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마술피리(마적) - 모차르트

정준극 2007. 11. 2. 07:48

마술피리(마적: 魔笛)

(Die Zauberflöte: The Magic Flute)

W. A. Mozart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비엔나로 온 모차르트의 생활은 생각 밖으로 어려웠다. 비엔나의 궁정에서 일자리를 찾아보았으나 살리에리를 비롯한 기성 인물들이 죽치고 있어서 여의치 않았다. 부유한 귀족들의 후원도 기대하기가 어려웠다. 모차르트는 먹고 살기 위해서 닥치는 대로 작곡을 했다. 왕족이나 귀족은 물론, 일반 백성들을 위한 무곡, 세레나데 등 별별 작품을 다 써야 했다. 물론 먹고 살기 위해서 작곡한 것이지만 하나하나가 모차르트의 천재성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주옥같은 작품이었다. 그래도 생활은 나아지지 않았다. 방세를 내기 위해 친구들의 도움을 받는 것도 한계가 있었다. 그 시절에 모차르트는 비엔나에서 여러번이나 하숙집을 옮겨야 했다. 그런중에도 그에게 도움을 준 친구중에 미하엘 푸흐버그(Michael Fuchberg)와 엠마누엘 쉬카네더(Emmanuel Schikaneder)가 있었다. 오페라 ‘마적’은 친구 쉬카네더의 주선으로 만들어 진 것이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요세파 호퍼(마적의 초연에서 밤의 여왕을 맡음)

 

비엔나에 와서 하숙집을 전전하던 모차르트는 전에 독일 만하임에서 알고 지낸 일이 있는 프리돌린 베버(Fridolin Weber)여사가 마침 비엔나에서 하숙집을 하기에 그의 집에 머물게 되었다. 프리돌린 베버 여사에게는 딸이 넷이 있었다. 첫째 딸은 요세파 호퍼(Josepha Hofer: 1759-1819)였다. 콜로라투라 소프라노였다. 둘째 딸 역시 소프라노인 알로이지아(Aloysia)였다. 모차르트는 독일에서 베버 집안과 교류하면서 알로이지아를 좋아하여 한때 결혼까지 결심했으나 모차르트의 아버지인 레오폴드의 반대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셋째 딸이 콘스탄체(Constance)였다. 모차르트는 콘스탄체와 결혼하였다. 베버여사 집안의 막내딸은 조피(Sophie)였다. 이복동생이었다. 모차르트의 부인인 콘스탄체의 삼촌(아버지의 이복동생)의 아들이 유명한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이다. 그러므로 콘스탄체와 베버는 사촌간이다.

 

'마술피리'의 대본을 썼으며 초연에서 파파게노의 이미지를 창조한 엠마누엘 쉬카네더

 

모차르트가 비엔나에서 활동할 당시의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는 요셉 2세(Joseph II: 1741-1790)였다. 유명한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의 큰 아들이었다. 요셉 2세 황제는 후사가 없이 모차르트보다 1년 먼저 세상을 떠났다. 요셉2세는 신성로마제국의 황제라는 타이틀 이외에도 헝가리 왕, 크로아티아와 슬라보니아(슬로베니아) 왕, 보헤미아(체코 공화국) 왕, 독일 왕, 그리고 오스트리아 대공이라는 칭호를 갖고 있었다. 요셉 2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마리아 테레지아의 큰 아들이며 유명한 마리 앙뚜아네트의 오빠이다. 요셉 2세는 계몽시대의 군주로서 예술애호가 겸 후원자였다. 특히 음악에 재능이 있어서 직접 작곡도 했다. 그래서 요셉 2세를 음악왕(Music King)이라고 부른다. 요셉 2세는 오페라에 있어서 독일적 오페라의 진흥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당시 비엔나는 물론이고 유럽의 대부분 지역에서는 이탈리아 오페라가 주도권을 잡고 있었다. 요셉 2세 황제는 그것이 못마땅했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독일어 가사로 된 오페라를 작곡토록 의뢰했다. 스타일은 독일 전통의 징슈필(Singspiel)이면 좋겠다는 의견이었다. 그렇게 하여 탄생한 것이 Die Entführung aus dem Serail(후궁에서의 도주)이었다. 요셉 2세는 '후궁...'의 초연에 직접 참석하여 모차르트를 크게 치하하였다. 1790년 요셉 2세가 세상을 떠났을 때 합스부르크 왕실은 청년 베토벤에게 장례 칸타타의 작곡을 의뢰했다. 그러나 베토벤의 칸타타는 연주하기에 기술적으로 너무나 힘들어 실제로 연주되지는 못했다는 에피소드가 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 겸 오스트리아 대공인 요셉 2세.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모차르트의 즉흥 연주를 듣고 있는 요셉2세 황제


