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5일 투어

5. 미하엘러키르헤 (Michaelerkirche)

정준극 2007. 4. 11. 15:16

미하엘러키르헤 (Michaelerkirche) - 성미하엘교회

 

이제 광장의 이름이 연유된 미하엘교회로 들어가보자. 근처의 아우구스틴교회와 마찬가지로 미하엘교회도 호프부르크궁전에 속하여 있는 사람들을 위해 건설된 교회였다. 호프부르크궁전에는 적어도 3-4백명이 살았으므로 궁전주변에 두어개 이상의 교회가 있어야했다. 궁전안에 있는 직속 궁정교회는 황제를 비롯한 황실가족들이 다녔고 페터스키르헤에는 다른 왕족들과 귀족들이 주로 다녔을 것이다. 미하엘러키르헤와 아우구스티너키르헤도 마찬가지였다.

 

미하엘러키르헤 현관 위에 있는 천사장 미하엘이 사탄(루시퍼)을 제압하는 모습의 조각

 

원래 미하엘교회는 13세기에 처음 건설되었으나 그후 여러 번에 걸친 대대적인 개축작업을 거쳐 오늘에 이르렀다. 교회 자체를 찬찬히 보는 것도 중요하지만 교회에 연결되어 있는 수도원을 보는 것은 중요한 일이다. 수도원에는 역대 수도원장들의 초상화가 전시되어 있어서 수도원의 역사를 알수있다. 수도원식당도 한번 볼만한 장소이다. 당시에 수도승들이 어떤 식당에서 식사를 했는지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것보다도 더 흥미로운 것은 수도원에 미하엘교회교구에서 간직하고 있던 귀중한 성체현시대(聖體顯示臺), 화려한 자수의 법복, 성골함등이 전시되어있어 있는 것이다. 전시장으로 들어가려면 슈탈부르크가쎄쪽에 난 작은 문을 이용해서 다시 교회로 들어가야한다. 전시는 5월부터 10월까지 볼수있다.

 

성미하엘교회(미하엘러키르헤)

 

미하엘교회의 문을 열고 들어가면 왼편에 고난당하는 그리스도상이 마치 우리를 내려다 보는듯 걸려있다. 진실로 비탄과 슬픔에 젖어 있는 한 인간의 모습을 볼수 있다. 1791년 12월 10일 테아터 안 데어 빈(빈강변극장)의 멤버들의 12월 5일에 세상을 떠난 모차르트를 추모하여서 음악회를 열었다. 당시 빈강변극장의 주인은 모차르트의 친구인 에마누엘 쉬카네더였다. 에마누엘 쉬카네더는 모차르트의 마지막 오페라 '마술피리'의 대본을 쓴 사람이고 또한 '마술피리'의 초연에서 파파게노의 이미지를 처음으로 창조한 바리톤이었다. 모차르트에 대한 영결미사는 1791년 12월 7일 슈테판대성당에서 거행되었다. 그리고 그날 장크트 맑스 공동묘지에 매장되었다. 당시의 관례에 따라 재활용 관을 사용하였으며 공동묘지에서는 4-5구의 다른 시체와 함께 매장되었다.

 

미하엘러키르헤의 엥겔버트 돌푸스 수상 부조

 

성미하엘교회 안으로 계속 들어가면 왼편에 작지만 예쁜 바로크 스타일의 채플이 있다. 이 채플을 지나 유리문을 열고 들어가면 본당이 나온다. 본당으로 들어가기 전에 다시 왼편에 또 다른 채플이 있다. 이 채플은 앞에 있는 성모그림에 가려 밖에서는 반쯤만 보이지만 그렇다고 그냥 지나쳐서는 안될것이다. 채플안을 자세히 들여다 보면 벽면에 어떤 사람이 고개를 숙이고 기도하는 모습의 조각상이 있는 것을 볼수있다오스트리아가 나치와 합병 되기 전에 오스트리아 수상으로서 어려운 직무를 수행하다가 나치친위대(SS)에 의해 불행하게도 살해된 엥겔베르트 돌푸쓰(Elgelbert Dollfuss)를 기념하는 채플이다.

 

중앙제단 옆의 성세바스티안

 

미하엘교회는 호프부르크궁전 사람들이 자주 이용하던 곳이었다. 그래서 미하엘교회의 묘지도 왕궁 사람들이 선호하는 곳이었다. 하기야 묘지가 바로 왕궁정문 앞에 있었기 때문에 굳이 멀리까지 갈 필요가 없어서 편리했을 것이다. 그러다가 나중에 교회묘지가 더 이상 사용하지 못하게 되자 묘비만을 걷우어서 교회안으로 들여 놓게 되었다. 그래서 오늘날 교회본당은 거의 옛 묘비의 전시장처럼 되었다. 먼저 오른편 회랑의 맨끝에 있는 성니콜라스 채플로 가보자.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슈티보르 슈레쩰(Stibor Schrezzel)이란 사람은 현자라고 불리는 알브레헤트(Albrecht)의 궁전요리사였다. 그러던 어느날 슈레쩰은 주군인 알브레헤트가 먹는 음식에 독약을 섞어 넣었다는 죄목으로 기소되었다. 식사를 마친 알브레헤트가 갑자기 식중독 현상을 보이며 고통을 호소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의사들은 치료한답시고 그의 다리를 꽁꽁 묶은후 그를 거꾸로 몇시간동안 매달아 두었다. 이러한 치료방법때문이었는지 하여튼 알브레헤트는 뱃속에 있던 음식물을 토해내고 생명을 건졌지만 대신 평생 다리불구가 되었다. 다리를 묶어 거꾸로 너무 오랫동안 매달아 놓았기 때문이었다. 그후로 그는 현자(賢者) 알브레헤트가 아니라 절름발이 알브레헤트라는 별명으로 역사에 기록되었다.

