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3일 투어

4. 유덴가쎄(Judengasse)

정준극 2007. 4. 11. 14:59

 유덴가쎄(Judengasse)

             

유덴가쎄에는 밤낮으로 경찰이 지키고 있다.

 

분수의 오른쪽으로 돌아가면 유덴가쎄이다. 원래 유태인 게토에 있는 거리들은 그 길이 오래전부터 역사적으로 유서 깊은 거리로서 별도의 이름이 붙어 있지 않는한 모두 유덴가쎄라고 불렀다. 호에 마르크트 부근의 이 거리가 유덴가쎄로서 이름을 유지하게 된 것은 아직도 옛날 유태인들이 살던 모습이 도처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 거리에는 유태인 중고 의류상점들이 많았었지만 지금은 그런 중고품 상점들을 찾아 볼수 없다. 다만 몇군데, 예를 들어 슈테른가쎄 코너에 있는 7번지의 상점에는 아직도 옛날 그림자가 남아있다. 우선 대부분 상점들이 두꺼운 철책 셔터문을 달아놓았다. 유태인들이 사람들의 약탈을 막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를 알수 있는 철책문이다. 그들이 온다!!는 말은 이 거리에서 흔히 들을수 있는 외침이었다. 사람들이 얼마나 자주 유태인 상점들을 약탈하러 왔는지 알게 해주는 소리였다. 아무튼 약탈을 막기 위해 유태인들은 상점의 앞문과 창문을 튼튼한 철제셔터로 막아야 했다.

 

루프레헤츠키르헤와 유덴가쎄

 

유태인들에 대한 박해는 끊일 틈이 없었다. 1년에도 몇차례나 유태인들이 보따리를 싸들고 거리로 쫓겨나야 했고 심지어는 멀리 다른 지역으로 추방당하기까지 했다. 집단적인 유태인 추방은 1421, 1567, 1572, 1614, 그리고 다시 1670년에 있었다. 1938-39년 나치에 의한 대규모 엑소더스는 가장 최근에 있었던 유태인 추방이었다. 당국이 유태인을 추방하는 방편으로는 유태인 상인들에게 과중한 세금을 부과하는 것이었다. 그래도 몇몇 유태인들은 그러한 박해에서 용케 살아남아 지금도 비엔나에서 살아가고 있다. 물론 오늘날에는 비엔나에서 유태인을 핍박하는 일은 없다. U1 네스트로이플라츠(Neystroyplatz) 역 근처의 템펠가쎄(Tempelgasse)에는 비엔나에서도 유명한 대형 유태인 회당이 있다. 하지만 혹시라도 모르므로 아직도 안식일에는 경찰들이 거리를 지키며 회당에 예배하러 오는 유태인들을 보호해주고 있다.

 

유덴가쎄의 밤 

 

유덴가쎄 4번지는 비교적 근대에 건축한 라젠호프(Lazenhof)라는 평범한 아파트 건물이다. 평범한 건물이지만 정문 벽면에 있는 아름다운 성바바라기념상이 이 아파트의 품위를 우아하게 해주는 것이다. 19세기에 만들어진 기념상인 것 같다. 이 건물은 15세기에 라즈(Laz)가문의 소유였다. 그래서 라젠호프라는 이름이 붙었다. 비엔나의 유명한 학자인 볼프강 라즈(Wolfgang Laz 또는 Lazius) 1514년 이 집에서 태어났다. 그는 비엔나대학교 초대학장이며 나중에 대법관까지 역임했다. 페르디난드1세는 그를 개인 자문관 겸 주치의로 임명했다. 그는 이외에도 왕실 역사 담당관, 조폐국 감독등의 직위를 가졌으며 나중에는 기사작위를 받았다. 볼프강 라즈는 르네상스를 대표하는 학자 유형의 축소판이었다. 그는 뛰어난 수집가였다. 그는 비엔나에서 처음으로 로마 시대의 묘석과 제단을 체계적으로 수집한 인물이었다. 그는 자기의 수집품을 자기 집의 안뜰과 담장 둘레에 전시하였다. 그러나 1565년 그의 화려한 수집품은 사라졌다. 다만, 그 자신의 묘석은 페터스키르헤(Peterskirche)에 있다. 슈테른가쎄(Sterngasse)의 모퉁이에 있는 7번지는 한때 비엔나에서 유명한 역병의사 소르베(Sorbait) 박사의 집이었다. 그는 페스트에 대한 자세한 사항과 처방전을 남겨 놓았다.

 

헝가리 출신으로 비엔나에서 태어난 볼프강 라즈(라지우스: 1514-1565). 그는 역사학자, 의사, 인문학자, 지도제작자 그리고 뛰어난 과학자였다

 

유덴가쎄의 오른쪽으로 계단이 있고 그 위로 상당한 공간이 있다. 그곳을 지나면 플라이슈마르크트(Fleischmarkt)에 나올수 있다. 이 곳에는 참으로 간소하지만 특이하게 생긴 탑이 있다. 탑의 상단에는 작은 창문이 몇 개 붙어 있다. 1825-27년에 세워진 이 탑은 비엔나 역사상 최초로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할수 있다. 이 탑은 요세프 코른호이젤이란 사람이 설계하고 건설했다. 그가 이 탑을 만든 이유는 맨날 바가지만 긁어대는 마누라로부터 도망갈 곳이 필요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마누라가 탑에 까지 따라와 내려오라고 아우성 치면 꼭대기 방으로 올라가 사다리를 치워 아무도 올라오지 못하게 했다고 한다. 이제 이름과는 달리 어두컴컴하고 좁은 슈테른가쎄로 발길을 돌려보자.

 

유덴가쎄에서 열린 유태인 결혼식. 2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