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총정리/1월의 성인과 축일

1월 20일: 성 세바스티안(St Sebastian)

정준극 2007. 8. 9. 11:03
 

14 성역자(聖役者)의 한 사람. 궁수와 병사들의 수호성인. 상징: 화살

 

 천사가 성 세바스티안의 머리에 면류관을 씌어주고 있다.


3세기의 성자인 세바스티안은 나르본느(Narbonne) 출신의 귀족으로 기원전 283년경에는 프레토리안 경비대에 근무한 로마군 장교이기도 했다. 그는 특히 로마황제 디오클레티안(Diocletian)과 친밀한 사이였다. 세바스티안은 로마군 장교이면서 비밀리에 기독교를 추종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아무도 몰랐기 때문에 세바스티안은 대위로 진급하기 까지 했다. 그러한 그가 급기야 기독교를 떳떳하게 받아들인다고 공표한 것은 동료 마르크와 마르셀리안 때문이었다. 이 두 사람의 로마군 장교 역시 비밀리에 기독교를 신봉하고 있었다. 세바스티안의 동료들은 기독교인인 것이 발각되어 잔인한 고문과 함께 처형되었다. 이를 본 세바스티안도 자기의 신앙을 굳건히 하기 위해 기독교인임을 공표하였다. 사형선고를 받은 그는 군중들에게 기독교를 전파하는 당당한 연설을 하였다. 이 연설에 많은 사람들이 감명을 받아 마음으로부터 기독교를 받아 들였다.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


분개한 디오클레티안 황제는 세바스티안을 결박해 놓고 숨이 끊어질 때까지 화살을 쏘도록 했다. 그러나 세바스티안은 여러 대의 화살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죽지 않는 기적을 보여 주었다. 살아남은 세바스티안은 기독교에 대한 황제의 잔혹한 박해를 크게 비난하였다. 화가 치민 황제는 세바스티안을 몽둥이로 죽을 때까지 때리도록 했으며 시체는 로마의 하수구에 버리도록 했다. 몇몇 기독교인들이 하수구에서 그의 시신을 찾아 성 베드로와 성 바울이 핍박당한 장소 부근에 매장하였다. 아피아길이었다. 오늘날 성 세바스티안 교회는 로마의 아피아 길에 우뚝 서있다. 성세바스티안 교회는 일반적으로 '성밖성세바스티안교회'(San Sabastiano fuori le mura)라고 부르며 또는 '카타콤성세바스티안교회'(San Sebastiano ad Catacumbas)라고 부른다. 367년 교황 다마수스 1세가 창건했으며 1610년대에 재건되었다. 혹자는 성세바스티안의 유해가 프랑스의 수아송교회에 안치되어 있다는 주장을 하고있다. 로마의 성세바스티안교회는 2000년에 로마에 있는 일곱개의 성지순례교회 중의 하나로 지정되었다.

 

로마의 성밖성세바스티안교회. 성세바스티안의 묘가 있다.


세바스티안은 르네상스 화가들이 즐겨 주제로 삼는 인물이었다. 보통 젊고 준수한, 어찌보면 여성과 같은 나약한 모습이며 상체는 벗은 상태이다. 세바스티안이 성화의 주제로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7세기경부터였다. 당시에 세바스티안은 수염이 난 나이 많은 모습이었으며 머리에는 왕관을 썼다. 어떤 그림에는 화살을 든 기사의 모습으로 그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15세기로부터의 그림에는 나무나 기둥, 또는 십자가에 밧줄로 묶인 세바스티안이 화살에 몸이 관통되는 모습이었다. 성 세바스티안은 궁수들과 병사들의 수호성인이다. 로마군 장교였으며 더구나 화살을 몸에 맞고도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역병을 물리치는 수호성인으로서도 추앙을 받았다. 역병은 화살처럼 눈깜빡 할 사이에 몸에 쳐들어와서 화살처럼 치명상을 입히기 때문이다.

 

 성 세바스티안의 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