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리골레토 - 베르디

정준극 2007. 10. 31. 16:00

리골레토

(Rigoletto)

G. Verdi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중반기 작품중 최대 걸작이다. 베르디가 38세 때인 1851년 베니스에서 초연되었다. 오늘날 리골레토는 세계적으로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 라 트라비아타에 이어 두 번째로 가장 많이 공연되는 작품이다. 그러나 리골레토는 베르디의 작품 중에서 ‘가면무도회’와 함께 가장 많은 수난을 겪은 작품이기도 하다. 당시 이탈리아 북부를 지배하고 있던 오스트리아 제국의 검열 때문에 원래 제목인 Le roi s'amuse(King has fun: 왕이 재미 삼아서)를 리골레토라고 바꾸어야 했으며 내용도 손질을 해야 했다. (당시 오스트리아제국의 황제는 페르디난트 1세였다.) 리골레토의 대본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Francesco Maria Piave)가 맡았다. 피아베는 이미 에르나니(Ernani),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e Foscari), 맥베스(Macbeth), 해적(Il Corsaro), 슈티펠리오(Stiffelio)의 대본을 완성하므로서 베르디와 막역한 콤비를 이룬 사람이었다.


대본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1850년 가을, 베니스의 라 훼니체(La Fenice)극장은 베르디에게 새로운 오페라의 작곡을 의뢰했다. 당시 베르디는 오페라 작곡가로서 이미 명성을 높이 떨치고 있었다. 극장측은 베르디에게 새로운 오페라의 소재는 마음대로 선택해도 좋다고 하였다. 처음에 베르디는 알렉산더 뒤마(아버지: Alexander Dumas, pere)의 Kean(킨)을 소재로 오페라를 작곡하려 했다. Kean은 19세기 영국의 위대한 셰익스피어 배우인 에드먼드 킨(11789-1833)의 사생활을 그린 작품이다. 그러나 베르디는 킨 보다는 좀 더 역동적이고 드라마틱한 주제가 좋을것 같다고 생각했다. 마침 빅토르 위고(Victor Hugo: 1802-1885)의 Le roi s'amuse(왕이 재미 삼아서)를 읽고 ‘바로 이것이다’라고 생각하여 오페라로 작곡키로 했다. 위고의 Le roi s'amuse는 우리나라에서도 일본과 마찬가지로 ‘일락의 왕’(逸樂의 王)이라고 번역하였으나 원래의 의미와는 거리가 있는 번역이다. 왕이 재미 삼아서 여인들을 농락한다는 내용이기 때문에 '할일없이 즐기는 왕'이라는 번역은 약간 거리가 있다. 베르디는 대본가 피아브와 함께 곧 작업에 들어갔지만 누구의 작품을 오페라로 만들고 있는지에 대하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빅토르 위고와도 협의하지 않았다. 검열을 걱정해서였다. 


빅토르 위고


빅토르 위고는 Le roi s'amuse라는 소설을 1832년에 내 놓았다. 프랑스의 프랑수아 1세(Francois I: 1494-1547)에 대한 스토리이다. 프랑수아 1세는 1515년부터 16년동안 프랑스의 군주로서 군림한 인물이다. 프랑스 르네상스 시기의 문을 연 왕이었다. 그는 예술의 수호자였다. 작가들을 후원했고 도서관을 부흥시켜 귀중한 출판물을 후세에게 유산으로 남겨 놓았다. 그는 자신이 시인이기도 했다. 한편 프랑수아 1세는 왕실 소유의 여러 성들을 화려하게 개축하는 일에도 많은 노역을 기울였다. 대표적인 공사는 폰텐블로 성을 르네상스 양식으로 크게 개축한 것이었다. 그 때문에 국가 재정이 상당히 탕진되기도 했다. 나중에 프랑수아 1세는 폰텐블로 궁전에서 정부인 에땅공작부인(Duchess of Etapmes) 앤느(Anne)와 함께 분방한 생활을 하며 지냈다.