요셉 2세가 후사가 없이 세상을 떠나자 동생 레오폴드(Leopold II: 1747-1792)가 신성로마제국 황제, 독일 왕, 보헤미아 왕, 오스트리아 대공 등등의 모든 직위를 계승하였다. 레오폴드는 마리아 테레지아의 둘째 아들이다. 레오폴드 2세는 대관식을 화려하고 장엄하게 치루고 싶어했다. 그것도 한 곳에서가 아니라 제국의 여러 곳에서 차례로 대관식을 갖고자 했다. 신성로마제국 황제로서의 대관식은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1790년 10월에 거행 되었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1년 전이다. 레오폴드 2세는 살리에리를 포함한 여러 궁정음악가들을 대관식에 참석토록 했다. 그러나 모차르트에 대하여는 관심이 없었던지 또는 아직 어리다고 생각했었는지 초청하지 않았다. 모차르트는 어떻게 해서든지 레오폴드의 관심을 받고 싶었다. 그의 형인 요셉2세 시절과 마찬가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였다. 모차르트는 스스로 여비를 마련해서 프랑크푸르트로 갔다. 대관식의 음악순서는 이미 모두 정해져 있었다. 모차르트로서는 무슨 수를 쓰더라도 음악회에서 순서를 하나 맡아야 했다. 궁정의 아는 사람을 통해서 겨우 피아노곡을 연주할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하지만 대관식의 모든 절차가 끝난후 사람들이 퇴장할 때 연주를 한다는 조건이었다. 어수선할 때에 피아노를 연주한다는 것은 모차르트로서 자존심 상하는 일이었지만 그나마도 다행으로 알고 사람들이 퇴장할 때에 피아노를 연주했다. 그것이 유명한 ‘대관식 협주곡’이었다. 원래는 타이틀이 없는 피아노협주곡 26번이었으나 나중에 그 협주곡의 화려함과 장엄함으로, 그리고 레오폴드 2세의 대관식과 연관되어서 처음 연주되었기 때문에 ‘대관식’이라는 별명을 붙였다.

                        

즉위한지 2년후에 세상을 떠난 레오폴드 2세

 

모차르트는 새로운 황제인 레오폴드를 위해 노력하였으나 그래도 나아진 것은 없었다. 어느덧 추운 겨울이 되었다. 모차르트는 비엔나 교외의 초라한 집에서 부인 콘스탄체, 어린 아들 카를과 함께 살고 있었다. 겨우 도움을 준 사람은 친구인 미하일 푸흐버그였다. 푸흐버그는 모차르트 가족을 비엔나 시내의 어느 아담한 집으로 옮겨 살도록 했다. 지금의 슈테플 백화점 뒤편에 있는 집이다. 라우엔슈타인가쎄(Rauhensteingasse) 4번지였다. 모차르트는 시내에 거처하면 피아노를 배우러 오는 학생들이 많을 것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고작 두명뿐이었다. 사회가 모차르트를 외면했던 것일까? 그렇지 않으면 모차르트가 사회의 일원이 되기를 외면한 것이었을까? 이러한 때에 그에게 또 다른 도움을 준 사람이 엠마누엘 쉬카네더였다. 쉬카네더는 공연 흥행가 겸 코미디 연극 배우였다. 재능이 많아서 노래도 잘 불렀고 오페라와 연극의 대본도 썼다. 쉬카네더는 뷔덴에 있는 극장에 극단 겸 오페라단을 가지고 있었다. 그러다가 얼마 후에는 아예 뷔덴극장(Theater auf der Wieden)의 운영까지 맡게 되었다. 쉬카네더는 잘츠부르크 시절부터 모차르트의 친구였다. 그는 모차르트에게 일반 서민들이 좋아할수 있는 평범한 독일 징슈필 오페라를 작곡해 달라고 부탁하고 선금까지 주었다. 만일 그 오페라가 성공하면 수익의 얼마를 떼어 주겠다는 약속도 했다. 그러면서 그가 쓴 ‘마적’(마술피리)의 대본을 건네주었다.

