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euth Richard Wagner Festspielhaus
바이로이트 축제극장
독일의 작은 도시 바이로이트는 리하르트 바그너와 인연이 많은 곳이다. 바그너는 1872년부터 1883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바이로이트에서 살았다. 바그너의 지극한 후원자였던 바바리아의 루드비히 2세가 이곳에 반프리트(Wahnfried)라는 별장을 마련해 주어서 살았다. 반프리트 별장은 2차대전후 바그너 기념관으로 단장되었다. 바이로이트 북쪽에 있는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바그너의 작품만을 공연하는 특별한 극장이다. 이 극장은 세계에서 음향이 가장 완벽하고 무대의 시각적인 효과도 가장 훌륭한 곳으로 인정받고 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바그너의 손길이 서려 있는 곳이다.
리하르트 바그너가 직접 설계하고 공사감독을 했다.
링 사이클의 공연장소를 물색하기 위해 독일의 이곳저곳을 찾아다니던 바그너는 바이로이트 마을에 대하여 각별한 관심을 갖게 되었다. 바그너가 보기에 모든 지형조건이 새로운 극장의 위치로서 완벽했다. 1872년 바그너는 라이프치히의 건축가 오토 브루크발트(Otto Bruckwald)와 협동하여 바이로이트 마을에 연주회장을 짓기 시작했다. 바그너는 드레스덴 슈타츠오퍼를 설계했던 고트프리트 젬페르(Gottfired Semper)의 미완성 설계도를 젬페르의 허락도 받지 않고 가져와 사용했다. 오페라극장 건설을 위해 원래 바그너는 연주회를 가져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연주회는 생각만큼 성공적이지 못했다. 바그너는 건축비를 절감하지 않을수 없었다. 우선 고급자재를 사용하지 않기로 했다. 대리석 대신에 벽돌과 목재를 많이 사용한 것은 그 때문이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오디토리엄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의 특징중 하나는 1,800석이나 되는 객석이 마치 하나의 층처럼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다른 극장처럼 1층, 2층, 박스, 로우지(Loge), 갤러리를 두지 않았다. 음향설계는 바그너 자신이 감독했다. 특히 오케스트라 피트가 무대와 연결되도록 함으로서 무대의 음악이 동시에 직접 전달되도록 했다. 바이로이트 축제극장은 1876년에 오픈되었다. ‘니벨룽의 반지’의 마지막 두편과 파르지팔(Parsifal)이 초연되었으며 링 사이클 4편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연속하여 공연된 곳도 이곳이다. 당시 무명이었던 니체(Nietsche)와 바그너의 친분은 이때로부터 시작되었다. 바이로이트의 바그너는 니체의 철학사상이 크게 진작되는데 많은 기여를 했다. 이와 함께 니체도 바그너 음악의 대변자로서 이를 널리 인식시키는 일에 앞장섰다. 니체의 저서 ‘이 사람을 보라’(Ecce Homo)는 바그너의 영향을 받은 것이라고 한다. 매년 여름 열리는 바이로이트 음악축제는 바그너 뮤직 드라마의 진수를 경험할수 있는 곳으로 이 극장만이 자랑할수 있는 세계적 이벤트이다. 바그너가 세상을 떠난후 그의 부인인 코지마가 극장운영을 도맡아 했으며 그 이후에는 바그너의 아들 지그프리트 바그너(Siegfried Wagenr)가 열심히 극장을 경영하고 음악제를 주관하였다.
오케스트라 피트 스케치. 오케스트라가 무대를 향하여 배치되어 있다. 연주자들은 뒷쪽 자리를 낮게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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