 

폰텐블로 궁전(Le château de Fontainebleau)


프랑수아 1세는 점점 방탕하여졌다. 프랑수아 1세의 궁중에는 어릿광대 트리뷸레(Triboulet)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에게는 아름다운 딸이 하나 있는데 왕이 자기 딸을 농락하자 미칠 지경이 되어 왕을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트리뷸레는 자객을 매수하여 왕을 죽이도록 했다. 그런데 세느강에 버릴 시체가 왕이 아니라 그의 사랑하는 딸이었다는 것이다. 빅토르 위고가  어릿광대 트리뷸레에 대한 에피소드가 있은지 거의 3백년이 지난후에 그 이야기를 소설로 썼다. 그것이 Le roi s'amuse였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은 연극으로 만들어져 파리에서 첫 공연을 가졌다. 당시 프랑스의 왕은 루이-필립(Louis-Philippe: 1773-1850)이었다. 프랑스 정부는 빅토르 위고의 연극 ‘왕이 재미 삼아서’가 프랑스 왕실을 모욕하는 것으로 간주하여 당장 공연을 금지토록 했다. 프랑스 정부는 ‘왕이 재미 삼아서’를 앞으로 50년 동안 공연금지하는 결정을 내렸다. 빅토르 위고는 이 조치가 부당하다고 하여 고소를 했으나 패배하였다. 그런 입장에서 베르디가 ‘왕이 재미 삼아서’의 공연금지 사건이 있은지 10여년후에 비록 이탈리아에서지만 오페라로 만들어 공연한다는 데에는 부담이 있었다. 하지만 베르디는 어릿광대 트리뷸레라는 인물이 당시 시대를 대표하는 가장 인간적이고 가장 비판적인 인물이라고 생각했다. 베르디는 트리뷸레가 비록 비천한 처지의 사람이지만 가진 자와 권세 있는 자의 불의에 대하여 서슴없이 풍자 할수 있는 용기를 보인 것을 높이 평가하였다. 더구나 베르디는 몇 년전에 빅토르 위고의 에르나이(Ernani)를 바탕으로 오페라를 만들어 성공하였기 때문에 이번에도 자신이 있었다. 베르디는 당시의 사회가 진정으로 원하는 그런 작품을 만들고 싶어 했다. 오페라 '리골레토'는 그렇게 하여 만들어졌다. 나중에 ‘리골레토’를 본 빅토르 위고는 원작의 내용이 너무 훼손된데 대하여 극도로 분노하고 앞으로 절대로 ‘리골레토’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나 몇 년후 빅토르 위고는 ‘리골레토’를 다시 찾았다. 그리고는 자기의 원작보다 더 감동적이라는 말을 남겼다. 그만큼 베르디의 리골레토는 위대한 작품이었다. 


빅토르 위고 소설의 주인공인 프랑스 국왕 프랑수아 1세


당시 이탈리아의 북부지역 대부분은 합스부르크의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이 지배하고 있었다. 그러므로 베르디의 새로운 오페라는 당국의 검열을 받아야 했다. 베르디와 대본의 피아베는 Lr roi s'amuse를 오페라로 만들었을 때 쉽게 검열을 통과하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베르디가 피아베에게 보낸 편지를 보면 대강 짐작할수 있다. 베르디는 피아베에게 ‘네다리를 사용해서라도 베니스 거리마다 뛰어 다니며 우리 작품을 검열에서 통과할수 있도록 힘써 줄 사람을 찾아보세!’라고 썼다. 그렇다고 너무 지나치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검열 당국은 프랑스가 아니라 오스트리아라는 생각에서였다. 라 훼니체 극장의 책임자인 브렌나(G. Branna)도 크게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그러나 결과는 예상대로 진행되지 않았다. 1850년 여름, 베니스에서는 오스트리아 겸열당국이 베르디의 새로운 오페라인 ‘왕이 재미 삼아서’를 금지 할것이라는 소문이 돌았다. 이로 미루어 볼때 당시 베니스에서는 베르디의 새로운 오페라에 대하여 이미 대단한 관심을 가지고 있었음을 알수있다. 오스트리아 검열 당국도 베르디가 어떤 작품을 만들고 있는지 잘 알고 있었다. 오스트리아 검열 당국은 베르디라는 사람이 왕을 모독하는 스캔들 이야기를 오페라로 만들어 공연하는 것을 절대로 허락할수 없다는 입장을 간접적으로 표명했다. 사람들은 검열 당국이 Lese majeste(Injury to the majesty), 즉 군주에 대한 비난은 범죄행위라는 점을 들어서 베니스에서는 공연을 절대로 허락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를 했다.

