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오그라드 국립극장(Narodno Posonte u Beogradu)
National Theater in Belgrade
베오그라드 국립극장과 광장
유고슬라비아는 동구의 자유화이후 여러 나라로 분리되었다. 그 중의 하나가 세르비아이다. 세르비아는 구 유고슬라비아의 가장 핵심되는 지역을 이어 받았다. 벨그라이드(베오그라드)가 수도이다. 현재의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의 전신은 1868년 건설된 세르비아 국립극장(Serbian National Theater)이다. 당시 세르비아는 오스트로-헝가리 제국에 속해 있었다. Principaility of Servia(세르비아 공국)이라고 불렀다. 당시 세르비아 공국의 수도는 Novi Sad(노비 사드)였다. 세르비아 공국에는 Novi Sad Servian National Theater(노비 사드 세르비아 국립극장)가 있었다. 세르비아의 대표적인 오페라단이었다. 어느때 이 오페라단이 베오그라드에 와서 오페라를 공연한 일이 있다. 당시 베오그라드의 미하엘(Michael) 대공이 이들의 오페라를 보고 매우 감동하여 베오그라드에도 이같은 오페라단이 있어야 한다고 나섰다. 미하엘 대공은 노비 사드 오페라단장인 요반 도르도비츠(Jovan Dordovic)를 베오그라드로 유치하여 오페라단 결성을 당부했다. 도르도비츠는 무슨 생각을 했는지 노비 사드 국립극장의 단원중 거의 반을 데리고 베오그라드로 왔다. 그리하여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앙상블(오페라단)을 설립하였다. 1882년의 일이었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이보다 앞서서1869년 베오그라드에 국립극장이 완성되었다. 베오그라드 출신의 건축가인 알렉산다르 부가르스키(Alexandar Bugarski)가 건축 책임을 맡았다. 밀라노의 라 스칼라를 본따서 극장을 지었다. 르네상스 개념을 살리자는 의도에서 였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에서는 오페라 이외에도 발레, 연극, 콘서트, 특히 자선무도회가 열렸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앙상블(오페라단)은 최고의 오페라단이 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했다. 레퍼토리의 범위를 넓히고 해외공연까지 하여 국제적인 명성을 쌓았다. 1954년 서베를린을 방문하여 차이코브스키의 마제파(Mazeppa)를 공연한 것이다. 시민들은 갈채를 아끼지 않았으며 평론가들은 극찬을 보냈다. 이 시기가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오페라단의 황금기였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앙상블에는 주로 러시아 출신의 성악가들이 활동했다. 하지만 세르비아 출신의 성악가들도 점차 많은 역할을 맡기 시작했다. 세계적 성악가인 즈덴카 지코바(Zdenka Zikova), 니콜라 스베지크(Nikola Cvejic)등은 모두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앙상블 출신이다.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의 샹들리에 청소
유고슬라비아 내전중인 1999년 베오그라드는 나토군의 포격을 받아 참담한 전화에 휩싸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은 문을 열고 밤마다 오페라를 공연하였다. 이번에는 일반 시민 아무나 관람할수 있도록 했다. 입장료는 단 1디나르였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에는 2개의 공연장이 있다. 그랜드 홀에서는 오페라와 발레를 주로 공연한다. 소극장인 로사 블라오비츠(Rosa Plaovic)는 콘서트와 연극공연을 한다. 세르비아 독립후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은 점차 국제적 명성을 더해가고 있다. 베르디, 로시니, 도니제티와 같은 이탈리아 작품을 주로 공연하지만 세르비아 작곡가에 의한 오페라도 발굴하여 무대에 올리고 있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 오페라단은 세계적 수준이다.
베오그라드 국립극장의 카르멘 무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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