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덕봉 메아리/보덕봉 메아리

구조조정의 여파

정준극 2007. 5. 22. 15:43
구조조정의 여파


동서양을 막론하고 사람 사는 사회에서는 운수나 재수에 대한 미신이 있기 마련이고 액땜을 위한 별별 제스처 역시 다양하기 마련이다. 재수 없는 사람이 왔다 가면 소금을 뿌린다든지 재수 없는 날을 피해서 이사를 간다든지 하는 것 따위이다. 운수나 재수에 관한 미신 중에서 대표적인 것은 숫자와 관련한 것이다. 우리나라를 비롯해서 중국과 일본에서는 四字를 금기로 여기고 있다. 四字의 발음이 죽을 死字와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호텔이나 병원 같은 곳에는 아예 4층과 4호실이 없는 경우도 허다하다. 일본에서는 四와 함께 九도 싫어한다. 九가 고생한다는 苦와 발음이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9일에 이사를 간다든지 연회를 베푼다든지 또는 과일을 아홉 조각으로 깎는다든지 하는 일은 기피하고 있다. 물론 수험 번호나 전화번호에 9가 들어가는 것도 싫어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九字가 환영을 받는다. 구원한다는 救字와 발음이 같기 때문에 약국이나 병원에서는 九字를 대단히 선호하고 있다. 또 술을 말하는 酒도 구한다는 救와 발음이 같다.


우리는 八字를 별로 탐탁하게 여기지 않는데 중국과 일본에서는 특별대우를 받는다. 중국에서는  개방 이후 개발붐을 타고 發字와 발음이 같은 八字가 인기를 끌게 되었다. 그래서 자동차 번호, 회사의 전화번호 같은 것에 8字가 들어가는 것을 대단히 선호하였다. 만일 전화번호나 자동차 번호가 8888이면 값을 불문하고 사들이려고 한다. 일본의 경우는 좀 다르다. 일본에서는 八字의 모양이 아래쪽으로 벌어졌기 때문에 팔자와 관련되면 나날이 복이 많이 들어온다고 믿고 있다. 아무튼 8이 들어가는 날에 회사창업을 하거나 결혼식을 올리는 것은 은근히 기분 좋은 일로 간주되었다.


중국에서는 라이센스 넘버가 8888이면 대박으로 간주하여 대인기이다.


통상 길일을 따져서 결혼 날짜를 잡는 것은 어느 나라나 마찬가지이다. 우리나라도 예외일 수 없어서 길일을 택하느라고 소란을 떨며 또 남들이 바쁘지 않는 때에 그런 행사를 하는 것이 통념처럼 되어 있다. 그런데 연말을 맞이한 요즘은 전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예년 같으면 춘삼월 호시절 및 오곡백과가 무르익는 가을철에 자녀 결혼식을 올리도록 하는 것이 관례였는데 올해에는 유별나게 1년을 마무리하는 12월에 결혼식이 많다. 전국을 강타하고 있는 구조조정의 여파 때문이다. 올해 안으로 구조조정을 마무리해야 하는 기관들이 많다. 대덕 연구단지 내의 정부출연연구소도 마찬가지 형편이다. 명예퇴직과 희망퇴직 및 이른 바 아웃소싱이 봇물처럼 터질 예정이다. 그나마 퇴직하기 전에 자녀 혼사를 치루어야 겠다는 것이 부모들의 마음이다. 솔직히 말해서 재직 중에 있어야 그나마  하객들이 찾아올 것이고 부조금도 상당히 건질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1998년을 마감하는 세태의 단면인 듯싶다. (2001년 12월. 경향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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