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 비엔나 테아터 안 데어 빈(Theater an der Wien)
Theater on the Wienfluss: 비엔나강변극장
파파게노가쎄에 면한 테아터 안 데어 빈의 구정문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원래‘비엔나강변극장’이란 뜻이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오늘날 비엔나 중심가의 야채 및 과일 시장인 나슈마르크트(Naschmarkt) 길 건너편에 있다. 원래 나슈마르크트에는 도나우강의 지류(Wienfluss라고 함)가 하나 조그맣게 흐르고 있었다. An der Wien이란 말은 ‘Wienfluss의 제방’이라는 뜻이다. 지류는 운하 스타일로 바뀌었고 지금은 그 자리에 지하철 철로가 들어섰다. 비엔나의 유서 깊은 이 극장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스타일로 설계되었다. 극장을 세운 사람은 엠마누엘 쉬카데너(Emmanuel Schikandeder)였다. 쉬카네더는 모차르트 오페라의 대본가였으며 1791년 모차르트가 세상 떠나던 해에 초연된 오페라 ‘마술피리’에서 파파게노 역을 맡아 직접 출연도 했던 배우 겸 성악가 겸 극본가 겸 사업가였다. 이 극장은 1786년에 건설되었지만 정작 제대로의 극장으로서 완공된 것은 1801년이었다. ‘마술피리’가 초연된지 2년후였다. 이 극장이 완공되자 비엔나 사람들은 ‘비엔나에서 가장 화려하게 장식되었고 장비도 훌륭하며 가장 넓은 무대를 가진 극장’이라면서 찬사를 보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여러번 보수와 개축을 거쳤으며 현재의 극장은 오리지널 극장의 일부만이 남아 있는 것이다. 작곡가 카를 밀뢰커를 기념하는 밀뢰커가쎄(Millöckergasse)와 오페라 ‘마술피리’의 주인공인 파파게노를 기념하기 위한 파파게노가쎄(Papagenogasse) 방향으로 있는 구정문(舊正門)은 쉬카네더가 ‘마술피리’의 초연시 맡았던 파파게노 역할을 기념하기 위해 ‘파파게노 문’이라고 이름을 붙였다. ‘파파게노 문’에는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파파게노의 모습과 세 소년의 모습을 조각으로 만들어 놓았다. 파파게노는 쉬카네더를 표현한 것이며 세 소년은 쉬카네더의 세 아들로서 역시 ‘마술피리’의 초연에 세 소년으로 출연했었다. 1801년 개관 기념 공연은 알렉산더 타이버(Alexander Tyber)의 알렉산더(Alexander)라는 오페라였다. 쉬카네더가 이 오페라의 서막의 대본을 썼다.
나슈마르크트 쪽에서의 정문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다음과 같은 작품을 역사적으로 초연했다는 영예를 지니고 있다. 1803년 베토벤의 교향곡 제2번, 1805년 베토벤의 교향곡 제3번(영웅), 1805년 11월 20일 베토벤의 유일한 오페라 휘델리오(Fidelio)가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베토벤은 실제로 휘델리오를 작곡할 때에 쉬카네더의 간절한 요청으로 이 극장의 안쪽에 있는 방에 살았었다. 베토벤은 이 극장의 방에서 살면서 여러 작품을 썼다. 예를 들면, 바이올린 협주곡(1806), 교향곡 제5번(운명: 1808), 교향곡 제6번(전원), 합창환상곡, 피아노협주곡 제4번 등이다. 1817년, 프란츠 그릴파르처(Franz Grillparzer)의 오페라 Die Ahnfrau(할머니)도 이곳에서 초연되었다. 1823년, 프란츠 슈베르트가 막간음악을 작곡한 빌헬르미네 폰 헤지(Wilhelmine von Chezy)의 연극 ‘사이프러스의 공주 로자문데’(Rosaunde, Fürstin von Zypern)가 이 곳에서 초연된 것도 특기할 만한 사항이다. 로자문데에 나오는 인시덴탈 뮤직(부속음악)은 많은 사랑을 받고 있는 곡이다.
테아터 안 데아 빈의 명판. 베토벤이 이 극장에서 1803-04년 살았다는 내용과 그의 오페라 휘델리오와 교향곡, 크로이처 소나타 등이 이 곳에서 초연되었음을 적어 놓았다.
요한 슈트라우스의 오페라 ‘박쥐’가 1874년에 초연된 것은 비엔나 오페레타에 새로운 장을 열어주는 것이었다. 이어서 1898년에는 리하르트 호이버거(Richard Heuberger)의 오페레타 ‘오페라 무도회’(Der Opernball)가 초연되었으며 비교적 근세인 1905년에는 프란츠 레하르의 유명한 오페레타 ‘메리 위도우’(Die lustige Witwe)가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4년후에는 프란츠 레하르의 오페레타 ‘룩셈부르크의 백작’(Der Graf von Luxemburg)가 처음으로 무대에 올려졌다. 비엔나 오페레타의 백은시대를 장식하는 오스카 슈트라우스의 오페레타 ‘초콜릿 솔져’(Die tapfere Soldat: The Chocolate Soldier)는 1908년에 이 극장에서 초연되었다.
나슈마르크트쪽에서 바라본 테아터 안 데어 빈 건물
‘테아터 안 데어 빈’은 비엔나의 오페레타 황금시기에 최고의 인기를 누렸다. 그러던중 슈타츠오퍼(국립오페라극장)가 2차대전의 전화로 파괴되자 1945년부터는 10년동안 슈타츠오퍼의 임시극장으로 활용되었다. 1955년 테아터 안 데어 빈은 안전상의 문제로 임시 폐쇄되었다. 그후 몇 년동안 폐가와 같았었다. 1960년대에는 건물을 허물고 주차장으로 변경하자는 주장이 있어서 한때 존폐의 위기를 겪기도 했다. 당시에는 비엔나 중심지역 재개발 붐이 일어나던 때였다. 더구나 미국의 카네기 홀도 안전상의 이유와 재개발의 여파로 철거되었기 때문에 ‘테아터 안 데어 빈’을 철거하자는 의견이 타당성있게 고려되었었다. 다행하게도 1962년 ‘테아터 인 데어 빈’은 새로운 활로를 모색했다. 현대적 뮤지컬 극장으로 거듭나게 된 것이다. 이후 영어로 된 뮤지컬의 독일어 초연이 종종 이루어졌다. 1992년에는 뮤지컬 엘리자베트(Elisabeth: 바바리아의 엘리자베트: 일명 씨씨: 프란츠 요셉 황제의 부인)가 초연되어 비엔나 시민들의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다. 뮤지컬 캐츠(Cats)는 7년 연속공연되는 기록을 세웠다. 요즘에는 뮤지컬뿐만 아니라 오페레타와 연극도 자주 공연되는 비엔나 음악의 명소가 되었다.
요한 슈트라우스 2세의 오페레타 '박쥐'는 1874년에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 초연되었다.
‘테아터 안 데어 빈’에서는 1991년 모차르트 서거 2백주년을 기념하는 전세계적 행사의 일환으로 모차르트 오페라의 시리즈 공연이 있었다. 첫 번째로 무대에 올린 작품은 이도메네오였다. 그후 이 극장은 모차르트의 ‘마적’을 초연했다는 자부심으로 연극보다는 오페라와 오페레타에 더욱 치중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테아터 안 데어 빈’의 세가지 공연방향은 바로코 오페라, 현대 오페라, 그리고 모차르트 오페라로 노선을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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