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5일 투어

8. 헤렌가쎄 (Herrengasse)

정준극 2007. 4. 11. 15:18

헤렌가쎄 (Herrengasse) 

 

헤렌가쎄

 

헤렌(Herren)은 우리식으로 양반, 또는 귀족, 신사라는 의미이다. 이름에서 볼수 있듯, 한때 이 곳은 호프부르크에 버금하는 귀족들의 본거지였다. 이 거리는 비엔나에서 가장 오래된 거리중의 하나이다. 일찍이 로마시대로부터 있었다는 기록이 있다. 거리의 원래 이름은 대로(호흐슈트라쎄. Hochstrasse)였다. 중세의 길답지 않게 넓은 길이어서 그런 이름을 붙였다. 하지만 아무리 대로(大路)라고해도 비엔나 외곽으로 연결되지는 못하고 그곳에서 끊긴 길이었다. 합스부르크왕가가 호프부르크로 처음 이전하자 헤렌가쎄는 그야말로 귀족들의 저택들로 가득했다. 귀족들은 황제가 거처하는 왕궁과 가깝게 있는 것이 유리하다고 생각하여 이곳에 거처를 가지기 시작했다. 6세기 초, 남부오스트리아 주정부가 의사당을 이곳에 짓고 란트하우스(Landhaus)라고 부르자 이 거리의 이름은 호흐슈트라쎄에서 헤렌가쎄로 변경되었고 그 옆의 길을 란트하우스가쎄라고 부르게 되었다.

 

호텔 헤렌호프 앞 길 

               

헤렌가쎄와 화넨가쎄가 만나는 모퉁이에 있는 건물(6-8번지)은 비엔나 최초의 미국식 마천루이다. 1933년에 지은 이 건물은 통상 5층의 개념을 벗어나 11층이었다. 원래 이 자리에는 15세기로부터 리히텐슈타인가문의 궁전이 있었다. 전설적인 베르타 폰 리히텐슈타인(Berta von Lichtenstein)이 세상을 떠난 곳도 이 곳이었다. 베르타는 행복하지 못한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그리스도와 성모에게 순종하는 신실한 여인이었다. 남편 리히텐슈타인 대공이 세상을 떠나자 미망인이 된 베르타는 검은 상복 대신에 순백색의 상복을 입었다. 이는 당시 오스트리아의 관습에 어긋나는 것이어서 별로 할일이 없던 일부 사람들은 공연히 베르타를 비난했다. 얼마후 베르타가 세상을 떠난후 베르타의 영혼이 안식처를 찾지 못하고 방황하고 있으며 특히 그가 살던 궁전에 가끔씩 나타난다는 소문이 퍼지기 시작했다. 실제로 이 백색의 부인(Weisse Dame)은 리히텐슈타인가문에서 무슨 중요한 행사가 있을 때마다 가족들에게 모습을 나타내어 무슨 말을 할듯하다가 사라지곤 한다는 것이 목격되었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베르타가 이 세상에서 지은 죄 때문에 영혼이 방황하고 있다고 믿었다. 다만 베르타가 이 세상에서 지은 유일한 죄는 검은 상복을 입지 않고 백색의 상복을 입은 것이라고 말하며 동정을 아끼지 않았다.

  

팔레 모데나  

                           

헤렌가쎄에 이르러서 가장 처음 만나는 길건너 건물은 남부오스트리아박물관이었으나 근년에 남부오스트리아주의 주도가 장크트 푈텐으로 이전함에 따라 그곳으로 이전했다. 건물안에는 안뜰이 두개 있다. 아름다운 장소이다. 1570년에 만들었다는 참으로 아름답고 사랑스로운 오래된 철책 장식의 분수가 있었으나 사진으로만 남아 있다. 원래는 란트하우스(의사당)에 있던 것이었다.

 

구 니더외스터라이히 란트하우스. 팔레 니더외스터라이히. 마당에 있던 유물들은 모두 장크트 푈텐으로 옮겼다.

 

다음 건물인 13번지가 팔레 니더외스터라이히로서 남부오스트리아 의사당(Niederösterreichisches Landeshaus)이던 건물이다. 비엔나는 오스트리아의 수도이기도 하지만 오랫동안 남부오스트리아주(니더외스터라이히)의 주도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1990년대 후반에 잔크트 푈텐으로  남부오스트리아의 주도가 옮겨졌다. 안됐지만 남부오스트리아주의 의사당이던 이 건물은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고 있다. 그러나 간혹 단체관람이 있는 경우가 있다. 청소부에게 미리 부탁해 놓으면 언제 그런 단체관람이 있는지 귀띰해준다. 건물 내부는 볼수 없다고 해도 안뜰만 볼수 있어도 다행이다. 안뜰(호프)로 들어가는 입구의 위에는 두 사람이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이 있고 도 위에는 라틴어로 1571년이란 숫자가 기록되어있다. 한 사람은 가로 줄이 그어져 있는 고대 오스트리아 문장을 들고 가고 있으며 다른 한 사람은 루돌프의 다섯마리 독수리를 들고 있다. 이들의 양 옆에는 손에 칼을 쥐고 있는 사람이 있고 여기에 주의사항이 적혀있다. 누구든지 무기를 들고 들어오면 안되며 더구나 큰소리로 다투면 안된다는 주의사항이다. 당시 의회의원들은 상당히 성미가 급하고 격하기를 잘했던 모양이어서 의견에 충돌이 있으면 칼을 빼어들기가 일수였던 모양이다. 헤렌가쎄를 떠나 란트하우스가쎄를 거쳐 미노리텐플라츠로 가보자.


헤렌가쎄 13번지의 팔레 니더외스터라이히

팔레 니더외스터라이히(종전의 니더외스터라이히주 의회)의 란트타그잘(의회 홀). 연주회가 자주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