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인 총정리/7월의 성인과 축일

7월 31일: 성 이그나티우스(St Ignatius)

정준극 2007. 8. 9. 13:00
 

예수회 창시자. 영적 훈련과 묵상의 수호성인. 학교의 수호성인. 상징: IHS라는 이니셜과 예수회 의복.


16세기 바스크 귀족의 아들인 이그나티우스(1491-1566)는 로욜라(Loyola)성에서 태어났다. 그래서 로욜라의 성 이그나티우스라고 불린다. 그는 군인으로서 팜플로나(Pamplona)공략 전투에 참가하여 부상을 입었다. 이그나티우스는 전투중에 발에 포탄을 맞아 불구가 되었다. 그리하여 평생을 절름발이로 지내야 했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 중, 그는 간호사에게 기사들의 무용담이나 로맨틱한 연애 소설을 읽고자 하니 가져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전달된 책은 신앙서적이었다. 이로부터 이그나티우스의 삶은 바뀌었다. 그는 지난날 군인으로서의 난폭한 생활을 청산하고 하나님을 따르기로 결심했다. 이그나티우스는 다리가 불구임에도 불구하고 예루살렘 성지순례를 감행하였다. 그는 예루살렘에서 새로운 성회를 만들어야 겠다고 결심했다. 예수회(Society of Jesus)였다. 그는 선교사들은 누구보다고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스페인에 돌아온 이그나티우스는 어릴때 공부하지 않은 것을 후회하고 30대의 청년임에도 불구하고 초등학교에 들어가 다른 어린이들과 함께 기초적인 공부를 했다.

 

성 이그나티우스

 

파리로 자리를 옮긴 이그나티우스는 새로운 성회인 예수회를 널리 알리기 시작했다. 예수회는 교육, 순종, 선교를 기본으로 하였다. 여섯명의 추종자들이 이그나티우스의 새로운 성회에 합류하였다. 이그나티우스는 선교를 위해 멀리 떠났다. 이그나티우스의 예수회에 동조하는 무리들이 날로 늘어나게 되어 나중에는 온 유럽에 추종자들이 있게 되었다. 이그나티우스는 로마에 버림받은 여인들(창녀들)을 위한 안식의 집을 지었으며 한편 유태인들을 기독교로 개종시키는 노력도 기울였다. 예수회는 복종을 절대적인 강령으로 삼고 있었다. 그래서 군대로 말하자면 이그나티우스는 사령관이었으며 그의 추종자들은 십자가 군병들이었다. 예수회는 스페인의 종교재판소와 깊은 관련을 맺고 있었다. 그리하여 스페인의 남미 식민지에서도 선교의 기득권을 차지할수 있었다. 예수회는 선교에 있어서 로마 교황에게 직접 봉사한다. 교황 베네딕트 16세는 이그나티우스에 대하여 '하나님의 사람중 가장 존귀한 자'(Above all a man of God)이라며 찬사를 보냈다.


성화에서 성 이그나티우스는 예수회를 상징하는 검고 높은 칼라의 옷을 입고 있으며 IHS라는 이니셜을 그의 가슴에 또는 들고 있는 책에 적혀있도록 했다. 간혹 발로 용을 밟고 있는 모습도 있다. 사탄의 세력에 대한 승리를 의미한다. 예수회가 세운 일반학교, 대학, 교회들은 모두 이그나티우스를 수호성인이라고 부르고 있다.

 

 성 이그나티우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