 

이시스 신전에서의 자라스트로 고승

 

쉬카네더가 운영하고 있던 극장은 Freihaus-Theater-auf-der Wieden(프라이하우스 비덴 극장)이란 이름이었다. 지금의 ORF 방송국이 있는 곳 부근이며 현재는 아파트(보눙)로 개조되어 사람들이 살고 있는 건물이다. 1789년 ‘후궁에서의 도주’가 초연된 장소이기도 하다. 모차르트의 ‘마적’은 바로 이 비덴극장에서 초연되었다. 어떤 설명에 따르면 ‘마적’이 빈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에서 초연되었다고 되어 있으나 사실은 그렇지 않다. 빈극장은 현재 거의 시내 중심지역인 나슈마르크트 옆의 큰길가에 있다. 빈극장의 옛정문이 있는 곳에는 이 극장에서 1791년 9월 30일 ‘마적’이 초연되었다는 명판이 붙어 있으나 그건 나중에 만들어서 설치한 것이다. 빈강변극장의 옛정문은 ‘파파게노 문’이라고 부르며 이 문의 윗편에는 파파게노로 분장한 쉬카네더와 ‘마술피리’에 등장하는 세소년의 모습이 조각으로 설치되어 있다. 초연에서의 세소년은 실제로 쉬카네더의 세 아들이었다고 한다. 아무튼 비덴에 있던 쉬카네더의 극장은 1801년까지 사용되다가 문을 닫게 되었으며 그 해에 쉬카네더는 지금의 나슈마르크트 길건너에 있는 건물을 인수한후 개축하고 빈강변극장이라고 불렀다. 극장 앞에는 빈강(Wien Fluss)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에 빈강변극장이라고 불렀다. 
                                         

빈강변극장(Theater an der Wien)의 옛 정문인 파파게노문. 파파게노와 세 소년 조각. 파파게노는 쉬카네더이며 세 소년은 실제로 그의 세 아들이라고 한다.


쉬카네더가 모차르트에게 징슈필 오페라를 의뢰한 직후 이번에는 생각지도 않았는데 프라하극장이 모차르트에게 새로운 오페라의 작곡을 주문했다. 모차르트로서는 돈이 생기는 일이기 때문에 선뜻 수락했다. La Clemenza di Tito(티토황제의 자비)였다. 모차르트는 이 오페라를 단 18일만에 작곡했다. 당장 돈이 급해서였다. ‘티토황제의 자비’는 1791년 9월 6일 프라하의 에스테이트극장(Estates Theater)에서 초연되었다. 모차르트는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너무나 지친 나머지 몸이 말이 아니었다. 지치고 병든 몸을 이끌고 비엔나로 돌아온 모차르트는 쉬카네더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마술피리’를 완성해야 했다. 혹자는 ‘마적’이 모차르트 최후의 작품이라고 주장하지만(실제로 공연된 날짜를 보면 그렇다) ‘티토의 자비’보다 먼저 작곡을 시작했기 때문에 ‘티토의 자비’가 마지막 작품이라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아무튼 ‘마술피리’는 쉬카네더의 독촉으로 완성되어 그해 9월 30일에 비덴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그로부터 두달 후인 12월 5일 모차르트는 진혼곡(Requiem)을 완성하지 못한채 이 세상에서의 짧은 생애를 마감했다. 아마데우스라는 영화를 보면 쇠약해진 모차르트가 ‘마술피리’의 초연을 힘들게 지휘하던중 정신을 잃고 쓰러져 그날밤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건 다만 영화일 뿐이다. ‘마술피리’는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후 1년동안에 1백회 공연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남길 정도로 인기를 끌었다.