 


라 훼니체 극장(베니스)


그런 소문을 들은 베르디는 피아베와 협의하여 검열에 대비키로 했다. 우선 Le roi s'amuse(왕이 재미 삼아서)라는 제목을 The Curse(저주)로 바꾸기로 했다. 그러나 오스트리아 당국은 스파이를 통해 베르디가 오페라의 제목을 바꾸어 검열을 통과하려 한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만일 그런다고 해도 공연허가를 절대로 줄수 없다는 소문을 냈다. 베르디와 피아베는 지금까지 노력해온 작업이 휴지조각이 되는 것을 원치 않았다. 최소한 라 훼니체 극장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검열은 통과되어야 했다. 베르디와 피아베는 가제목 ‘저주’의 일부 내용을 수정했다. 일부 대사는 다른 오페라에서 가져왔다. 이미 검열을 통과한 오페라의 대사였기 때문에 아무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주인공인 프랑수아 왕은 왕이 아니라 공작의 신분으로 바꾸었다. 피아베는 한 술 더 떠서 꼽추 트리뷸레의 역할을 아예 삭제하자고 제안했다. 베르디는 그것만은 안된다고 극구 반대했다. 베르디는 검열 당국과 직접 협상해서 해결하자고 주장했다. 라 훼니체를 대표하여 브렌나가 검열 당국과 협상을 했다. 그는 ‘베르디 선생이 얼마나 위대한 분인데 그런 분의 작품을 공연금지 한다면 베니스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서도 시민들이 크게 반발 할것’이라고 내세웠다. 마침내 타협이 이루어졌다. 무대는 프랑스 궁정으로부터 이탈리아의 적당한 곳으로 바꾸기로 했으며 주인공들의 이름도 바꾸는 것으로 양해가 되었다. 프랑스 왕이 어릿광대의 딸을 능욕하고 그의 방에서 유유히 걸어 나오는 장면도 삭제토록 했다. 가장 중요한 수정은 트리뷸레라는 이름을 리골레토로 바꾸기로 한 것이다. 프랑스어에서 Rigo라는 단어는 ‘웃기는’(fun)이란 뜻이어서 그럴듯했다. 내친 김에 오페라의 제목도 ‘리골레토’로 변경하게 되었다. 그러나 아무리 제목을 바꾸었다고 해도 빅토르 위고의 작품정신은 최대한으로 살리고자 했다.

 

만투아 공작의 궁성   


모든 공연 준비는 비밀리에 진행되었다. 당국이 또 무슨 트집을 잡아 공연을 금지할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출연자들의 리허설도 비공개로 하였다. 주인공인 만투아 공작에게는 일부러 악보를 늦게 주었다. 아리아의 내용이 미리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였다. 베르디는 초연에서 만투아 공작 역을 맡은 테너 라파엘레 미라테(Raffaele Mirate)에게 La donna e mobile를 공연 전에 흥얼거리거나 휘파람으로라도 불면 안된다는 서약까지 받았을 정도였다. 1850년 3월 11일 베니스 라 훼니체에서의 오프닝은 완전 승리였다. 만투아 공작의 냉소적인 아리아 La donna e mobile(여자는 변덕스러운 것: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은)는 너무나 인상적이어서 다음날 아침에는 벌써 베니스 거리에서 웬만한 사람이면 흥얼거리며 부를 정도였다.

