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벨베데레에 전시되어 있는 게오르그 돈너의 오스트리아 조각 오리지널
오스트리아에 전해내려오는 옛날 민요로 ‘고귀한 기사’(Edler Ritter)라는 것이 있다. 사보이의 오이겐대공에 대한 노래이다.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제국의 어떤 제왕이나 귀족, 정치가, 혹은 장군을 찬양하는 전래 민요는 찾아보기 힘들다. 오이겐공자에 대한 ‘고귀한 기사’가 유일한 것이라고 할수 있다. 오스트리아국민들이 오이겐공자를 얼마나 존경하고 사랑하는 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이다. 비엔나에는 오이겐공자를 기억할수 있게 해주는 대상이 여러곳에 있다. 호프부르크의 영웅광장(헬덴플라츠)에 우뚝 세워져 있는 기마상도 그중 하나이다. 가장 대표적인 것은 바로 벨베데레궁전이다. 벨베데레(Belvedere)라는 명칭은 이탈리아어로서 ‘경관이 뛰어나게 내려다보이는 포도밭’이란 의미이다. 벨베데레궁전은 두개의 큰 건물로 구성되어있다. 상벨베데레(Ober Belvedere)와 하벨베데레(Unteren Belvedere)이다. 높은 곳에 있는 상벨데데레는 ‘19세기 및 20세기 오스트리아 화랑’이라고 불리며 시내쪽으로 정원의 아래쪽에 있는 하벨베데레는 ‘오스트리아 바로크 박물관’이라고 불리고 있다.
상벨베데레궁
상벨베데레궁에서 내려다보는 비엔나시가지는 장관이다. 상벨베데레궁에서는 공식만찬이나 무도회가 열린다.
[벨베데레] 이탈리아어인 벨베데레라는 단어는 언덕의 포도밭 윗쪽에서 저멀리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아름다운 경관’을 뜻한다. 비엔나의 벨베데레는 완만한 경사지에 세워졌다. 그러므로 윗쪽에서 아랫쪽으로 내려다보면 비엔나의 아름다운 중심지역이 한눈에 들어온다.
클림트의 대표작인 키쓰 (상벨베데레에 전시되어 있다)
[상벨베데레] 클림트작품 전시관으로 유명하다. 장식예술로서 에로틱한 관능미의 상징인 클림트의 작품중 가장 유명한 ‘키쓰’가 이곳에 전시되어 있다. 유럽 아르누보의 대표적 작품이다. 클림트는 원래 ‘연인들’이라는 타이틀을 붙였으나 나중에 ‘키쓰’라는 제목으로 바뀌었다. 이밖에도 세쎄시온의 창시멤버인 콜로만 모저(Koloman Moser), 카를 몰(Carl Moll), 표현주의의 일각에 있었던 에곤 쉴레(Egon Schiele), 천재화가 오스카 코코슈카(Oskar Kokoschka)의 작품등이 찬란하게 전시되어있다. 같은 시대 유럽화가들로서는 빈센트 반 고흐, 자크 루이 다비드, 유진 들라크로와의 작품이 전시되어 있으며 또한 위대한 에두아르 마네, 클로드 모네, 오귀스트 르노아르의 귀중한 작품도 전시되어있다.
상벨베데레의 전시관
[하벨베데레] 1693년, 터키의 제2차 비엔나 점거가 끝난지 10년후에 프랑스 출신으로 위대한 군사령관으로 찬사를 받은 오이겐대공은 황제로부터 하사받은 비엔나교외의 현 벨베데레 위치에 위대한 건축가 루카스 폰 힐데브란트(Lukas von Hildebrandt)로 하여금 자기의 여름궁전을 짓도록 했다. 여름궁전의 진면목은 5월 중순부터 8월말까지 밤 9시반경 휘황찬란한 조명을 받을때에 드러난다. 이를 프랑스어로 ‘son et lumiere’라고 부른다. 조명이 비춰지는 중에는 두건물의 궁전으로 이루어진 벨베데레의 역사를 스피커로 듣게된다. 벨베데레는 두개의 궁전건물과 넓은 정원으로 구성되어있다. 하(下)벨베데레궁이 먼저 건설되었다. 1716년 완성된 하벨베데레궁에는 오스트리아 바로크박물관이 자리잡고 있다. 상(上)벨베데레궁은 1721년-1724년에 건설되었다.
벨베데레의 스핑크스
[바로크] Baroque. 바로크라는 용어는 원래 포르투갈어인 Barroco에서 연유하였다. 완벽하게 둥글지 않고 잘못 틀이 잡힌 진주를 말한다. 그로부터 귀중하지만 완벽하지 않은 것을 말할때에 바로코라고 불렀다. 어떤 경우에는 조금은 경멸적인, 또는 좋은 물건의 가치를 떨어트리기 위해 일부러 사용하기도 했다. 그래서 바로코라는 단어는 순수하지 않고 지나치게 화려하거나 현란한 것에 대하여 빈정대는 뜻으로 사용되었다. 15-16세기에 프랑스, 독일, 오스트리아, 이탈리아에서는 지나치게 화려한 건축양식이 유행하였다. 비교적 단순한 르네상스양식이 점차 도외시되자 사람들은 그 같은 화려한 건축양식을 바로크양식이라고 불렀다. 17세기에 들어서는 이탈리아의 교회들이 너도나도 화려한 바로크양식을 도입하였다. 침착하고 단순한 르네상스양식에 싫증이 났기 때문인듯 싶었다. 음악에 있어서 바로크양식은 17세기로부터 18세기 중반까지 커버하였다. 그 이전의 다성음악과 대위법 위주의 르네상스 음악스타일을 버리고 대단히 장식적이고 강한 화음을 위주로 하는 것이었다.
벨베데레에서 바라본 시내. 가운데 슈테판성당의 남탑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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