 

타미노 왕자를 구해준 '밤의 여왕'의 세 시녀들


‘마술피리’에는 여러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그 중에서 ‘밤의 여왕’과 자라스트로(Sarastro)는 극단적으로 대조적인 인물이다. ‘밤의 여왕’은 이성을 잃은 마음씨 나쁜 반계몽주의, 개화반대자를 상징한다. 반면 자라스트로는 이성적인 지혜와 온정에 넘친 보호자를 상징한다. 즉, 계몽주의자이며 개화주의자를 상징한다. 요셉2세 황제가 계몽주의 군주인 것은 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므로 오페라 '마술피리'에서의 자라스트로를 요셉2세와 견주지 않았을까 하는 견해가 있다. 초연에서 ‘밤의 여왕’은 모차르트의 처형인 요세파 호퍼(Josepha Hofer)가 맡았다. ‘밤의 여왕’의 역할은 아마 콜로라투라 소프라노 역할 중에서 가장 힘든 역할로 알려져 있다. ‘밤의 여왕’의 유명한 아리아인 Der Holle Rache kocht in meinem Herzen(마음 속에 복수의 불길이 타오르고)를 부르는 것은 소프라노로서 서바이벌 게임에 참가한 것과 같다. 높은 음은 F6까지 올라간다. 오페라 아리아로서는 극히 드믄 경우이다. 반면 자라스트로의 아리아에는 뚜렷하게 들려야 하는 저음 F가 몇 번이나 나온다. 자라스트로의 아리아인 O Isis und Osiuris(오 이시시와 오시리스여), In diesen hell'gen Hallen(성스러운 전당에서)에서 그러하다. 성악적으로 이 두사람의 어려움을 제외하면 다른 주인공들의 아리아와 듀엣은 부르기에 딱 좋은 음역으로 되어 있다. 그것도 ‘마술피리’가 갖는 특징이라면 특징이다.

 

‘밤의 여왕’. 디아나 담라우


어려울 때에 모차르트에게 힘이 되어준 푸흐버그와 쉬카네더는 모두 프리메이슨(Freemason)이라는 단체의 멤버였다. 모차르트도 이들을 따라 프리메이슨에 가입하고 프리메이슨의 목적에 동조하였다. 프리메이슨의 정신은 모차르트의 작품 세계와 생애에 상당한 영향을 끼쳤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대표적인 작품이 ‘마술피리’이다. 그래서 잠시 프리메이슨에 대하여 간단하나마 짚고 넘어가고자 한다. 프리메이슨의 역사는 고대 이스라엘 왕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솔로몬이 예루살렘 성전을 지을때 석공과 목수 일을 맡아 했던 사람들의 정신을 계승하여 17세기 초 유럽에서 정식으로 발족한 단체이다. 프리메이슨의 메이슨(Mason)이란 단어가 석공, 벽돌공을 뜻하는 것을 생각해 보면 짐작이 간다. 프리메이슨은 옛날 석공들과 벽돌공, 목수들이 하나님의 성전을 지었던 마음으로 절대자 하나임을 믿고 의지하며 예루살렘 성전을 통하여 온 백성들을 밝은 빛으로 인도한 것처럼 어두운 세상을 계몽하고 개화해야 하는 일에 마음을 함께 해야 한다는 목적으로 결성되었다. 말하자면 지나치게 횡포를 일삼는 왕권과 교권에 반대하며 진보적인 사상을 유지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당시에는 아무래도 국가와 귀족들, 그리고 기성교회의 눈총을 받아야 했기 때문에 점차 멤버들 상호간의 형제애적인 단체로 몸을 추스러야 했고 따라서 공개적인 활동을 금기하는 입장에서 회원으로 가입하는 데에도 일정한 제약이 있었다. 18세기의 위대한 계몽주의 사상가인 볼테르를 비롯하여 문호 괴테, 작곡가 하이든도 프리메이슨의 중심인물이었다. 일설에 의하면 프랑스 혁명도 프리메이슨의 영향을 크게 받았다고 한다.