 

리골레토의 레오 누치. 마드리드 레알극장


여기서 잠시 베르디 당시의 시대상황을 다시 살펴볼 필요가 있다. 리골레토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베르디가 밀라노의 라 스칼라를 무대로하여 오페라 작곡가로서의 기반을 탄탄히 다져가고 있던 1840년대는 유럽 여러 나라에서 왕정에 맞서는 진보적 사상의 물결이 출렁대던 시대였다. 당시 오스트리아-헝가리제국(합스부르크)의 지배를 받고 있던 북부 이탈리아에서도 조국통일과 민주혁명의 불길이 서서히 타오르고 있었다. 애국심이 유난히 깊었던 베르디로서 이탈리아 통일이라는 명제는 깊은 관심사가 아닐수 없었다. 그러나 그가 할수 있는 일은 오페라를 통해서 조국통일 운동을 격려하고 국민들의 애국심을 드 높혀 주는 것이 전부였다. 빅토르 위고의 혁명적인 소설 에르나니(Ernani)를 오페라로 만든 것도 이 무렵이었고 프랑스의 구국소녀 잔 다크를 주인공으로한 조반나 다르코(Giovanna d'Arco), 이방의 압정으로부터 해방코자 하는 이스라엘 민족의 이야기를 다룬 나부코(Nabucco), 프랑스의 지배에 항거하는 ‘두 사람의 포스카리’(I due Forscari: 포스카리의 두 사람)를 발표한 것도 이 시기였다. 리골레토도 기본적으로 같은 선상에 놓여 있는 작품이다.

 

프랑스의 압정에 항거하는 내용인 ‘두 사람의 포스카리’의 장면. 자코포 포스카리가 추방의 길을 떠나기 전에 가족들과 마지막 작별을 고하고 있는 장면. 1838년경 프란체스코 하예즈 작.


타이틀 롤인 리골레토(Rigoletto: Bariton dramatico)는 만토바 공작(Duke of Mantova: Tenor lirico)의 궁정에서 빌붙어 사는 어릿광대 꼽추이다. 온갖 멸시와 천대를 다 받고 지내는 천한 사람이다. 리골레토는 먹고 살기 위해 주인인 만토바(Mantova: Mantua) 공작의 편에 서서 다른 귀족들에게 참기 어려운 독설을 퍼붓는다. 아마 공작에 대한 간접적인 독설일지 모르며 그렇지 않으면 자기 자신에 대한 독설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러나 어릿광대 꼽추가 주인공으로서 아리아를 부르도록 하다니! 표준적인 오페라에서는 있을수 없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비록 천대를 받는 어릿광대 꼽추이지만 그의 내면에는 하나뿐인 딸에 대한 지고의 사랑이 담겨있다. 그런가하면 부조리한 사회와 비도덕적인 횡포에 대한 비판이 들어차 있다. 베르디는 바로 이러한 모습에 감동하여 작곡을 결심했다. 만일 리골레토를 평범한 어릿광대 불구자로 그려 놓았다면 무슨 감흥이 있겠는가?

 

만토바 공작궁에서의 파티 장면

 

과거의 오페라들은 사랑, 배신, 복수, 살인의 내용으로 점철되어 있다. 이런 오페라에서는 선과 악, 도덕과 비도덕이 확실히 구분된다. 리골레토에서는 다르다. 보기 흉한 리골레토는 인간 대접을 받지 못하는 비천한 인물이다. 그러나 그의 부성애만은 마음을 파고들도록 눈물겨운 것이다. 리골레토는 사랑하는 딸을 위하여 어떠한 모욕과 천대도 감수하며 이성을 잃어 버린 행동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뜨겁게 감싸여 진다. 리골레토의 아름답고 청순한 딸인 질다(Gilda: Sop. lirica 또는 Sop ligera)는 어떠한가? 질다는 자기를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유혹하고 기만하여 마음에 깊은 상처를 준 만토바 공작을 용서하며 그를 구하기 위해 자기 자신을 희생한다. 일반적인 도덕률에 비추어 보면 그런 일은 도저히 이해할수 없는 일이다. 주인공들의 일반적인 상식을 뛰어 넘는 예기치 못한 행동, 그리고 상반된 성격...그 곳에서 베르디가 추구하고자 했던 것은 과연 무엇인가? 억압자에 대한 불굴의 저항, 진정한 자아의 재발견...바로 그런 것들이다.

