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여자는 다 그래 - 모차르트

정준극 2007. 11. 24. 06:18

여자는 다 그래

(Cosi fan tutte)

W. A. Mozart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크게 두가지 부류로 나눌수 있다. 한가지는 이탈리아 스타일의 오페라 부파(Opera Buffa)이며 다른 하나는 독일 전래 스타일인 징슈필(Singspiel)이다. 모차르트는 모두 22편의 오페라를 남겼다. 그중에서 오페라 부파 스타일은 돈 조반니, 코지 판 투테, 피가로의 결혼 등이다. 모차르트가 오페라 부파에 치중했던 배경은 간단하다. 당시에는 이탈리아의 오페라가 국제적 기준처럼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세 차례나 이탈리아 여행을 갔었던 것도 이탈리아 취향의 오페라 작곡에 많은 영향을 준 것이었다. 그러나 모차르트는 생애의 하반기(전 생애라고 해야 35년에 불과하지만)에 이탈리아 스타일에서 탈피하여 진정으로 독일적인 오페라에 몰두하였다. ‘마술피리’는 대표적인 징슈필 스타일의 작품이다.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고 있는 모차르트에게 있어서 이탈리아어를 가지고 오페라를 작곡한다는 것은 자존심에 관한 문제였다. 그러므로 독일어 대본에 의한 독일 스타일의 오페라 생산은 독일 오페라의 부흥이라는 면에서도 매우 뜻 깊은 일이었다. 이탈리아 스타일이던 독일 스타일이던 모차르트의 오페라는 음악적으로 한치의 부족함이 없는 완벽한 것이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전세계 오페라 애호가들의 영원한 찬사를 받고 있는 이유는 아름다움과 완벽함을 추구하는 모차르트의 천재성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난 후에 그려진 초상화


‘여자는 다 그래’는 모차르트의 이탈리아 오페라 부파 스타일의 작품 중에서 마지막 작품이다. Cosi fan tutte라는 말은 ‘그래서 모두 똑같이 행동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는 보통 ‘여자는 다 그래’라는 제목으로 번역하여 사용하고 있다. 글자 그대로 본다면 Thus do all(또는 Thus Do They All: Women are like that)이다. 그런데 tutte라는 단어가 여성형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왜 여성만 ‘모두 같다’고 할수 있는가? 오페라에서 보면 남성들도 예외 없이 ‘모두 같다’고 해야 하기 때문이다. 모차르트가 ‘여자는 다 그렇다’라면서 자조적인 공감을 보인 연유는 무엇일까? Cosi fan tutte의 또 다른 제목은 La scuola degli amanti 이다. 영어로 번역하면 The School of Lovers 이다. '연인들을 위한 교육'이라고 번역할수 있다.

 

도라벨라에 아그네스 발차, 휘오르딜리지에 키리 테 카나와

                                 

그러므로 이런 경우에는 그저 ‘코지’라고 부르는 것이 제일 편하고 정확하다. 중요한 것은 오페라의 제목을 어떻게 번역하여 부르느냐가 아니라 그 안에 담겨진 인간 본연의 성격 표현과 주인공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이다. 모차르트의 여성 편력을 알아본다면 혹시 그 연유를 알수도 있을 것이다. ‘여자는 다 그래’는 모차르트의 여성관을 우회적으로 표현한 것이라는 후문이 있기 때문이다. 원래부터 모차르트의 주변에는 이런 저런 여인들이 항상 붐비고 있었다. 천상의 음악을 창조하는 모차르트에게 한가닥 하는 부인네들과 약간 들떠 있는 아가씨들이 천재성에 찬사를 보내기 모여드는 것은 당연한 일이 었다. 모차르트로서 마음만 먹으면 그런 여인들과 친밀하게 되는 것은 문제도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기록에 따르면 모차르트가 진정 사랑했던 여인은 한사람뿐이었다고 한다.

