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대전표 음식

정준극 2007. 5. 22. 15:39
 대전표 음식


야간열차가 대전역에서 잠시 쉬어 갈 때 얼른 뛰어내려서 허겁지겁 가락국수 한 그릇을 사서 고춧가루를 듬뿍 친 후 훌훌 마시던 그 기가 막힌 맛은 나뿐만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이 아직도 향수처럼 기억하고 있는 그런 일이다. 그런데 얼마 전 대전역의 국수집에서 다시 먹어 보니 미안하지만 ‘이게 아니올시다’였다. 그 때 그 시절의 맛이 아니었다. 솔직히 말해 고속도로 휴게소의 가락국수와 그저 다를 바가 없었다. 아무튼 대전역의 가락국수는 유명했다. 일부러 대전역 가락국수를 먹으로 기차타고 오는 사람까지 있을 정도였다.


그 보다도 대전에는 과연 대전 고유의 별식이 있는 것일까? 우리 연구소를 찾아오는 외부 손님들도 가끔은 ‘대전특식’이 무엇인지 경험해 볼 수 없느냐고 문의하지만 선뜻 뾰족한 대답이 나오지 않는다. 전주비빔밥, 수원갈비, 부산제첩국, 평양냉면, 춘천막국수…뭐 그런 것이 대전에는 없을까? 어떤 사람들은 숯골 냉면을 대전표 음식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건 어차피 평양냉면을 원조로 하고 있는 것이다. 옛날 수운교(水雲敎)가 지금의 유성구 탄동 부근에서 터를 닦게 되자 평안도 출신의 교도들이 와서 살면서 메밀을 심어 냉면을 만든 것이 숯골 냉면의 시초라고 하므로 ‘순수 대전표 음식’이라고 할 수는 없다. 신탄진 방향, 구즉이라는 곳의 도토리묵도 유명하지만 그것 역시 대전표 고유 음식이라고 부르기는 어렵다. 도토리묵 음식이야 전국 어디를 가도 있는 것이 아닌가? 게다가 요즘엔 중국에서 수입한 도토리를 쓴다고 한다. 산내 쪽의 순두부가 유명하다는 주장도 한다. 그쪽 사람들은 순두부라고 하지 않고 살아 숨쉬는 두부와 같다고 해서 숨두부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것이 대전 대표라고 할 수 있을까? 역시 갸우뚱이다. 두루치기라는 것이 있다. 옛날부터 일반 가정에서 흔히 있었던 별미였다. 쇠고기와 무, 배추속대, 버섯, 호박고지 같은 것을 두루두루 섞어서 볶은 것이다. 그러나 이 두루치기도 대전의 전유물은 아니다. 물론 대전과 충청 지방의 두루치기에는 반드시 두부가 들어간다는 처방도 있으나 어쨌든 두루치기는 전라도에 있는 대중 음식일 뿐이다. 세계 속의 대전을 위해서 대전표 전통 별식의 개발과 보존도 의미 있을 것 같다. 다만 대전 고유식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데에 부정이나 비리가 없어야 할 것이다. 요즘 보면 세상만사가 온통 비리  투성이인 것 같기 때문이다. (1996년 12월 대전일보 한밭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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