 

프리메이슨 입단식(Freimauer Initiation)


프리메이슨은 로마가톨릭에 대하여 적잖은 거부감을 가지고 있었다. 로마가톨릭은 자기들이 합스부르크를 주축으로한 신성로마제국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다면서 권력을 휘둘렀다. 계몽사상에 젖어 있는 프리메이슨이 로마가톨릭의 횡포와 수탈을 지지할 리가 없었다. 프리메이슨에 가입한 모차르트도 로마가톨릭에 대하여 반감을 가지고 있었다. 잘츠부르크의 지기스문트 대주교로부터 이런 저런 모욕과 핍박을 받았던 것도 모차르트의 로마가톨릭 거부반응에 일조한 것이었다. ‘마술피리’에는 로마가톨릭에 대한 모차르트의 반감이 은연중 내재되어 있다. ‘마술피리’의 중심무대를 이집트의 이시스(Isis) 신전으로 삼은 것도 로마가톨릭을 빗대어 비판한 것이다. 로마가톨릭이 베드로의 천국 열쇠를 내걸고 천국을 바라보자고 내세우는데 반하여 이시스는 육신을 가진 땅의 여신으로서 죽음을 겪어야 하는 인간을 대변한다. 로마가톨릭이 세상의 일도 해결하지 못하면서 천국만을 강조하는 것을 비유로 들었다는 설명이다.     

 

이집트의 이시스 신전. 그림(현재는 나세르 호수가에 있다.)


‘밤의 여왕’(Sop)은 합스부르크 제국의 마리아 테레지아 여제를 표현했다고 한다. 자비한 것 같으면서도 무자비한 당시 합스부르크의 절대군주 마리아 테레지아를 합리적이고 인자한 것 같으면서도 사악한 ‘밤의 여왕’으로 표현했다는 얘기다. 타미노(Tamino: Ten)왕자는 합리적이고 예술을 사랑하는 요셉 2세를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원작에는 멀리 자바(Java)의 왕자라고 되어 있다. 자바의 왕자가 어떻게 이집트까지 오게 되었는지는 수수께끼이다. 아름다운 파미나(Pamina: Sop) 공주는 어둠의 세계에서 벗어난 타미노 왕자와 결합하게 된다. 빛의 승리이다. 이시스 신전의 고승 자라스트로(Sarastro: Bass)는 프리메이슨의 정신을 표현한 것이라고 하며 자라스트로의 사악한 노예인 모노스타토스(Monostatos: Ten)는 당시 로마가톨릭에 빌붙어서 이익만을 추구하던 예수회(Jesuit) 교회를 상징한 것이라고 한다. 파파게노(Papageno: Bar)는 새를 잡아 파는 새잡이이다. 현실에 충실한 명랑한 청년이다. 파파게노는 어둠의 세계를 빛의 세계로 인도하는 안내인 역할이다. 파파게나(Papagena: Sop)는 아름다운 마을 아가씨이다. 처음에는 보기 흉한 노파로 분장하고 나오지만 나중에는 제 모습을 보이고 파파게노와 결혼한다. 이밖에 세명의 ‘밤의 여왕’의 시녀들, 세명의 소년들이 나온다. 이렇듯 ‘마적’에서는 3이라는 숫자가 특별한 의미를 가진다. 서곡에서도 세가지 기본화음이 장중하게 흘러나온다. 프리메이슨이 비밀 모임을 가질때에 이들의 신념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3개의 화음이다. 프리메이슨 멤버는 세가지 등급으로 구분된다. 첫째가 신입 도제(Entered Apprentice)이고 다음이 동료(Fellow Craft)이며 마지단 계급이 장인(Master Mason)이다. 수학에서 완전을 의미하는 삼각형도 프리메이슨에게는 중요한 상징이다. 비록 최근 만들어 졌지만 프리메이슨의 로고(Logo)는 삼각형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3이라는 숫자는 완전을 의미한다. 예수께서 3일만에 부활하신것, 삼위일체에 대한 신앙고백도 3과 연관된 사항이다.