 

가싱턴 오페라 페스티발. 현대적 연출

                                    

모차르트는 고향 잘츠부르크를 떠나 만하임(Manheim)에서 지낸 적이 있다. 모차르트는 그곳에서 베버(Weber)라는 사람의 미망인인 프리돌린 베버(Fridolin Weber)여사의 가족들과 가깝게 지냈다. 프리돌린 베버 여사의 시동생(남편의 동생)의 아들이 나중에 유명한 작곡가가 된 칼 마리아 폰 베버(Carl Maria von Weber)이다. 즉 나중에 모차르트의 부인인 된 콘스탄체의 삼촌(아버지의 이복동생)의 아들이 칼 마리아 폰 베버이다. 그러므로 콘스탄체와 칼 마리아 폰 베버는 사촌간이다. 그건 그렇고 프리돌린 베버 여사에게는 딸이 셋이나 있었다(일설에는 넷). 모차르트는 그중에서 둘째 딸인 알로이지아(Aloysia)를 사랑했다. 모차르트는 아버지에게 편지를 보내어 알로이지아와의 결혼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했다. 파파 모차르트는 반대했다. 두 사람에게는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헤어지는수 밖에....비록 두 사람은 타의에 의해 헤어지게 되었지만 일단은 서로 영원히 잊지 말자는 약속을 했다. 모차르트는 그 약속을 충실히 이행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알로이지아는 그렇지 못했다. 어떤 괜찮은 사람과 결혼했던 것이다. 모차르트로서는 심적 타격이 컸었다. 그는 얼마동안 파리 등등을 전전하다가 비엔나로 가서 정착하게 되었다. 우연의 일치였는지는 몰라도 알로이지아의 어머니인 프리돌린 베버여사도 비엔나에 와서 하숙집을 경영하고 있었다. 그 집에 하숙을 정한 모차르트는 우여곡절 끝에 그집 셋째 딸, 즉 알로이지아의 바로 아래 동생인 콘스탄체(Constance)와 결혼하게 되었다. 결혼식은 유명한 성슈테판성당에서 올렸다. 당시 모차르트는 27세였고 콘스탄체는 18세였다. 아무튼 청년 모차르트는 알로이지아 덕분에 여자의 마음이란 어떤 것이며 일편단심이란 용어는 한낱 허울에 지나지 않는다는 사실을 슬며시 깨달았던 모양이다.

두 자매를 간호원으로, 두 남자를 수병으로, 데스데모나는 전령으로 분장한 무대


‘여자는 다 그래’에는 언니와 동생의 두 자매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이들은 자기들 약혼자에게 변치 않는 마음을 맹세하지만 나중에 다른 열렬 구혼자가 나타나서 죽어라고 프로포즈를 하자 급기야 마음이 바뀌어 그들과 결혼식까지 올리려 한다. 여자라는 존재는 상황에 따라 ‘변덕’을 ‘미덕’으로 생각하는 것일까? 이러한 변덕과 미덕의 논란은 모차르트의 다른 오페라, 즉 ‘피가로의 결혼’과 ‘돈 조반니’에서도 엿볼수 있다. ‘피가로의 결혼’에서는 피가로와 결혼하기로 되어 있는 수잔나가 백작의 집요한 감언과 유혹을 뿌리치지 못하고 한때 백작의 데이트 신청을 승낙한 일이 있다. 아무리 백작부인을 위해서라고 해도 바로 그날밤에 피가로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입장에서 다른 남자와, 그것도 돈 후안이나 다름없는 백작과 밤중에 숲속에서 만나기로 한 것은 ‘변덕’이었다. ‘돈 조반니’에서는 어떠한가? 농부 마세토와 결혼식을 올리기로 한 그날, 신부 체를리나는 돈 조반니의 유혹에 넘어가 자칫하면 이상하게 될뻔했다. 이것도 일종의 ‘변덕’이라고 할수 있다. 물론, 두 경우 모두 나중에 잘못했다고 용서를 구하는 바람에 오해가 풀리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런데 언젠가 모차르트가 자기의 이상여인은 바로 체를리나와 같은 여인이라고 고백한 것은 또 어떻게 설명할 것인가? ‘여자는 다 그래’에서도 여자들의 ‘변덕’은 종잡을수 없이 진행된다. 그러다가는 나중에 원래의 사랑을 찾아 해피엔딩을 장식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지만 아무튼 여인들의 송죽같았던 절개가 아침 안개처럼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아무렴, 그럼 그렇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을 것이다.

 

라 스칼라의 현대적 무대. 유람선을 무대로 삼았다.


