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반대로 가는 계절

정준극 2007. 5. 22. 15:40
반대로 가는 계절


지난달에 국제원자력기구(IAEA)초청으로 지구의 반대쪽 아르헨티나에서 열린 회의에 참석한 적이 있었다. 비행기 안에서 보낸 시간만 해도 꼬박 24시간이나 되는 장거리 여행이었다. 말이 여행이지 그건 정말 고역 중에서도 고역! 꼭 12시간 차이가 나는 시차도 시차였지만 반대로 가는 계절에 적응해야 하는 것도 힘든 일이었다. 아르헨티나는 땅이 넓다. 우리나라 면적의 거의 30배가 된다. 수도인 부에노스아이레스에만 사람들이 잔뜩 몰려 있고 나머지 지역은 텅텅 비어 있다. 땅이 넓어서인지 소를 많이 키운다. 자연히 비프스테이크가 유명하다. 미국에서 보던 비프스테이크 보다 훨씬 두껍고 크다. 거짓말 약간 보태서 아이들 신발주머니만 하다고 보면 된다. 소를 많이 키워서인지 이 나라에선 가죽 제품이 유명하다. 가죽 코트, 가죽 점퍼, 가죽 핸드백 등등…품질은 별로 좋지 않은 것 같은데 ‘메이드 인 아르헨티나’ 상표 때문인지 값은 놀랄 정도로 비싸다. 그러나 정작 놀랄 만한 일은 주요 고객이 바로 한국 관광객들이라는 것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내 중심가의 유명 가죽제품 상점들에는 한국어 안내 간판이 나붙어 있고 심지어는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점원까지 고용하고 있는 실정이다. 더구나 이곳 가죽 제품 상점에서는 한국 쇼핑객이 늘자 한국 사람의 취향이나 체격에 맞는 갖가지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다. 고객의 대부분은 한국에서 부동산 등으로 갑자기 돈을 번 졸부들이 대부분이라고 한다.


아니, 그렇다면 우리나라 관광객들이 지구의 반대쪽, 24시간 이상의 장거리 비행 끝에 올 수 있는 이곳까지 줄줄이 온단 말인가? 정말 놀랄 일이었다. 그런데 정말 놀랄 일은 또 있다. 요새는 한국으로부터 골프를 치기 위해 우정 이곳까지 오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다. 최소한 왕복 4일! 단 몇 차례 골프를 치기 위해 그 비싼 비행기 값을 내고 숙박비 쓰면서 온다는 얘기다. 이렇게까지 「세계화」가 빨리 될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꼴불견! 특별히 필요치도 않은 가죽옷을 펑펑 사는 사람들도 꼴불견이고 골프 한번 치기 위해 장거리 여행이라는 대단한 고역조차 마다하지 않는 사람들도 꼴불견이다. 그런데 그런 한국 사람들이 꼴불견이라고 빗대서 말하는 사람들은 이 나라 사람들이 아니었다. 그 먼 아르헨티나에서 열심히 살고 있는 우리나라 교포들이었다. 부동산으로 떼돈을 번 우리나라 졸부들! 언제나 정신을 차릴지? 그러면 아마 이렇게 말할 것이다. '당신이 내가 돈버는데 보태준것 있어?' (1996년 12월. 대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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