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치히 오페라하우스(Opera Leipzig)
Leipzig Opera House
라이프치히 오페라 하우스. 사회주의 양식이다.
독일 중부 드레스덴에 가까이 있는 라이프치히는 바흐, 바그너, 멘델스존의 도시이기도 하다. 바흐는 아이제나하(Eisenach)에서 태어났지만 어릴때에 라이프치히 성도마교회의 합창단원으로 활동했고 그 이후에도 라이프치히를 중심으로 많은 음악활동을 했다. 이를 기념하여 라이프치히에는 바흐박물관 등 바흐와 관련된 곳이 많다. 함부르크에서 태어난 멘델스존은 라이프치히에 와서 음악원을 설립하였다. 바그너는 라이프치히에서 태어났다. 라이프치히의 리하르트-바그너-플라츠는 바그너를 기리기 위한 광장이다. 그리고 라이프치히 오페라 하우스는 바그너에게 헌정된 건물이다.
라이프치히의 오페라 역사는 베니스와 함부르크와 거의 같은 시대에 시작되었다. 첫 오페라 공연이 1693년에 있었다는 기록만 보아도 알수 있다. 라이프치히는 독일 징슈필(Singspiel)의 발상지이다. 1752년에 첫 징슈필이 공연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요한 아담 힐러(Johann Adam Hiller)는 독일 징슈필의 아버지로 칭송받고 있는 인물이다. 역시 라이프치히를 근거로 활동했다. 독일 통일후인 1990년 독일이 자랑하는 작곡가인 우도 침머만(Udo Zimmerman)이 라이프치히 게봔트하우스(Gewandhaus) 오케스트라와 라이프치히 오페라단의 상임지휘자로 임명되었다. 라이프치히 오페라의 부흥을 책임 맡은 그는 첫 공연으로 요한 아담 힐러의 징슈필 The Hunt(사냥)을 무대에 올렸다. 라이프치히의 징슈필을 기억하기 위해서 였다. 그는 파리-라이프치히-바르샤바를 연결하는 오페라의 축을 구성코자 했다.
라이프치히 오페라 하우스 오디토리움
라이프치히에 본격적인 오페라극장이 등장한 것은 1868년이었다. 당시에는 Neues Theater(신극장)이라고 불렀다. 개관 기념으로 베버의 Jubilee Overture(경축서곡), 글룩의 '얼리드의 이피게니'서곡이 연주되었다. 라이프치히 신극장은 인근 드레스덴의 젬페르(Semper)극장과 경쟁적인 위치였다. 그래서 더욱 열심히 오페라 활동을 했던 것 같았다. 1886년부터는 구스타프 말러가 제2대 지휘자로 잠시 라이프치히 오페라단을 이끈적이 있다. 1943년 12월 3일 라이프치히에 대한 연합군의 대규모 공습으로 신극장은 완전히 파괴되었다. 새로운 극장의 건설은 그로부터 10여년 후인 1956년에 시작되어 1960년에 완성되었다. 바그너의 '뉘른베르크의 명가수'가 개관 기념으로 공연되었다. 앞에서도 말했지만 라이프치히 오페라 하우스(Opera Leipzig)는 바그너에게 헌정된 극장이다.
라이프치히의 명소인 오페라 하우스와 분수
현재의 상임지휘자는 리카르도 샤일리(Riccardo Chailly)이다. 그는 라이프치히가 자랑하는 세계적 오케스트라인 '라이프치히 게봔트하우스'오케스트라의 상임지휘자이기도 하다. 그는 현대적인 오페라의 소개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최근 슈토크하우젠의 Tuesday of Light(빛의 화요일)을 공연한 것은 좋은 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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