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아들 딸 들아

정준극 2007. 5. 22. 15:41
아들 딸 들아


우리말 중에는 재미있는 것이 더러 있다. 낱말이 아니라 문장 자체를 거꾸로 읽어도 똑같은 내용이 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이게 무슨 뜻인가 하면, 예를 들어 ‘소주 만 병만 주소’라는 말은 거꾸로 읽어도 ‘소주 만 병만 주소’가 된다는 말이다. 그런데 이 말은 재미는 있을지언정 현실성은 없다. 아무리 우리 민족이 술 잘 먹는 민족이라 해도 어느 누가 소주를 만병이나 사서 마시겠느냐 말이다. ‘아들 딸 들아’라는 말이 있다. 거꾸로 읽어도 ‘아들 딸 들아’가 된다. 역시 신통한 우리말이 아닐 수 없다. 사실 한 때는 ‘딸을 둔 사람은 비행기 타고 해외 관광 가지만 아들만 믿고 사는 사람은 나중에 쪽박만 차고 서러워 못살 지경이다.’라는 말이 실감나는 경우가 허다했다. 이런 세태에서 얼마 전 어떤 잡지에 소개되었던 할머니의 얘기는 우리에게 일대 경종을 울려 주는 씁슬한 것이었다. 내용인즉 다음과 같다.


할아버지를 일찍 저 세상으로 보낸 이 할머니에게는 아들 둘에 딸 하나가 있다. 할머니는 아버지 없는 이 아디들을 애탄개탄하며 최고학부까지 마치도록 하고 또 결혼 시켜 주는 등 온갖 뒷치닥거리를 다 했다. 그러느라고 그나마 가지고 있던 알량한 재산을 모두 날려 버렸다. 사업한다고 돈 대 달라느니, 아파트 분양 받으려는데 돈 좀 달라느니 등등 이런저런 이유로 자녀들은 할머니의 있는 돈 없는 돈 다 긁어 갔던 것이다. 그런 할머니를 두고서 자식들은 누가 노인네를 모시냐는 문제를 가지고 격론을 벌였다. 뜻밖에도 서로들 성심껏 모시겠다는 것이다. 할머니가 큼직한 다이아몬드 반지와 진주목걸이 따위를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다. 돈으로 따지면 수천만 원은 됨직한 귀중한 패물들이었다. 두 아들과 딸은 그것이 탐이 났던 것이다. 아무튼 그 패물 때문이었는지 이 할머니는 세상 떠날 때까지 그나마 상당한 대우를 받으면서 지낼 수 있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자 두 아들과 딸은 한바탕 싸움박질을 했다. 장례를 모시는 일은 뒷전이었고 누가 패물을 차지하느냐는 문제를 놓고 창피할 정도로 난리를 폈다. 결국 공평하게 나누기로 하고 일단락지었다. 할머니의 몸에서 다이아몬드 반지와 목걸이를 서둘러 벗겨내어 팔기로 했다. 그런데 그게 전부 모조품이었다는 것이다. 할머니로서는 그렇게라도 해야 두 아들과 딸이 자기를 괄시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오죽했으면 그랬을까? 세상의 아들 딸 들은 모두 마음에 새겨서 들어야 할 얘기가 아닐 수 없다. 최근 조사 발표에 따르면 노부모들의 50%가 아들이나 딸과 함께 살지 않고 따로 살고 싶다는 것이다. 딱한 일이다. (‘98년 10월 14일 목요수상.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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