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남몰래 읽는 366편

338. Wagner, Richard (리하르트 바그너) [1813-1883]-방랑하는 화란인

정준극 2007. 7. 5. 11:38

리하르트 바그너

 

[방랑하는 화란인]


타이틀: Der fliegende Holländer (The Flying Dutchman). 3막의 낭만적 오페라.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의 Aus den Memoiren des Herrn von Schnabelewoposke(슈나벨레보프스키씨의 비망록으로부터)를 기본으로 하여 작곡자 자신이 독일어 대본을 썼다.

초연: 1983년 독일 드레스덴 왕실작손궁정극장(Königliches Sächsisches Hoftheater)

주요배역: 달란트(노르웨이 선장), 젠타(달란트의 딸), 메리(젠타의 유모), 에릭(젠타를 사랑하는 사냥꾼), 화란인

음악 하이라이트: 폭풍 모티프, 뱃사람 부르는 소리와 메이라, 구원 모티프(젠타의 발라드), 저주의 모티프(젠타의 발라드), 물레 젓는 노래, 달란트의 아리아, 에릭의 아리아

베스트 아리아: Die Frist ist um[시간은 이곳에](B), Durch Sturm und bösen Wind[폭풍을 뚫고서](B), Mögst du, mein Kind[나를 사랑하느냐, 나의 아이야](B), Mit Gewitter und Sturm aus fernem Meer[저 먼바다로부터 천둥과 폭풍 속에서](선원들의 합창), Summ und Brumm(허밍과 노래로서)[물레감는 여인들의 합창], Steuermann, lass die Wacht[조타수여, 망보는 것을 포기하라](선원들의 합창) 


사전 지식: 바그너는 이 작품을 1막으로만 된 긴 오페라로 작곡하였으나 나중에 3막으로 나누었다. 우울하고 침울하며 냉혹하며 소름이 끼치는 비극으로 바그너의 명성을 알리게 만든 최초의 오페라이다. 이 오페라에서 이미 그의 유명한 트레이드마크를 읽을 수 있다. 예를 들면 하나는 화란인의 배가 나타날 때, 또 다른 하나는 화란인이 등장할 때 마다 오케스트라로 연주되는 주제멜로디(Leitmotif)이다. 서곡에서 울리는 인상적인 혼(Horm)소리와 현을 통한 폭풍우 음향은 바로 화란인을 부르는 소리이다. 2막에서 젠타가 부르는 발라드는 3막에도 다시 등장한다. 젠타 자신을 표현하는 라이트모티브이다.

에피소드: 바그너가 아직도 20대의 약관일 때 영국으로 배를 타고 건너가다가 폭풍을 만나 공포에 떨었던 일이 있다. 어찌나 폭풍이 심하였던지 그가 탔던 배가 세 번이나 침몰 직전까지 갔었다. 이 경험이 훗날 ‘방랑하는 화란인’을 탄생케 했다. 그리고 그 때의 경험이 오페라 전편에 걸쳐 노도광풍처럼 나타나 있다. 그러나 하인리히 하이네의 작품에 나오는 화란인에 대한 전설은 다음과 같다. 오래 전의 일. 남아프리카의 희망봉을 돌아가던 화란인 선장은 말할 수 없이 거친 폭풍을 만나 풍전등화의 운명이었다. 화란인 선장은 죽음을 앞둔 자기의 운명을 한탄하면서 마지막으로 ‘만일 이 폭풍에서만 빠져 나가게만 해 준다면 평생을 바다를 방랑해도 좋다’고 애원한다. 이 소리를 들은 악마는 파도를 잔잔하게 해 주는 대신 화란인 선장이 최후의 심판 날까지 바다를 방랑하도록 저주를 했다. 다만, 만일 이 화란인 선장을 죽을 때까지 사랑하는 어떤 여인이 나탄 난다면 그 저주에서 풀어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런 여인을 찾을 수 있도록 7년 마다 한번 육지에 올라갈 수 있게 했다. 물론, 기왕 육지에 올라간 김에 내복도 갈아입도록 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젠타 역의 전설적인 테레사 말텐(Theresa Malten).


드레스덴 극장에서 이 오페라의 초연이 있기 전, 바그너는 빚에 쪼들리고 있었고 경력도 없었기 때문에 이 오페라의 대본을 파리 오페라극장의 제작자에게 판 일이 있다. 파리 오페라극장은 제목은 같지만 대본은 거의 다른 줄거리로 바꾼 오페라를 만들어 공연했다. 바그너는 파리 오페라극장으로부터 받은 돈으로 우선 피아노를 한 대 샀으며 아주 약간이지만 여유가 생겨 자기가 원래 구상했던 대본을 바탕으로 오늘날의 ‘방랑하는 화란인’을 작곡했다. 한편, 파리 오페라극장의 ‘방랑하는 화란인’은 초연 이후 오늘날까지 망각된 상태이다.