 

멀리 자바에서 온 타미노 왕자(프릿츠 분더리히)


오페라 ‘마술피리’의 대사 중에는 간혹 왕권이나 교권을 풍자하는 내용이 나온다.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놀라운 사항이지만 그것을 탓하는 백성들은 아무도 없었다. ‘마적’을 본 사람들은 ‘진정으로 위대하고 특별한 작품’이라면서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괴테도 ‘마적’을 본후 ‘찬란한 위대성에 고개를 숙인다’고 말했다. ‘마술피리’는 인간의 도덕세계와 정신적 신앙세계를 조화 있게 반영했다는 차원 높은 평을 받았다. ‘마적’이 전하는 메시지는 무엇인가? 어두운 밤이 걷히면 아침과 함께 찬란한 햇빛이 온 누리를 비치는 것과 마찬가지로 무지와 무관심의 세계로부터 밝은 희망의 세계로 향하여 나아감으로서 인간다운 삶을 살자는 것이다. 모차르트는 ‘마적’의 성공으로 밝은 빛을 찾는듯 했으나 안타깝게도 때는 늦었다. 독일어 가사로 된 ‘마술피리'는 전2막으로 되어 있다. 비교적 간단한 구성이지만 여러 장면이 나오기 때문에 일견 혼란스럽기도 하다. 서곡에서의 힘찬 알레그로는 이 오페라의 밝은 면, 특히 파파게노의 역할을 암시하는 것이다. 서곡에서의 트럼본 연주는 프리메이슨이 의식 때 부는 트럼본 연주와 같다.

 

용으로부터 쫓김을 당하고 있는 타미노 왕자


제1막은 이시스 신전 부근의 거친 산속이다. 타미노(Tamino)왕자가 큰 뱀(혹은 용)에 �기고 있다. 위기일발! ‘밤의 여왕’을 수종하는 세명의 부인(2명의 Sop. 1명의 MS)이 나타나 괴물 뱀을 죽이고 왕자를 위기에서 구한다. 왕자는 기절하여 쓰러진다. 세명의 부인은 잘생긴 왕자에게 잠시 관심을 쏟지만 그런 일이 자기들 본연의 임무가 아님을 인식한다. 세 부인중에 한 사람은 현장에 남아서 왕자를 지키기로 하고 두 부인은 ‘밤의 여왕’에게 보고하러 간다. 세명의 부인은 모차르트의 처가에 세명의 딸이 있는 사실을 상기시켜 준다. 세 딸중 두명은 다른 사람에게 가고 막내 콘스탄체가 모차르트와 결혼한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다. 그건 그렇고 잠시후 마치 새처럼 분장한 새잡이 파파게노가 팬파이프를 불면서 등장한다. 도레미파솔 5음의 연속음이 묘한 조화를 이루며 부르는 파파게노의 명랑한 아리아가 Der Vogelfänger bin ich ja(나는 새잡이. 그렇지요)이다. 파파게노는 기절하여 쓰러져 있던 왕자와 죽어 있는 큰 뱀을 보고 놀란다. 왕자가 정신을 차리고 일어나자 파파게노는 왕자에게 자기가 그 흉측한 뱀을 죽였다고 하면서 자랑한다. 그러자 세명의 부인이 나타나 벌로서 거짓말한 파파게노의 입에 자물쇠를 채우고 말을 못하게 한다. 세명의 부인은 왕자에게 어떤 아름다운 여인의 초상화를 주며 이 여인이 현재 사악한 마법사에게 붙잡혀 있으므로 구해 달라고 부탁한다. 뱀에 �겨 죽을 뻔했던 왕자인데 무슨 재주가 있다고 유능한 세명의 부인조차 엄두를 내지 못하는 공주구출 작전을 수행할수 있다는 것인지 의아스럽겠지만 전설의 고향이라는 것이 대개 다 그렇듯이 상식적으로는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 많다고 생각하면 마음 편할 것이다.

 

타미노 왕자를 구해준 세 부인. 밤의 여왕의 시녀들이다.


