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 워킹 투어/제6일 투어

2. 필하모니커슈트라쎄 (Philharmonikerstrasse)

정준극 2007. 4. 11. 15:25

 필하모니커슈트라쎄 (Philharmonikerstrasse)

 

비엔나악우회에서의 빈필

 

필하모니커라는 이름은 세계 최고 수준의 교향악단인 비엔나필하모닉(비엔나필)에서 따온 것이다. 비엔나필의 상당수 단원들이 슈타츠오퍼에서 오페라 연주도 하기 때문에 슈타츠오퍼의 뒷길을 필하모니커슈트라쎄라고 이름을 붙인데에는 이의가 없다. 이 거리에 유명한 자허(Sacher)호텔이 있다. 여관 관리인의 아들인 에두아르드 자허(Eduard Sacher)는 슈봐르첸버그(Schwarzenberg) 대공집의 주방 견습생으로 경력을 시작했다. 견습기간을 마친 그는 외국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견문을 넓힌후 비엔나로 돌아와 케른트너슈트라쎄에 과자점을 열었다. 얼마후 그는 안나(Anna)라고 하는 어떤 부유한 정육점 주인의 딸과 결혼했다. 두 사람은 아주 열심히 일을 해서 상당한 돈을 모으게 되었고 그 재산으로 과자점 길건너에 호텔을 지을수 있었다.

 

    

여장부인 안나 자허와 남편 에두아르드 자허

                                          

이 호텔은 위치도 좋고 음식도 좋으며 더구나 손님들을 귀족처럼 대우해 주는 바람에 금방 유명해져서 항상 손님들로 넘쳐나게 되었다. 이 호텔의 명물은 안나부인이었다. 안나는 1892년에 남편 자허(Sacher)가 세상을 떠나자 단독으로 호텔을 경영하며 남편이 못다 이룬 일을 도맡아 했다. 과연 안나부인은 이 호텔의 명물이었다. 안나부인은 손에 지휘봉과 같은 홀을 쥐고 굵은 목소리로 종업원들을 지휘감독했다. 그는 가끔 시가를 피면서 여장부다운 면모를 과시했다. 사람들은 그런 안나부인을 몹시 존경했다. 아무리 왕후장상이라고해도 안나부인을 함부로 대하지 못했다. 자허호텔은 대단한 정치가들이 모여 회합을 하는 장소로 유명했다. 말하자면 정치문제를 막후에서 타협하는 중립장소로 활용되었다.

 

자허 호텔 로비

       

그런가하면 왕실의 왕자들이나 돈많은 귀족 자제들이 바람을 피는 장소이기도 했다. 프란츠 요셉 황제와 엘리자베트 왕비 사이에서 태어난 루돌프황태자도 이곳의 단골손님이었다. 그 루돌프황태자가 마이엘링(Meyerling)에서 자살히기 며칠전에 와서 친필로 주문한 메뉴가 아직도 이 호텔에 잘 간수되어 있다.

 

자허호텔 카페

 

프란츠 요셉 황제의 조카로서 루돌프황태자가 자살한 이후 합수브루크 제국 최후 황제가 된 샤를르(Charles)의 아버지인 오토(Otto)가 자허호텔에서 펼친 에피소드도 더러 있다. 바람둥이 한량인 오토는 어느날 자허호텔에서 어떤 아기씨와 함께 지내다가 술에 취한채 벌거벗은 몸으로 칼을 휘두르며 난리를 친 것은 큰 센세이션이었다. 이 호텔에 대한 얘기는 끝이 없다. 자허호텔을 배경으로 한 소설, 연극, 영화, 심지어 발레작품까지 있다. 한 때는 귀족들만 드나들게 했고 일반인들의 출입은 제한했다는 얘기는 지어낸 얘기이겠지만 자허호텔의 값을 그만큼 올려 놓은 것이었다. 오늘날과 같이 대형호텔이 많이 생기고 관광객들에 대한 단체할인 호텔이 인기를 끌고 있는 때에 자허호텔과 같은 소규모 호텔이 명성을 잃지 않고 있는 것은 이 호텔이 제공하는 진정한 비엔나 분위기 때문이다 

 

비엔나 슈타츠오퍼 뒷편에 있는 자허호텔. 필하모니커슈트라쎄 쪽에서 바라본 건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