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4일 투어

10. 쿠렌트가쎄 (Kurrentgasse)

정준극 2007. 4. 11. 15:10

쿠렌트가쎄 (Kurrentgasse)

 

쿠렌트가쎄 12번지

 

암 호프의 천사찬양교회에서 유덴가쎄쪽으로 두 갈래의 길이 있다. 파리제르가쎄(Parisergasse)와 쿠렌트가쎄이다. 슐호프(Schulhof) 뒤편에서 북쪽으로 나 있는 골목길들이다.  쿠렌트가쎄 2번지의 코타네린 하우스(Kottanerin Haus)는 슈타인들가쎄에 면하여 있기도 하다. 이 집에서 1564-1567년의 3년동안 성슈타니스라우스 코스트카(St Stanislaus Kostka)가 살았었다. 그가 이 집에 살았을 때에는 아직도 젊은 소년이었다. 소년 코스트카는 철두철미한 가톨릭이었다. 어느날 갑자기 몸이 몹씨 아프게된 코스트카는 병자성사를 받아야 겠다는 심정으로 집주인에게 가톨릭 신부를 불러 달라고 부탁했다. 하지만 양복재단사인 집주인 카스파르 봐헨슈봔츠(Caspar Wachenschwanz)는 소년의 부탁을 거절했다. 집주인은 신교도였다. 그날밤 소년 코스트카는 성바르바라와 천사들이 나타나 자기를 천국으로 인도하는 환상을 보았다. 다행히 병세는 수그러졌다. 그로부터 소년 코스트카는 일체의 속세를 부인하고 신앙생활만 하기로 작정하여 로마에 있는 예수회 종단에 몸을 의탁했다. 그로부터 1년후 코스트카는 세상을 떠났다.

                

쿠렌트가쎄 8번지

 

10여년후인 1583, 집주인은 코스트카의 신앙을 거룩히 여겨 그가 살던 방을 확장개조하여 작은 예배처(채플)로 만들었다. 이 채플은 1742년 현재의 모습으로 다시 개조되었다. 이 채플은 성코스트카의 날(11 13)에만 문을 연다. 1726년 성인으로 시성(諡聖)된 성코스트카는 젊은이의 수호성인으로 인정받고있다.

 

그건그렇고 이 거리의 이름은 파싸우(Passau)대주교를 위한 주세(酒稅)를 걷던 관리들로부터 연유한다(쿠렌트라는 단어는 원래 길거리에서 찬송하며 자선을 구했던 사람들을 뜻하지만 나중에는 세금을 걷는 세리라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그 세리들이 이 구역에 살았던 것이다. 세리들이 살았던 집이어서 그런지 건물들이 모두 그럴듯하게 번지르르하다.

 

8번지는 묘하게 생긴 작은 식당이다. 식당이름은 용광로집(Das Ofenloch)이다. 굳이 번역하자면 용광로의 입이라고나 할까? 이 식당의 바로 옆 작은 골목으로 올라가면 전에는 오펜로흐가쎄(Ofenlochgasse)였으나 현재는 클리블라트가쎄(Kleeblattgasse)라고 부르는 거리가 나온다. 여기에 칼을 만드는 대장간이 있었다. 용광로와 관련한 명칭은 이 때문인듯 싶다.

 

오펜로흐식당

 

12번지는 1542년부터 지금까지 빵을 파는 빵집이다. 아직까지도 철저하게 자기 가게에서 만든 빵만 판다. 요즘 세상에 이런 집이 있다니 놀라울 뿐이다. 12번지의 현관에는 재미난 장식이 있다. 두 소년이 그리폰(털이 많은 개)과 물고기 한 마리를 데리고 노는 모습이다. 이제 유덴플라츠로 들어가 보자.

 

쿠렌트가쎄12번지. 어린이들이 큰 물고기와 괴수를 잡고 있는 조각이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