‘여자는 다 그래’의 대본은 모차르트와 콤비인 로렌조 다 폰테(Lorenzo da Ponte)가 맡았다. 다 폰테는 모차르트의 오페라 세편의 대본을 썼다. ‘코지’(영어권에서는 보통 Cosi라고만 부른다), ‘피가로의 결혼’, 그리고 ‘돈 조반니’이다. ‘여자는 다 그래’는 합스부르크의 요세프2세의 권유에 의해서 작곡한 것이다. 원래의 대본은 모차르트와 같은 시대에 활동했던 안토니오 살리에리(Antonio Salieri)의 음악에 맞추는 것으로 계획되어 있었다. 그러나 살리에리는 첫 막의 음악만 만들고 더 이상 진행하지를 못했다. 그래서 모차르트에게 부탁하게 되었다. Cosi fan tutte라는 말을 제2막 6장의 피날레에 세명의 남자들(돈 알폰소, 페란도, 줄리엘모)이 부르는 트리오의 가사에 처음 등장한다. 그로부터 오페라의 타이틀이 연유되었다. 실제로 다 폰테는 Cosi fan tutte le belle라는 가사를 일찍이 ‘여자는 다 그래’보다 먼저 제작된 ‘피가로의 결혼’ 제1막 7장에서 사용한바 있다.

 

심심하던 차에 새로운 애인들이 생겼다면서 좋아하는 도라벨라(수잔나 필립스)와 휘오르딜리지(이사벨 레오나드). 메트로폴리탄.

                     

‘여자는 다 그래’의 초연은 모차르트가 세상을 떠나기 거의 1년전인 1790년 1월 26일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Burgtheater: 궁정극장)에서 있었다. 초연은 대성공이었다. 오페라의 내용이 남존여비와 같은 인상을 주는 것이지만 비엔나 사람들은 개의치 않았다. 당시 비엔나 사회는 제국의 수도로서 어느정도 탐미적이고도 향락적인 분위기에 넘쳐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대인기였다. 그러나 사실 19세기와 20세기 초반에 여인의 정절을 폄하하는 그런 스토리는 온당치 못했기 때문에 (특히 프랑스 혁명이후 평등사상이 팽배하던 시기에) 공연에는 어느 정도 위험부담이 있었다. 비엔나에서의 공연은 초연이후 몇차례만 계속되었을뿐 오래가지 못했다. 당시 모차르트를 이해하고 총해하던 요세프2세가 갑자기 세상을 떠났기 때문에 코미디 오페라는 전국민이 애도하는 분위기상 민망스러웠기 때문이었다. 그러다가 2차대전후 ‘여자는 다 그래’는 놀랄만한 인기를 차지하게 되었다. ‘오페라 아메리카’가 조사한바에 의하면 ‘여자는 다 그래’는 20세기에 미국에서 가장 인기 있는 오페라 20편중 15위를 차지하였다. 그런데 실상 모차르트와 다 폰테가 택한 ‘약혼자 교환’이라는 테마의 연혁은 13세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보카치오(Boccaccio)가 그의 데카메론(Decameron)에서 그같은 테마를 사용하였으며 그후에는 셰익스피어가 심벌린(Cymberline)에서 같은 내용의 주제를 사용했다. 셰익스피어의 ‘말괄량이 길들이기’(The Taming of the Shrew)에서도 비슷한 테마를 발견할수 있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오비드(Ovid)가 쓴 그리스 시대의 프로크리스(Procris) 신화에서도 ‘약혼자 교환’이라는 테마가 등장한다.

 

셰익스피어의 심버린(Cymbeline). 남편 포스투무스가 아내인 심버린왕의 공주 이모젠의 정절을 두고 친구 이아키모(리틀 이아고)와 내기를 하는 내용.


잠시 비엔나의 부르크테아터에 대하여 알아보도록 한다. 모차르트의 ‘여자는 다 그래’가 초연된 부르크테아터(궁정극장)는 오늘날 호프부르크 정문(미하엘러토르) 앞 광장(미하엘러플라츠) 한쪽에 있었다. 합스부르크의 호프부르크(궁전)와 이웃하며 자리 잡고 있었다. 부르크테아터는 1741년 마리아 테레자(Maria Theresa)여제의 지시에 의해 건설되었다. 마리아 테레자가 세상을 떠나자 합스부르크제국의 명실상부한 황제에 오른 요세프2세는 이 극장을 ‘독일국립극장’(German National Theater)라고 불렀다. 그리고 여러 편의 오페라를 공연토록 했다. 모차르트의 오페라중 ‘후궁에서의 도주’, ‘피가로의 결혼’, ‘여자는 다 그래’의 3편이 부르크테아터에서 초연되었다. 그로부터 몇십년후 황제가 된 프란츠 요셉(Franz Josef)은 부르크테아터보다 규모가 큰 새로운 부르크테아터를 건설키로 했다. 그리하여 1888년 링슈트라쎄(Ringstrasse) 현재의 시청(라트하우스) 건너편에 웅장한 부르크테아터를 건설했다. 그러므로 현재의 부르크테아터와 모차르트의 오페라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새로운 부르크테아터는 당대의 유명한 건축가인 고트프리트 젬페르(Gottfried Semper)와 카를 프리드리히 폰 하우제나우어(Karl Friedrich von Hausenauer)가 합작하여 완성했다. 젬페르는 드레스덴 오페라극장등 수많은 건축물을 설계한 인물이다.

