있게 되었으며 원기가 충천하여 밭일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는 얘기도 있다. 아무튼 커피가 정신을 차리게 해주고 원기를 살려주며 피곤함을 풀어 주는 소중한 것이라는 얘기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널리 퍼져 있는 사항이다. 바라건대 정신 빠진 오늘날의 정치인이나 공직자 제위께서는 커피나 많이 마시고 민생을 위해 제발 정신들 좀 차렸으면 좋겠다. 원자력과 관계되는 사람으로서 비엔나의 역사와 비엔나의 음악과 비엔나의 커피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국제원자력기구, 즉 IAEA본부가 비엔나에 있기 때문이다. (200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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