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건망증 세상

정준극 2007. 5. 22. 15:37
 건망증 세상


어떤 아주머니가 바쁜 일이 있어서 택시를 잡아탔다. 한참이나 지났을까? 건망증이 심한 이 아주머니는 도대체 자기가 어딜 가는 건지 생각이 나지 않았다. ‘저, 기사양반! 이 차가 지금 어디로 가는 거요?’라고 물어 보았다. 택시 기사는 얼핏 뒤를 돌아보더니 ‘아니, 아주머니! 언제 탔어요?’라고 하더란다. 이런 건망증은 한 번 픽 웃어넘길 일일 뿐 별다른 감정을 가질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러나 세상엔 정말 의도적이고도 이기적인 건망증이 만발하고 있어서 속을 상하게 만든다. 국회의원에 입후보한 사람들은 선거 때 별별 약속을 다 내건다. 산업폐기물을 뿜어내는 공장은 들어오지도 못하게 하며 개천에서는 물고기들이 왔다 갔다 하도록 하겠다고 약속한다. 교육 환경을 위해 학교 주변에는 유흥업소가 얼씬도 못하게 하겠다고 하며 퇴폐 행위를 뿌리 뽑아 도덕 사회를 만들겠다는 약속도 한다. 그러나 그 다음은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 모두들 건망증이 심해서 까맣게 잊어버린 모양이다. 부정을 저질러 수사당국의 심문을 받고 있는 사회지도층이란 사람이 자기는 아무것도 알지 못한다면서 모르쇠 일변도로 나가는 것을 보면 ‘세상에 저런 철면피가 어디 있는가?’라는 생각에 분통이 터진다. 그러다가 그 사람에게 확실한 증거를 들이대고 ‘이래도 모른단 말입니까?’라고 하면 그제서야 ‘기억이 잘 나지 않아서!’라며 변명하기에 바쁘다. 그런 건망증이 있는 사람이 어떻게 사회 지도층이란 말인지 모르겠다.


민족의 성지인 독립기념관 주변이 점차 유락 단지로 변모해 가고 있다는 소식이다. 천안방면과 진천 쪽으로 이른 바 농촌형 러브호텔이 우후죽순격으로 세워져 성업중이라고 한다. 독립기념관 부근에는 거대한 골프장까지 들어섰다고 한다. 러브호텔 건설업자들이나 골프장 사람들도 독립 기념관 건축 성금을 냈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의 민족적 감정은 싹 잊어버리고 얼굴을 붉히게 하는 영리에만 급급한 것같다. 답답한 건망증 환자들…. 역사를 바로세우기 위한 독립기념관인데…아마 그들은『역사가 누워 있었나? 바로 세우게』라고 할는지 모르겠다.


대덕연구단지가 속하여 있는 유성구 어은동, 도룡동, 궁동일부 지역이 관광특구로 지정되어 있어서 이것이 불합리하다며 해제를 요구하는 소리가 작년부터 있었다. 관광특구라는 미명 아래 유흥업소들이 급증하여 변태, 퇴폐, 심야영업을 일삼고 있어서 연구환경을 해치고 있으며 교육 분위기도 저해하고 있다는 이유 때문이었다. 여하튼 특구해제 요청이 줄을 이었고 언론에서도 이런 상황을 상세 보도하였으나 오늘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궁동은 압구궁동으로서의 위세를 계속 떨치고 있다. 특구해제 주장은 다 잊어버렸나? 또 하나의 건망증 세상이다. (1996년 9월. 중도춘추)

'보덕봉 메아리 > 보덕봉 메아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야쿠자 별곡  (0) 2007.05.22
서산 너머 해님  (0) 2007.05.22
겨우 하루  (0) 2007.05.22
RCA 소고  (0) 2007.05.22
침묵이 미덕  (0) 2007.05.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