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스트리아 더 알기/바벤버그-3공화국

바벤버그로부터 홀로코스트까지

정준극 2007. 6. 29. 18:09

[바벤버그 왕조의 출범]

 

프라이융의 쇼텐슈티프트와 키르헤


로마제국 당시에는 변방의 요새에 불과했던 빈도보나가 유럽의 중심도시로 부각한 것은 12세기초, 바벤버그(Babenberg)왕조가 이곳을 본거지로 삼고 빈(비엔나)이라는 이름으로 새출발한 때부터였다. 비엔나를 정식 수도로 삼은 사람은 일명 야소미어고트(Jasomirgott)라고 불리는 하인리히 대공으로서 1156년의 일이었다. 그 시기로부터 오스트리아는 공국으로서 인정을 받았고 비엔나는 공국의 수도였다. 비엔나를 오스타리히의 수도로 삼은 하인리히 2세 야소미어고트 대공은 비엔나의 중심지역에 궁전과 교회를 지었으니 그것이 암 호프(Am Hof)이다.


하인리히(헨리) 2세가 비엔나를 공국의 수도로 삼고 지은 궁전과 교회. 암 호프


신앙심이 깊은 하인리히 대공은 새로운 도시인 비엔나에서 기독교를 더욱 널리 전파하기 위해 독일에 있는 아일랜드 베네딕트 종단의 수도승들을 초치하여 수도원을 세우고 교회를 세웠으니 그것이 오늘날 프라이융에 있는 쇼텐슈티프트와 쇼텐키르헤이다. 쇼텐클로스터(Schottenkloster)라고도 하는 쇼텐슈티프트는 신생도시 비엔나의 신앙의 중심지였다. 비엔나 중심지역의 바벤버거슈트라쎄는 바벤버그 왕조를 기념하여 붙인 이름이다. 부르크링(Burgring)의 미술사박물관 옆길로부터 마리아힐르퍼슈트라쎄가 시작되는 곳까지의 거리가 바벤버거슈트라쎄이다. 유럽의 동부인 오스타리히(Ostarrichi)지방을 근거지로 일어난 바벤버그왕조는 다뉴브강을 끼고 있는 넓은 평지인 비엔나를 거점으로 삼은후 다른 민족들에게도 문호를 개방하여 거주토록 했다. 실은 그 때부터 유태인도 와서 살게 되었고 심지어 종교 때문에 영국으로부터 피난처를 구하러 온 순례자들도 많이 받아 들였다. 비엔나에 아일랜드 수도승들이 들어와서 정착하게 되자 아일랜드와 관련된 여러 지명이 생겼다. 쇼텐링(Schottenring), 쇼텐토르(Schottentor) 등이다. 쇼텐이라고 하면 스코틀랜드를 생각하게 되지만 비엔나에서의 쇼텐은 아일랜드를 말한다. 아무튼 바벤버그의 정책으로 비엔나는 점차 국제도시로 성장하였다.


쇼텐슈티프트와 교회. 오른쪽 끝 벽면에 하인리히 2세의 부조가 있다.

쇼텐슈티프트(Schottenstift)의 벽에 있는 하인리히 야소미어고트(1107-1177)의 기념부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