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6일 투어

3. 알베르티나플라츠 (Albertinaplatz)

정준극 2007. 4. 11. 15:25

알베르티나플라츠 (Albertinaplatz)


광장의 한쪽 끝은 높은 램프로 막혀있다. 옛날 성벽이 있던 자리이다. 커다란 저택이 램프위에 자리잡고 있다. 알베르티나이다. 18세기 중반에 지은 건물이지만 이후 1백여년을 지나면서 많은 보수와 개축을 하였다. 현재 알베르티나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그라픽 아트가 수집되어 있다. 작센-테셴의 알베르트(Albert von Sachsen-Teschen) 때부터 수집한 것이다. 더구나 이 건물에는 뒷편에 연결되어 있는 국립도서관의 파피루스박물관 및 악기박물관, 그리고 오스트리아영화박물관이 함께 들어서 있다. 알베르티나는 호프부르크라는 종합건물의 맨 끝에 있는 하나의 전진기지와 같은 건물이다.

 

알베르티나 미술관

 

필하모니커슈트라쎄의 끝에서 아우구스티너슈트라쎄(Augustinerstrasse)를 따라 올려다보면 성아우구스틴교회의 첨탑이 눈앞에 다가선다. 이 첨탑에 있는 시계에 대하여는 다음과 같은 에피소드가 있다. 이 시계는 교회의 바로 건너편 집에 사는 나다스디(Nadasdy)백작이 기증한 것이다. 백작은 자기 집의 창문에서 시계를 보고 몇시인지 알게 되기를 바랬다. 그러나 시계가 설치되기도 전에 백작은 1670년 반역죄로 참수당하는 비운을 겪음으로서 시계를 기증한 보람이 없게 되었다. 백작이 참수형을 당하자 아우구스틴교회의 신부들은 시계를 되돌려주자고까지 했으나 나중에는 결국 양심과의 싸움에서 이겨 탑위에 시계를 설치하였다.

 

알프레드 흐르들리카의 전쟁과 파치슴을 경고하는 조형물

 

알베르티나 반대편에 지금은 작은 공원이 있지만 전에는 필립호프(Philipphof)라는 웅장한 건물이 있었다. 1945년 3월 3, 이 건물은 포격으로 산산조각 파괴되었으며 이 건물에 피신해 있던 수백명이 목숨을 잃었다. 사망자들의 유해는 파괴된 건물의 잔해를 거두어내고 그곳에 매장했다. 그곳은 지금 공원이 되었고 이들의 비운에 대한 명판이 놓여있지만 키높은 관목에 덮혀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근처에 있는 알프레드 흐르들리카(Alfred Hrdlicka)의 전쟁과 파치슴을 경고하는 조각작품(Mahnmal gegen Krieg und Faschismus)이 사망자들에 대한 기념이 되고 있을 뿐이다. 이 조각작품들에 대하여는 상당한 논란이 있었다. 비운에 죽은 자들을 위로하는 조각으로는 마땅하지 않다는 이유때문이었다. 알베르티나플라츠에서 성아우구스틴교회를 향하여 올라가다 보면 그다지 크지 않은 광장을 거치게 된다. 로브코비츠광장이다.

 

알프레드 흐르들리카의 '꿇어 엎드린 유태인' - 알베르티나 광장에 설치되어 있다.

 

알브레헤트 뒤러의 토끼. 그러고보면 위의 유태인 조각과 비슷?

 

[알베르티나]  Albertina. 거의 5세기에 걸친 150만점의 소묘, 수채화, 프린트(판화) 등 세계 최대의 그라픽 아트를 소장하고 있다. 미켈란젤로, 레오나르도 다 빈치, 렘브란트, 라파엘, 뒤러, 클림트의 귀중한 작품들도 상당수 소장되어 있다. 알베르티나 정면에 있는 조각분수는 다누비우스(Danubius)분수이다. 1869년에 만들어진 이 분수는 오늘날 가운데 부분만 남아 있다. 다누비우스 강신(江神)과 빈도보나(Vindobona) 형상만 남아있다. 다른 강신에 대한 형상은 전쟁으로 피해를 보아 없어졌다.

 

다니비우스브룬넨의 두 인물은 다니비우스 강신과 빈도보나 강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