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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산 너머 해님

정준극 2007. 5. 22. 15:37
 

서산 너머 해님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 할 때에…’라는 동요가 있다. 이 동요는 과학적 입장에서 보면 오류가 있다. 우선 해님이 숨바꼭질한다고 되어 있지만 실상 태양은 그대로 있는 것이고 태양의 둘레를 맴돌고 있는 것은 지구일 뿐이다. 더구나 우리가 서산(西山)쪽에 있는 태양을 바라본다고 해도 그건 그 위치에 있는 태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몇 분전에 있었던 환영(幻影)을 보는 것이다.  태양에서부터 지구까지의 거리는 약 1억 5천만km나 된다. 빛은 1초에 30만km의 속도로 달린다. 태양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려면 약 8분이라는 시간이 걸린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 8분전의 태양을 보았을 뿐이지 현재 그 태양이 어느 위치에 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별의 경우에는 더하다.


‘저녁 먹고 놀러 나온 아기별…’이 태양계의 행성 중 하나라면 모를까 그렇지 않고 태양과 같은 수준에 있는 항성이라고 하면 지구로부터 가장 가까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 별빛이 지구까지 도달하는 데에는 4년이란 세월이 걸린다. 따라서 저녁먹고 놀러 나온 밤하늘에 반짝이는 별이 행성 중의 하나라고 하면 우리는 적어도 4년 전의  별빛을 이제서야 보고 있는 것이다. 이렇듯 실제 생활에서조차 환상을 보는 경우가 더러 있다.


실생활과 환상을 구별하지 못하는 경우는 또 있다. 봉급생활자가 1년에 1천만원을 모으기란 참으로 어렵다. 1억원을 모으려면 허리띠를 졸라매고 10년이란 세월을 보내야 한다. 그런데 누구라면 모두 아는 모씨는 떡값 명목으로만 33억 원을 받아 챙겼다고 한다. 1년에 겨우 1천만원을 저축할 수 있는 직장인으로서는 330년을 안 먹고 안 입고 안 쓰며 모아야 하는 액수이다. 옛날에는 1억 원이라고 하면 일반인들로서는 상상할 수조차 없는 환상의 숫자였다. 그런데 요즘에는 상황이 달라졌다. 주위에서 온통 몇 천억, 몇 백억, 몇 십억이라는 엄청난 숫자를 식은죽 먹듯 얘기하기 때문에 그런지 모두들 감각이 무디어진 것 같다. 정부의 허황된 개발정책, 그리고 지역이기주의 때문이다. 단 돈 몇 백원 때문에 반찬가게 앞에서 바들바들 떠는 주부가 있는가 하면 1천만 원을 1천 원쯤으로 생각하고 펑펑 쓰는 사람들이 있는 것은 이제 더 이상 환상이 아니라 현실이다. (1997년 5월. 굄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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