 

 '방랑하는 화란인' 포스터


줄거리: 제1막. 1700년대쯤 되는 시기의 노르웨이 어느 항구. 신비스런 화란인은 유령선과 같은 배에 선원들과 함께 망망대해를 정처 없이 방랑하는 저주를 받았다. 화란인의 저주는 어떤 순수한 여인으로부터 사랑을 받으면 풀린다는 것이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것과 같은 서곡에 이어 선장인 달란트(Daland)와 선원들이 폭풍으로부터 그들의 배를 포구에 정박시키려고 정신이 없다. 뱃사람들이 부르는 ‘호 요 헤’(영차)가 힘차고 장엄하다. 하지만 폭풍과 함께 무언가 어두운 앞날을 예고하는 듯한 음울한 합창이다. 언뜻 그 폭풍가운데에서 섬뜩할 정도로 괴이한 배 한척이 시야에 나타난다. 핏빛처럼 붉은 돛에 검은 마스트가 있는 소름끼치는 배이다. 전설적인 ‘방랑하는 화란인’ 선장의 배이다. 달란트선장은 화란(네덜란드)인이 악마의 저주를 받아 바다 위를 정처 없이 영원히 떠돌고 있지만 7년마다 한 번씩 육지에 올라 갈수 있으며 바로 오늘이 그날인것 같다고 선원들에게 설명해 준다. 같은 선장으로서 화란인에게 동정심을 갖게 된 달란트 선장은 자기의 딸이 방랑하는 화란인에 대한 전설을 알고 있다는 얘기까지 하며 화란인을 자기 집에 초대한다. 달란트에게 딸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화란인은 자기 배에 실려 있는 모든 재물을 주겠으니 그와 결혼하게 해 달라고 청한다. 달란트는 재물을 준다는 바람에 황망중에 승낙한다.

 

  전설적인 젠타 역의 레오닌 리자니크(Leonin Rysanic)


제2막. 달란트의 집, 마을 여인들이 물레를 감으며 즐겁게 노래하고 있다. 달란트의 딸 젠타(Senta)는 벽에 걸려있는 전설적인 ‘방랑하는 화란인’의 초상화를 꿈꾸듯이 바라보고 있다. 불쌍하게 저주를 받아 일생을 바다에서 방랑해야하는 화란인에 대한 이야기는 노르웨이 항구마을마다 잘 알려진 얘기이다. 마을 처녀들은 젠타가 미지의 방랑하는 화란인을 연모하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고 하면서 놀려대며 화란인의 전설에 대한 자세한 얘기를 노래해 달라고 청한다. 젠타가 부르는 ‘방랑하는 화란인의 발라드’는 말 할수 없이 아름답고 신비스러운 곡이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감히 거역할수 없는 절대적인 어떤 운명의 힘이 담겨있음을 느낄수있다. 젠타는 마을 처녀들에게 자기가 화란인의 저주를 풀어주는 행운의 여인이었으면 좋겠다고 말한다. 이런 소리는 젠타의 남자친구 에릭(Erik)으로서 처음 듣는 얘기는 아니지만 그렇다고 한쪽 귀로 흘려버릴 얘기만은 아니었다. 그러는 중에 이게 웬 일인가? 젠타의 아버지가 바로 그 화란인과 함께 집에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젠타의 놀라움은 비길 데가 없다. 젠타는 마치 마법에 끌린 것처럼 화란인에게 빠져 든다. 아버지가 젠타에게 여차여차해서 재물을 받게 되었느니 뭐라느니 설명하지만 젠타의 귀에 하나도 들어오지 않았다. 화란인도 역시 젠타와 마찬가지로 처음 만남으로 마치 운명의 힘에 끌리듯 서로를 사랑하게 된다. 젠타의 아버지 달란트는 그저 기쁘기만 하다. 자, 그런데 스토리가 여기서 끝나면 아무 문제없겠지만 실은 그렇지 못하다.

 

 젠타역의 소프라노 알다 노니(Alda Noni)


제3막. 항구에 무사히 돌아온 노르웨이 선원들은 주막에서 한잔씩을 하여 기분이 좋다. 선원들은 자기들 배 옆에 정박하고 있는 화란인의 음침한 배를 보고 조롱하듯 웃음을 터뜨리며 배 안에 있을 선원들에게 기분 좋으니 나와서 함께 한잔 하자고 소리친다. 그러나 화란인의 배에서는 아무런 응답도 없다. 갑자기 격노한 듯한 파도가 검푸른 화염처럼 밀려와 화란인의 배를 뒤 덮는다. 모두가 유령처럼 보이는 화란인 선원들이 으스스하면서도 섬뜩한 합창을 부른다. 이 합창소리는 부두에서 흥에 겨워 소리치던 노르웨이 선원들의 마음을 압도한다. 한편, 젠타의 남자친구 에릭은 젠타가 갑작스레 결혼 상대자를 선택했고 그를 따라 가겠다고 하자 지난날 자기와 젠타가 얼마나 즐거운 시간을 보냈었는지 회상시키면서 제발 떠나지 말아 달라고 간청한다. 두 사람의 대화를 우연히 엿들은 화란인은 잘못하다가는 젠타의 마음이 흔들릴지도 모른다고 느끼고 몹시 화를 내며 젠타와의 결혼은 이제 지나간 일이라고 말하며 자리를 박차고 나간다. 화란인은 자기에 대한 젠타의 사랑이 순수하지 않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화란인은 ‘아, 나는 다시 바다로 돌아가 방랑해야 한다. 젠타! 당신을 믿을수 없다! 하나님도 믿을수 없다!’라고 절망하면서 자기 배로 달려간다. 화란인의 절규를 들은 젠타는 정신을 차린듯 화란인에게 기다려 달라고 외친다. 젠타는 화란인을 진심으로 사랑하고 있었던 것이다. 에릭이 화란인을 따라 가려는 젠타를 붙잡고 놔주지 않는다. 이제 유령선과 같은 화란인의 배는 또 다시 저 먼 바다를 향하여 떠날 차비를 마쳤다. 부두에 도착한 젠타는 이미 배에 올라가있는 화란인이게 죽음이 두 사람을 갈라놓을 때까지 함께 있겠다고 소리친다. 뒤쫓아 온 에릭이 젠타의 팔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자 젠타는 화란인의 배를 향하여 바다에 몸을 던진다. 그러자 화란인의 배가 서서히 침몰하기 시작한다. 저주가 풀린 것이다. 서로 포옹하고 있는 화란인과 젠타가 마치 환영과 같이 바다에서 솟아 나와 저 멀리 하늘로 올라간다.