 

중앙제단(호흐알타르). 대천사들이 성모와 성자의 초상화를 옹위하고 있다.

 

그건 그렇고, 불쌍한 누명을 쓴 슈레쩰의 얘기로 돌아가보자. 그는 곧 참수형을 당할 운명이었다. 그러나 마지막 순간에 무죄가 입증되어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그를 기소했던 사람들은 오히려 호에르 마르크트에 있는 바보들의 새장에 갇히게 되어 사람들의 조롱을 받게 되었다. 누명을 벗은 슈레쩰은 감사의 뜻으로 미하엘교회에 작은 채플을 만들어 성니콜라스에게 봉헌하였다. 하지만 그로부터 2주후, 슈레쩰은 다시 기소를 받아 슈테판성당에 감금되었고 끝내는 세상을 떠났다. 미하엘교회의 성니콜라스 채플은 채플이기도 하지만 슈레쩰과 그의 가족묘지로 사용된 곳이었다. 성니콜라스 채플은 음악가형제단의 모임인 성니클라스길드(St Niklas Guild)의 제단이기도 하다. 교회에는 수많은 묘비가 있고 어떤 것은 상당히 화려한 것이지만 그중에서 우리의 눈길을 끄는 묘비가 하나있다. 강론단 아래의 오른편에 있는 작은 묘비이다. 풀을 빳빳하게 매긴 러플(ruffle)이 있는 까운을 입고 있는 어린 여자아이의 모습이 조각되어 있는 묘비이다. 안나 마르가레타 파바초닌. 1619년 7월 16. 8개월 14일에 죽다라고 새겨져 있다. 아마 교회에 있는 수많은 묘비중 가장 어린 사람의 묘비일 것이다. 그런데 생후 8개월밖에 되지 않았다는 여자아이가 아주 큰 아이처럼 보인다. 조각이니까!

              

'그리스도를 무덤에 안치함' 대리석조각

 

교회의 전시품중 특별히 흥미를 끄는 몇 품목을 살펴보자. 예를 들면 조그만 서랍이 여러 개 있는 작은 목제상자()이다. 처음에는 주방에서 각종 향료나 약품들을 넣어두는 상자로 생각할수있다. 실은 이빨, 엄지손가락 뼈, 베일 조각등 성자들의 유품을 넣어두는 상자이다. 수도원에서는 성자들의 이런 유품들은 보석으로 치장한 성골함에 넣어 신주단지처럼 보관하는 경우가 많았다. 19세기초에 이런 보석성골함을 정부재산으로 삼거나 박물관 전시품으로 시용하기 위해 징발한 일이 있었다. 그렇지만 수도원이나 수녀원에서 보관하고 있는 성골함들은 대부분 그런 수난을 피할수 있었다. 아무도 모르는 곳에 깊숙히 보관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미하엘교회의 성골함도 지금까지 남아 있을수 있던 것은 우선 모양이 양념서랍상자와 같이 생겨서 모르고 지나쳤을 뿐만 아니라 교회 깊숙히 감추어 두었기 때문이었다. 전시품중에는 좀 엉뚱한 것들도 있다. 예를 들면 부장품이다. 제왕이나 지체높은 귀족들의 장례식때 부장품으로 함께 매장한 왕관, 왕권을 상징하는 홀이나 보주(寶珠. Orb), 인장, 그리고 훈장등을 발굴하여 전시한 것이다. 대개 부장품들은 모조품일 경우가 많지만 진짜도 있어서 엄격히 간수되고 있다.

 

지버 오르겔

 

미하엘교회의 현관문은 로마네스크 양식의 화려한 것이다. 고딕양식의 첨탑이 있는 교회에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문은 이상한 조화이지만 원래 이 현관은 내벽에 감추어져 있다가 최근에 발견된 것이다. 놀랍고도 흥분되는 발견이었다. 내벽은 1230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하지만 이 현관문은 수세기 동안 도구를 넣어두는 헛간뒤에 숨겨져 있었다. 다시말하여 로마네스크 양식의 현관문 앞에 헛간을 덧붙여 지어 놓았던 것이다. 이유는 간단하다. 이 현관문을 교회의 정문으로 더 이상 사용하지 않게 되자 그 앞에 공사도구를 보관하는 헛간을 지어 아예 문을 막아버렸던 것이다. 그런후 교회 출입은 지금의 옆문을 사용했었다.

 

미하엘러키르헤 입구

 

시간이 있으면 교회의 지하납골당에 들어가 보자. 안내를 받아서만 들어갈수 있다. 섬뜩하게 무서울 것 같지만 한편으로는 매력이 있는 납골당이다. 지체높은 귀족들과 궁정 요인들이 매장되어 있다. 교회 지하실의 온도와 공기의 밀도 등이 놀랍도록 조화있는 역할을 하여 시신들은 거의 완벽한 미이라가 되어 있다. 우선 시신에 입혀놓은 옷들이 거의 완벽한 상태로 보존되어 있다. 어떤 부인이 입고 있는 비단가운은 마치 새로 해 입은 것처럼 손상되지 않았다. 아이를 출산하다가 죽은 어떤 여인의 모습도 생생하게 보존되어 있다. 미하엘교회의 오르간은 아마 비엔나에서 가장 아름답고 사랑스러운 작품일 것이다. 오르간이 있는 곳까지 올라가기는 어렵기 때문에 아래에서 감상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야 하지만 참으로 화려한 오르간이다. 이제 교회를 떠나 오른편의 콜마르크트로 가보자 

 

미하엘러키르헤의 지하납골당

입구의 막시밀리안 1세 승전아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