타미노 왕자는 세 부인들이 건네준 어떤 여인의 초상화를 보고 ‘세상에 이렇게 아름다운 여인도 있는가?’라는 생각에 감격하여 Dies Bildnis ist bezaubernd schön(놀랄만큼 아름다운 초상화)라는 대단히 서정적인 아리아를 부른다. ‘아름다운 자태. 황홀한 눈동자. 머리 숙여지는 기품. 눈부신 아름다움. 나의 가슴에서 타오르는 것은 무엇인가? 이 여인은 어디에 있는 것일까? 눈앞에 그대가 있다면. 이 가슴에 그대를 포옹하고 뜨거운 심정으로 고백하리. 그대는 영원히 나의 사랑이라고!’...이런 내용이다. 곧이어 ‘밤의 여왕’이 등장한다. 공포를 느끼게 하는 그런 모습이다. ‘밤의 여왕’은 타미노 왕자에게 ‘그 초상화는 나의 딸인데 지금 사악한 자사스트로에게 납치되어 있다. 나는 매일을 슬픔으로 보낸다.’라고 말한다. 이 말을 들은 왕자는 자기가 공주를 구하겠다고 선뜻 나선다. 세명의 부인은 왕자에게 마술피리를 건네주며 위험할 때 피리를 불면 나타나서 도와주겠다고 말한다. 그리고 옆에서 아무 소리도 못하고 있는 파파게노의 입에 채워져 있는 자물쇠를 열어주고 딩동댕 소리가 아름답게 울리는 마술 은종(銀鐘)을 주면서 왕자를 도우라고 말한다.

 

밤의 여왕의 등장. 1816년 독일의 건축가이며 무대장치가인 칼 프리드리히 쉰켈이 처음 디자인한 것이다.


타미노 왕자는 ‘밤의 여왕’이 주는 마술피리를 가지고 공주가 잡혀 있다는 곳에 잠입한다. 한편 공주는 탈출을 시도하지만 당장 모노스타토스(Monostatos: Ten)에 붙잡힌다. 고승 자라스트로의 시종인 모노스타토스는 탐욕스런 무어인이다. 자기 주제도 모른채 감히 예쁜 파미나 공주를 넘본다. 타미노 왕자가 나타나 모노스타토스와 대결을 벌인 끝에 공주를 무사히 구한다. 모노스타토스는 앙갚음을 맹세하며 도망간다. 이곳에서 왕자는 고승 자라스트로를 만난다. 공주를 납치하여 데리고 있다는 사악한 사람이다. 그러나 왕자는 자라스트로와 얘기를 나누어 보니 밤의 여왕의 주장과는 달리 덕망이 높은 고승이며 공주를 납치한 것이 아니라 악과 어둠의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밤의 여왕’으로부터 청순한 공주를 보호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한편 왕자를 만난 공주는 ‘아하, 이 분이 동화에서처럼 나를 구해줄 분이구나!’라고 생각하며 은연중 왕자를 사랑하는 마음이 생긴다. 두 사람은 Bei Männern, welche Liebe fühlen(사랑을 느끼는 마음)이라는 듀엣을 부르며 서로의 사랑을 확신한다. 고승 자라스트로는 타미노에게 파미나와의 사랑을 완성하려면 여러 시련을 거쳐야 한다고 말하며 파미나 공주를 다른 곳으로 데려간다.

 

파미나 공주와 새잡이 파파게노. 유명한 '사랑을 느끼는 남자들에게는'을 부른다. 사라소타 오페라

 

왕자는 기꺼이 시련에 참여키로 한다. 우선 왕자는 세 개의 사원의 문을 통과해야 한다. 매번 사원의 문을 통과할 때만다 지혜의 승려가 내는 문제를 맞추어야 한다. 이 장면은 마치 프리메이슨에 신입 회원으로 가입(Initiation)하는 의식을 치루는 것과 같다. 가장 중요한 것은 진실함과 성실함이다. 왕자는 첫 번째 문을 무사히 통과했으나 두 번째와 세 번째 문에서는 질문에 대답을 하지 못하여 거부당했다. 그러나 다행이 지혜의 승려의 도움으로 모든 문을 통과한다. 지혜의 승려는 왕자에게 곧 공주와 재회하게 될 것이라고 다짐해 준다. 기쁨에 넘친 왕자가 마술피리를 불자 온갖 동물들이 나와 춤을 추며 축하한다. 한편, 파파게노는 모노스타토스에게 붙잡혔으나 세 부인이 준 은종을 울리자 모노스타토스와 그의 노예들이 모두 춤을 추며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파파게노는 그 틈을 타서 모노스타토스에게 붙잡혀 있는 불쌍한 노예들이 모두 도망가도록 한다. 1막은 고승 자라스트로가 다른 승려들과 함께 등장하여 타미노 왕자가 시련을 통하여 깨끗함을 입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것으로 막을 내린다. 이것은 마치 가톨릭교회에서 몸을 정화하는 의식을 치루어야 하는 것과 같다.

