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4일 투어

20. 나글러가쎄 (Naglergasse)

정준극 2007. 4. 11. 15:14

나글러가쎄 (Naglergasse)


나글러가쎄

 

거리이름이 나글러가쎄이기 때문에 못(Nagel)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실은 이 지역에 바늘 만드는 장인들이 살았으므로 그런 이름이 붙었다. 바늘이나 꼬챙이는 독일어로 Nagel이다. 이 거리는 중세에 만들어졌기 때문에 길이 매우 비좁지만 오히려 중세풍이어서 애착이 간다. 다만  길이 너무 좁은 탓에 각 건물의 아름다운 현관조차 제대로 감상하기 힘들다는 아쉬움이 있다. 한때 이 거리는 목욕탕이 여럿 있는 비엔나의 패션거리였다. 8백년전인 당시에는 목욕탕이 요즘의 커피하우스, 주점, 사교클럽이었다. 그런 전통 때문인지 아직도 비엔나에는 공동 목욕탕 겸 수영장이 더러 있다. 그나저나 요즘에는 주로 남녀공용 사우나 겸 목욕탕이어서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게 하고 있다. 이리스가쎄의 건너편 약간 오른쪽에 있는 13번지에는 문지방 위에 사랑스러운 성모마리아 부조가 있다. 신앙심이 유별나게 돈독한 사람들은 자기 집의 현관에 성모, 또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 설치하기를 즐겨했다.

 

나글러가쎄 굽은길

 

나글러가쎄와 하르호프(Haarhof)가 만나는 모퉁이 집은 한때 에스터하지대공의 포도주창고(Esterhazykeller)였다. 지금은 일반 주점 겸 식당이다. 아무튼 예전의 포도주창고로 내려가자면 가파른 27개 계단을 내려가야 한다. 계단 입구에는 1683년 비엔나가 터키에게 포위되었을 때 방어군들이 이 지하 창고에 모여 에스터하지대공의 포도주를 마셨다. 병사 한사람에게 포도주 한잔씩이 돌려졌다 라는 안내판이 붙어있다. 지하창고는 한번 둘러볼만하다. 주중에는 매일 오전 11에 개방된다. 원래 이 창고는 옛날부터 진짜 술꾼들의 모임장소였다. 그래서 누구던지 한사람당 1리터 이상의 포도주를 주문해야 하는 이상한 관례가 있었다. 그러다가 1828년 이후부터는 요즘 말하는 4분의 1리터(Viertel)만 주문해도 되도록 완화했다. 하르호프라는 이름은 이곳이 모직물(Haar=Hair)상점이 있었기 때문이다. 고급 아마포를 팔았다.

 

에스터하치켈러

 

4번지 집에는 아직도 활장이 집(Zum Bogner)이라는 간판이 남아있다. 근처에 활만드는 사람들이 사는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나글러가쎄 끝에 있는 2번지의 현관문 위에는 1801년 이 집을 재건축할 때에 로마군의 병영 터전과 로마인들이 만든 성벽의 잔해가 발견되었다는 설명이 적혀있다. 그라벤과 나글러가쎄가 만나는 곳에 한때 파일러토르(Peilertor)라는 요새탑이 있었다. 원래 감시망루로 만든 탑이었으나 나중에는 감옥으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7세기에는 이 탑의 아래층에 상점들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세실리 크라프(Cecily Krapf)라는 여인의 과자상점이었다. 어느날 세실리 크라프가 집에서 잘못하여 오븐에 얹어놓은 프라이팬에 누룩을 넣은 밀가루반죽을 떨어트렸는데 잠시후 보니 맛있는 파이과자로 구어져 있었다고 한다. 반짝 아이디어가 생긴 세실리는 그로부터 쵸콜릿을 입힌 파이를 만들어 팔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실리 쿠겔(Cilly Kugel. 실리는 세실리의 애칭. 쿠겔은 대포알처럼 동그랗게 생겼다는 뜻)이라는 이름으로 팔았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비엔나 최고 명물중 하나인 크라펜(Krapfen)이라는 이름을 지니게 되었다. 크라펜은 비엔나 카니발 기간중에 비엔나 사람이라면 누구나 사서 먹는 도너츠를 말한다. 카니발 기간중에는 크라펜을 화싱(Fasching)이라고도 부른다. 화싱은 카니발이란 뜻이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왈츠 중에 Faschingslieder(카니발 노래)라는 곡이 있는 것도 기억해 둘만한 사항이다. 크라프 가족은 크라펜 과자 때문에 부자가 되고 유명해졌다. 후손중의 한 사람이 칼렌버그(Kahlenberg) 언덕에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크라펜봘들(Krapfenwaldl. 크라프가의 작은 숲)이라고 불렀다. 지금 이 집은 비엔나 최고의 야외수영장이다.

 

Zum Bogner 라는 간판이 붙어 있는 나글러가쎄 4번지 현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