 

만투아 공작 역의 전설적인 엔리코 카루소

 

무대는 16세기 이탈리아 북부의 만토바(만투아)공국이다. 제1막은 만토바 공작의 호화로운 궁전에서 열리는 파티로 막이 오른다. 호색한인 만토바 공작은 자기가 마음만 먹으면 어떤 여자든지 수중에 넣을수 있다고 호언하여 Questa o quella(이 여자냐, 저 여자냐)라는 힘찬 아리아를 부른다. ‘나의 주위에 있는 여자들은 모두 아름답게 보인다. 모두 내 마음대로할수 있다. 한 여자에게만 마음을 주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이 여자를 택할까, 저 여자를 택할까’라는 내용이다. 그러면서 만토바 공작은 손님으로 초대한 체프라노(Ceprano: Bass) 백작의 부인을 모두의 앞에서 보란 듯 가로채어 침실로 끌고 들어간다. 이때 공작에게 자기 딸을 농락당한 일이 있는 몬테로네(Monterone: Ten) 백작이 공작을 향하여 사람의 탈을 쓰고 어떻게 그럴수 있느냐며 저주를 한다. 그러한 몬테로네 백작에게 궁정 어릿광대인 꼽추 리골레토가 ‘오죽 못났으면 딸이 농락 당하도록 가만히 있었을까? 딸이 바람이 나서 공작을 좋아했던 것이 아닌가?’라면서 심하게 빈정댄다. 몬테로네 백작은 공작에게 대들다가 오히려 공작의 경호병사들에게 끌려 나간다. 몬테로네 백작은 공작보다도 리골레토를 더 비난하면서 ‘너도 언젠가는 딸이 농락당한 아버지의 원한이 어떤 것인지 알게 될 것이다’라는 말을 내 뱉는다. 리골레토는 그 말에 가슴을 칼로 찔린듯 움칠한다. 왜냐하면 리골레토에게는 아무도 모르게 숨겨 놓은 아름다운 딸이 있기 때문이다.

 

딸을 돌려달라고 공작(스코트 퀸)에게 간청하는 리골레토(토드 토마스)


장면은 바뀌어 무대는 리골레토가 그의 딸을 숨겨 놓은 교회의 어는 한적한 집이다. 남이 볼새라 망토를 걸치고 어둠 속에서 주위를 살피며 몰래 집으로 들어가려는 리골레토에게 낯선 사나이가 다가온다. 그 사나이는 자기의 직업이 자객이라고 소개하면서 언제든지 필요하다면 일을 맡겨 달라고 말한다. 자객은 리골레토에게 그렇게 남의 눈을 피하여 몰래 집안으로 들어가려는 사람이라면 무슨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이다. 자객은 이름을 스파라푸칠레(Sprafucile: Bass)라고 했다. 그는 리골레토가 누구인지 알고 있었다. 리골레토와 스파라푸칠레는 Pari siamo(우리는 같다)라는 유명한 듀엣을 부른다. ‘나는 혀끝으로 사람을 죽이고 너는 단칼로 찔러 죽인다. 나는 웃음을 만들고 너는죽음을 만든다. 우리는 같은 사람이다’라는 내용이다. 자객이 어둠 속으로 사라지자 질다가 나타나 리골레토를 반긴다. 두 사람 사이에 아버지와 딸로서의 아낌없는 애정이 흐른다. Firliia! Mio Padre(딸아! 나의 아버지!)는 리골레토와 질다가 부르는 듀엣이다. 어떻게 하여 저렇게 추하게 생긴 리골레토에게 저토록 아름답고 청순한 딸이 있을수 있단 말인가? 그리고 얼마나 가슴을 저미는 부녀간의 뜨거운 사랑이란 말인가?