 

타미노 왕자와 파미나 공주. 브레겐츠 무대

제2막. 파미나 공주가 잠시 홀로 있는 때에 ‘밤의 여왕’이 나타나 단검을 주며 기회를 보아 고승 자라스트로를 찔러 죽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부르는 ‘밤의 여왕’의 아리아가 유명한 ‘복수의 아리아’이다. 소프라노 아리아중 가장 어려운 곡이라는 정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영화 ‘아마데우스’에서는 아리아를 부르는 ‘밤의 여왕’의 모습이 점차 모차르트의 장모(Fridolin Weber)의 얼굴로 변해서 잔소리를 퍼붓는 것으로 그려져 있다. 그건 영화일 뿐이다. 이어 타미노 왕자가 시련을 받는 장면이다. 파파게노도 일말의 연관이 있어서 왕자와 함께 시련에 참여한다. 첫 번째는 침묵에 대한 시련이다. 시련을 받으면서 굶을 수는 없으므로 세 소년이 하늘로부터 내려와 먹을 것을 가져다준다. 왕자가 침묵의 시련을 받고 있는 중에 파미나 공주가 들어선다. 하지만 왕자는 아무말도 할수 없다. 공주는 자기를 사랑한다느니 무어니 하던 왕자가 자기를 보고도 본체만체 아무 말도 없자 크게 실망한다. 이때 부르는 파미나의 아리아가 Ach, ich fühl's(아, 사라졌음을 느끼네)이다. 공주는 ‘밤의 여왕’이 준 단검으로 스스로를 찔러 죽으려하지만 세 소년이 가로 막는 바람에 죽지 않는다. 계속하여 타미노는 불과 물의 시련을 극복한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만다 마술피리를 불어 극복하였다.

 

타미노 왕자의 시련을 도와주는 세 소년


한편 새잡이 파파게노도 시험을 당한다. 쭈그러진 늙은 노파가 계속 나타나 파파게노를 성가시게 한다. 노파는 파파게노와 결혼할 사이라고 하면서 달라붙는다. 파파게노는 정말 죽을 지경이어서 진짜 죽을 결심까지 한다. 그 때 세 소년(보이스 소프라노)이 나타나 은종을 울리라고 한다. 파파게노가 은종을 딩동댕 울리지 늙고 쭈그러진 노파는 가면을 벗고 젊고 아름다운 파파게나로 변한다. 파파게노는 예쁜 아내를 얻게 되어 무척 행복하다. 두 사람이 마치 소꿉장난하듯 천진하게 부르는 ‘파, 파, 파, 파파파파...’라는 듀엣은 사랑스러운 곡이다. ‘밤의 여왕’과 세부인은 다시금 고승 자라스트로에게 복수를 꾀하지만 결국은 ‘광명의 힘’으로 실패로 돌아간다. 한편 고승의 하인으로 있는 무어인 모노스타토스는 파미나에게 흑심을 품고 겁탈하려 하지만 고승에게 들켜서 지옥으로 떨어진다. 왕자와 공주는 자라스트로의 축복아래 사랑으로 맺어짐은 당연한 결론이다. ‘마적’에 나오는 아리아중에서 Bei Männern welche Liebe fühlen(사랑을 느끼는 사람들)은 곧 바로 유행이 되었다. 공연 도중 이 노래가 나오면 관객들이 모두 합창을 했다.

 

밤의 여왕. 카타리나 멜리코바. 바덴 오페라 극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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