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4일 투어

13. 뷔플링거슈트라쎄 (Wipplingerstrasse)

정준극 2007. 4. 11. 15:11

뷔플링거슈트라쎄 (Wipplingerstrasse)

 

뷔플링거슈트라쎄의 알테스 라트하우스(구시청)이 있는 거리

 

한때 이거리는 뷜트베르허슈트라쎄(Wildwercherstrasse)라고 불렸다. 동물의 가죽이나 모피를 벗겨내어 무두질하는 사람들이 많이 살면서 가죽과 모피 장사를 했기 때문이다. 뷜트베르허(Wildwercher)라는 단어는 동물의 가죽을 말한다. 그래서인지 이 거리에는 아직도 오랜 전통의 유명한 가죽제품상점이나 모피상점들이 있다. 호에르 마르크트쪽으로부터 뷔플링거슈트라쎄로 들어서면 광장이 나오고  왼쪽에 있는 웅장한 보헤미아 챈슬러청사(오늘날의 대사관저)가 우선적으로 눈을 가로 막는다. 거장 피셔 폰 에어라흐가 건설한 이 웅장한 건물은 두번의 전쟁(1809년과 1945) 때문에 많은 피해를 입었지만 아직도 건재하다. 뷔플링거슈트라쎄에서 오리지널 건물의 형태가 남아 있는 곳은 현관의 동쪽 반편뿐이다. 현재 이 건물은 헌법재판소이다.

 

보헤미안 챈슬러 건물.  

 

길건너의 8번지는 비엔나시의 구청사(알테스 라트하우스)이다. 이 청사가 처음 역사지에 기록된 것은1435년이다. 그만큼 오랜 연륜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건물의 정면은 18세기에 다시 설계된 것이다. 시의회실 천정의 화려한 장식도 18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안뜰의 중앙에는 라파엘 돈너(Raphael Donner)가 제작한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안드로메다(Andromeda) 분수가 있다(안드로메다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에티오피아의 공주로서 바다의 괴수에게 희생 제물로 바쳐지려다 페르세우스에게 구출되어 그의 아내가 된 아름다운 여인이다). 시의회가 링 슈트라쎄의 신청사로 이전된후 구청사는 비엔나제1구청으로 사용되고 있다. 구시청 건물에는 오스트리아저항운동박물관(실은 저항운동관련 문서보관소)과 비엔나제1구박물관이 자리잡고있다.

 

비엔나 구시청 내에 있는 라파엘 돈너 작품의 안드로메다 분수의 여러 모습

 

옛날의 시청은 단순히 행정업무만을 본 곳이 아니었다. 간혹 죄수를 처형하는 장소로서도 활용되었다. 비엔나 구시청도 예외가 아니었다. 구시청앞에서 죄인들을 처형했다는 기록이 아주 자세히 남아있는 것을 보더라도 알수 있다. 17세기에 나다스디(Nádasdy)라는 아주 부유한 헝가리백작이 비엔나에 살았었다. 어느날 백작은 항가리 독립운동과 관련하여 첩자활동을 했다는 죄목으로 체포되었다. 백작은 사형선고를 받았다. 백작과 함께 연루되었던 사람들도 모두 체포되어 역시 사형선고를 받았다. 당시 반역자에 대한 처형은 오른손을 자르는 것과 거의 동시에 도끼로 목을 내려치는 것이었다. 손이 잘라져나가는 아픔 때문에 목이 날라가는 처참함을 느끼지 못하게 한다는 배려였다. 그러나 백작이 체포되었을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인 레오폴드1세는 이런 처형방식이 너무 참혹한 것이라고 생각하여 자비를 베풀기로 했다. , 손을 자르는 형벌은 중지하고 다만 목만 베도록 했다. 그리하여 나다스디 백작의 손은 보존될수 있었다. 다음은 나다스디백작의 처형 장면에 대한 기록이다.

 

비엔나 구시청 현관

 

1671 4 27, 나다스디백작이 형무소에서 시청으로 끌려왔다. 형무소로부터 슬퍼하며 따라왔던 가족들 및 종자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한 백작은 시청의 넓은 지하홀로 끌려왔다. 신부와 경비원들이 백작을 동행했다. 지하홀에는 마치 제단처럼 생긴 단상(壇床)이 있었다. 단상은 검은 천으로 덮여 있었으며 바닥에는 검은 카펫이 깔려 있고 그 위에 검은색 의자가 하나 놓여 있었다. 백작이 의자에 앉자 판결문이 다시한번 낭독되었다. 판결문에는 황제의 자비로 오른손은 절단하지 않는다는 내용도 포함되어 있었다. 백작은 생전에 가장 총애하던 시종을 불러 코트의 단추를 풀도록 했다. 이어 목을 덮고 있는 긴 뒷머리를 묶도록 했고 마지막으로 눈을 가리도록했다. 백작은 두 손을 가슴에 모으고 큰 소리로 예수와 성모시여!라고 외쳤다. 백작이 이 말을 일곱번 외치자 사형집행인이 도끼를 휘둘러 단 한번에 목을 잘랐다. 얼굴을 가린 세명의 남자가 곧바로 앞으로 다가와 피가 흥건히 흐르는 시체를 들어 관에 넣었다. 따로 떨어져서 눈을 부릅뜨고 있는 머리는 시신의 가슴에 얹어 놓았다. 백작의 시신을 담은 관은 시청 안뜰, 대략 현재 안드로메다 분수가 있는 위치로 옮겨져 사람들이 보도록 했다. 수천명의 시민들이 반역자 나다스디백작의 최후 모습을 보기위해 줄을 이었다.

 

비플링거슈트라쎄와 연결되어 있는 투흐라우벤의 모습


안드로메다 분수 왼쪽으로 작은 통로가 있어서 슈토쓰 임 힘멜(Stoss im Himmel)로 나갈수있다. 이 통로에는 비엔나시박물관에 있는 전시품중 여러 품목을 모조품으로 만들어 전시해 놓았으나 몇 년 전에 장크트 푈텐으로 니더외스터라이히주 청사가 이전할 때에 대부분 함께 이전되었다. 대단히 흥미있는 볼거리이기 때문에 장크트 푈텐까지 가서 보아도 시간이 아깝지 않다.

 

뷔플링거슈트라쎄. 굴뚝 청소부의 모자가 하얀색이다. 그만큼 깨끗하게 청소해 준다는 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