 

'방랑하는 화란인' 포스터. 젠타가 저주받은 화란인을 따라가는 장면


전설따라 수만리, ‘방랑하는 화란인’ 탐구

‘방랑하는 화란인’(Der fliegnede Holländer: The Flying Dutchman: 원래 fliegende(flying)이란 단어의 의미는 돛을 기둥에 잡아매지 않아 배가 그저 파도에만 따라 움직인다는 것. 그러므로 날라 다닌다는 뜻과는 거리가 있음)에 대한 전설은 1641년부터 시작되었다고 한다. 어떤 홀랜드 선박이 남아프리카의 희망봉(The Cape of Good Hope) 해안에서 침몰한데서부터 유래되었다는 것이다. 선장인 반 드 데켄(Van de Decken)은 동양에서 돌아오는 길이었다. 먼 항해 후에 희망봉까지 왔으므로 기분이 한결 홀가분한 입장이었다. 배가 아프리카의 남쪽 끝머리에 왔을 때 선장은 만일 이곳에 자기 소속회사인 화란동인도회사가 정착촌을 세운다면 회사 배들이 먼 동양에 갔다가 올 때 이 정착촌에 들려 충분히 휴식 할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선장은 그 생각에 너무 골몰한 나머지 먹구름이 몰려오는 것을 알지 못했다. 어느새 배는 심한 풍랑에 휩싸이게 되었다. 선원들은 겁에 질려 비명을 지르며 어찌할줄 몰라 했다. 선장은 선원들과 힘을 합쳐 몇시간 동안이나 폭풍에서 헤어나려고 죽을 힘을 다했다. 어느 순간, 폭풍을 벗어 나는듯 싶었다. 그러나 그 순간, 배는 바다위에 삐죽 솟아 나온 바위에 부딪쳐 침몰하기 시작했다. 반 드 데켄선장은 죽음이 다가오는 것을 알았다. 그러나 그는 죽을 준비가 안되었다고 믿었다. 그리고 ‘만일 저 희망봉만 돌아갈수 있다면 이 세상 끝날 때까지 계속 배를 타고 다녀도 좋다.’고 저주의 소리를 내 뱉었다.   


지금도 희망봉 부근에서 폭풍이 일어날 때면 저 먼 폭풍속에서 유령처럼 떠다니고 있는 반 드 데켄 선장의 배를 어렴풋이 볼수 있다고 한다. 하지만 일부러 그 배와 ‘방랑하는 화란인’을 보려고 애쓸 필요는 없다. 누구든지 그 배를 목격하는 사람은 비참하게 죽는다는 전설이 있기 때문이다. 과거에 여러 사람들이 그 화란인의 배를 본 일이 있다고 주장한바 있다. 2차대전중 이 지역을 항해하던 독일 U보트의 선원들도 보았다고 주장했다. 1881년 7월 어느날, 영국 해군 함정이 희망봉 언저리를 돌아 유럽 쪽으로 들어서려고 할 때 이 배에 타고 있던 몇 사람들도 방랑하는 화란인의 배를 보았다고 한다. 나중에 영국왕 조지5세가 된 당시 이 해군 함정의 갑판장교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스트 꼭대기에서 정찰을 하던 선원과 다른 한 명의 장교가 자기와 함께 이 배를 목격했다고 기록으로 남겼다. 


“불길에 휩싸인듯 붉게 물든 유령과 같은 배가 저 쪽에 있었다. 거리는 약 2백 야드밖에 되지 않았다. 마스트와 돛들이 모두 붉게 물들어 있었다.” 망루의 파수병이 그 배를 본 것은 불행이었다. 얼마후 그 병사는 같은 지역을 항해하고 있던 중 아무 이유도 없이 급사했다. 다행하게도 나중에 조지5세가 된 갑판장교는 방랑하는 화란인의 배를 보았는데도 저주에서 살아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