 

리골레토 역의 디미트리 플라타니아스


리골레토의 행복한 순간은 잠시뿐! 마음은 어쩐지 불안하기만 하다. 어떤 수상한 청년이 자꾸만 그의 집을 기웃거리고 있기 때문이다. 그 청년은 다름아닌 색마 만토바 공작! 바로 조금전 성당에서 먼발치로 질다를 본후 그 청순한 아름다움에 반하여 유혹하고자 뒤를 쫓아 왔던 것이다. 질다는 대학생으로 변장한 만토바 공작의 정체를 모르고 다만 골티에르 말데(Gaultier Malde)라고 자기를 소개한 청년을 좋아하게 되고 마침내 사랑을 맹세하게 된다. 질다를 농락할 셈으로 집까지 몰래 따라온 만토바 공작은 바로 그 집에서 나오는 리골레토를 보고 놀란다. 공작은 질다가 리골레토의 딸인 것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릿광대 꼽추의 딸이면 어떻단 말인가? 한편, 집에 돌아온 질다는 골티에르 말데라고 하는, 알고보면 골때리는 대학생을 그리워 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Gaultier Malde! caro nome(골티에르 말데! 사랑스런 그 이름)이라는 불후의 아리아이다. 알고 보면 골을 때릴 것 같은 사람인데 사랑스런 사람이라니! ‘사랑스런 그 이름! 사모하는 이 가슴에 아로 새겨진 그 이름! 내 가슴을 메운 사랑의 기쁨. 언제나 당신 곁에. 마지막 숨을 거둘때라도 그대의 이름을 부르리!’라는 내용이다. 사랑에 눈먼 청순한 여인의 간절한 소망이 담겨 있는 노래이다. 소프라노라면 누구나 한번 부르고 싶은 서정적이고도 감미로운 아리아이다.

대학생 골티에르 말데를 그리워하는 질다(Edita Gruberova)


평소 리골레토의 건방지고 오만한 독설에 원한을 품고 있던 귀족들과 궁신들은 리골레토를 잡아 혼내주기 위해 그의 집을 찾아 왔다가 아름다운 아가씨 질다가 리골레토의 딸인 것을 알고 오히려 잘되었다 싶어서 질다를 납치키로 한다. 이들은 집밖으로 나오는 리골레토를 붙잡아 눈을 가린후 쓰러트리고 집안으로 들어가 질다를 납치하여 사라진다. 이 사실을 안 리골레토는 얼핏 몬테로네 백작이 던졌던 저주의 말을 떠 올리며 전율하지만 이미 때는 늦었다. 사랑하는 딸 질다는 괴한들에게 납치된 후였다.


리골레토와 질다(디아나 담라우)


제2막은 다음날 아침 만토바 공작의 방이다. 궁신들이 나타나서 공작을 위해 리골레토의 딸을 납치해 왔다고 자랑한다. 공작은 납치해 온 여자가 다름 아닌 자기가 유혹하려 했던 아가씨인 것을 알고 은근히 기뻐한다. 잠시후 절망에 빠진 리골레토가 나타난다. 리골레토는 질다가 호색한 공작에게 농락당하고 있을 것이라는 예감에 빠져 미칠것 같은 심정이다. 리골레토는 공작의 침실에서 불쌍한 질다가 공작의 마수에 걸려 울부짖을 것 같은 불현듯 들어 공작의 침실로 뛰어 들어가려 한다. 그러나 공작의 경호원들과 궁신들이 그의 앞을 가로 막는다. 리골레토는 분노와 원망에 휩싸여 울부짖는다. Cortigiani, vil razza dannata(썩은 놈들아, 문을 열어라!)는 리골레토의 비장한 아리아이다. ‘저주 받을 놈들아, 내 사랑하는 딸을 얼마를 받고 팔았느냐? 돈이면 사족을 못쓰는 것이 너희 놈들의 행태! 그러나 내 딸을 돈으로 살수 없다. 돌려다오! 죽일 놈들아. 이 문을 열어다오! 만토바 나리! 당신은 마음씨 고운 양반. 어디에 내 딸을 숨겼단 말이오? 여러분 제발 빕니다. 이 늙은이에게 딸을 돌려주시오. 돌려주기는 쉬운 일인데...내게는 둘도 없는 딸이란 말이요. 여러분 제발 빕니다!’라는 내용이다. 이때 공작의 침실에서 질다가 흐트러진 옷을 추수리며 흐느끼면서 뛰어나오다가 리골레토를 보고는 그의 품에 쓸어지듯 안긴다. 리골레토는 모든 것을 알아차리고 분노의 심정을 가누지 못한다. 그러면서도 딸의 등을 어루만지며 위로한다. ‘울어라! 내 딸아! 눈물로 마음의 슬픔믈 씻어 버려라!’...리골레토는 공작에 대한 복수를 굳게 다지면 절규하듯 아리아를 부른다.

 

스파라푸칠레의 주막에서 공작과 막달레나와 자객 스파라푸칠레

 

제3막은 호젓한 민쵸(Mincho)강변. 자객 스파라푸칠레가 경영하는 주막이다. 느닷없이 주막에 나타난 만토바 공작은 저 유명한 ‘여자의 마음’(La donna e mobile)을 부른다. 스파라푸칠레의 여동생 막달레나(Magdalena: MS 또는 Cont.)는 주막에 들어선 핸섬한 청년이 공작인줄 모르고 그에게 눈길을 보낸다. 그런 눈치를 본 공작은 계속하여 La donna e mobile를 부르며 막달레나를 유혹하려 한다. ‘바람에 날리는 새털과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 달콤한 속삭임 웃음 띤 얼굴. 눈물을 흘려도 믿을수 없다네.’라는 내용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바람에 날리는 갈대와 같이, 항상 변하는 여자의 마음’이라고 번역되었지만 원래 가사는 ‘깃털’로 되어 있다.

 

로열 오페라 하우스 무대.


주막집 창문 밖에서는 공작이 이곳으로 온 것을 알고 있는 리골레토가 복수를 다짐하고 있으며 또 다른 한쪽에서는 질다가 막달레나에게 수작을 부리는 공작의 모습을 눈물을 흘리며 지켜보고 있다. 이윽고 어우러지는 4중창. Un di, re ben rammentori...Bella figlia dell'amore(사랑스런 딸)이다. 오묘한 조화를 이루는 곡이다. 질다를 먼저 집으로 돌려 보낸 리골레토는 자객 스파라푸칠레에게 저 청년을 암살해 달라고 하며 돈을 치룬후 다시 오겠다고 하며 사라진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밤은 깊어만 간다. 술에 취한 공작은 잠깐 잠에 빠져 있다. 오빠 스파라푸칠레가 칼을 준비하여 공작을 죽일 준비를 하자 공작의 풍모와 달콤한 말에 끌린 막달레나는 오빠에게 그를 죽이지 않고 살릴 방법이 없겠느냐며 조른다. 스파라푸칠레는 누이동생 막달레나의 간청에 못이여 누구든지 이 어두운 밤에 주막을 찾아오는 사람이 있으면 그를 대신 죽여 자루에 넣어 리골레토에게 넘겨주기로 약속한다. 집으로 가다말고 다시 주막을 찾아온 질다가 우연히 이 얘기를 듣는다.

 

죽어가고 있는 딸 질다를(디아나 담라우) 붙잡고 절규하는 리골레토


휘몰아치는 폭풍우. 이윽고 주막집 문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린다. 스파라푸칠레가 문을 열어 준다. 희미한 불빛 아래 어떤 젊은 남자가 들어선다. 남장을 한 질다이다. 스파라푸칠레의 단검이 번개처럼 번쩍인다. 잠시후 뇌성번개가 가라앉자 검은 망토를 걸친 리골레토가 나타난다. 리골레토는 자객에게 잔금을 치루고 자루에 들어 있는 시체를 건네 받는다. ‘세느 강물 속에 던져야지!’...리골레토는 시체가 든 자루를 조각배에 싣는다. 이때 뜻밖에도 들여오는 노래소리...공작이 부르는 ‘바람에 날리는 새털과 같이’가 무대위에 울려 퍼진다. 불길한 예감이 든 리골레토는 떨리는 손으로 자루를 열어본다. 번개가 다시금 번쩍인다. 아, 이것이 어쩐 일인가? 자루 속에는 사랑하는 딸 질다가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질다는 스러져가는 소리로 V'ho ingannato(아버지를 속였어요)라고 말한다. ‘질다...’딸의 이름을 외차다가 목이 메어 쓰러지는 리골레토...막이 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