 

1888년 새로운 건물로 옮겨가기 전의 비엔나 부르크테아터 모습 (오른쪽의 작은 건물)

                                           

오페라 부파라는 것이 대개 그렇듯이 ‘여자는 다 그래’도 규모는 크지 않지만 아기자기한 재미가 솔솔 나는 그런 작품이다. 수없이 펼쳐지는 아리아, 듀엣, 트리오, 쿼테트, 여기에 퀸테트(5중창)까지...한결같이 매력적이어서 가만히 있어도 듣는 사람의 가슴을 아름다운 장미 빛으로 물들여 준다. 1막 끝에 나오는 휘오르딜리지의 아리아 Come scoglio(바위같이 단단한)은 콜로라투라 음역이 낼수 있는 가장 화려한 곡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비단 이 아리아뿐만 아니라 모든 음악이 아름답고 재미있다. ‘과연!’이라는 찬사가 절로 나오게 하는 음악이다. 특히 서곡은 참으로 감칠맛이 나는 것이다. 남자가 여자가 서로 숨바꼭질을 하듯 경쾌하고 아기자기하다. 서곡에서는 네가지 악기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면서 대화를 나누는 것같은 대목이 있다. 오보에는 페란도를, 바쑨은 구글리엘모를, 클라리네트는 휘오르딜리지를, 플루트는 도라벨라를 표현한다. 서곡의 마지막 파트는 모차르트의 오페라가 언제나 그렇듯 대합창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러한 코나(Coda)를 통하여 모차르트가 전하고자 했던 메시지는 화해와 용서와 사랑이었다.

 

서로 자기의 약혼녀는 변심이라는 단어가 무슨 뜻인지도 모른다고 주장하는 페란도와 구글리엘모


전2막. 무대는 나폴리. 시기는 18세기. 바다가 시원하게 보이는 별장이다. 도라벨라(Dorabella: Sop: lirico-spinto)는 언니이고 휘오르딜리지(Fiordiligi: Sop: dramatico 또는 MS)는 동생이다. 둘다 이름만큼이나 매력적이고 아름다운 아가씨들이다. 이들과 약혼한 사이인 페란도(Ferrando: Ten: lirico)와 굴리엘모(Guglielmo: Bar: 또는 Bass Bar)는 씩씩한 미남의 청년 장교들이다. 막이 오르면 두 청년장교가 이들의 오랜 친구인 철학자 돈 알폰소(Don Alfonso: Bass)와 한담을 나누다가 우연히 여자의 정절에 대한 논란을 벌인다. 노련한 독신 철학자 돈 알폰소는 ‘여자란 그저 하나같이 변덕스러우며 특히 사랑에 있어서는 성실함이 하나도 없는 존재’라고 장담한다. 그는 ‘여자의 정절은 아라비아 사막의 불사조와 같은 것! 있다고는 하지만 아무도 본적이 없다’라며 열을 올린다. 두 청년장교는 ‘무슨 헛소리를 하느냐!’면서 자기들의 약혼녀만큼은 세상이 알아주는 정절의 모델이기 때문에 어느 경우에도 변심이란 있을수 없다고 주장한다. 돈 알폰소는 ‘여자들의 기억력이란 생각보다 짧다네!’라면서 도라벨라와 휘오르딜리지의 마음이 현재는 철석같지만 상황에 따라 변할수 있다는데에 금화 1백개의 내기를 건다. 두 청년장교도 이 내기에 흔쾌히 동참한다. 돈 알폰소는 페란도와 구글리엘모에게 이 여자들을 시험하기 위한 계획을 세울것이니 아무런 잔말 말고 협조하라고 다짐한다.

 

두 자매는 데스데모나의 설득에 과연 넘어가고 만다.


무대는 바뀌어 두 여자가 거처하는 저택의 정원. 능청스럽고 노련한 철학자 돈 알폰소가 나타나 두 청년장교가 갑작스런 명을 받도 전쟁터로 나가게 되었다고 전한다. 놀라움과 함께 슬퍼하는 두 여자...곧이어 두 청년장교가 수심이 가득찬 얼굴로 등장하여 두 여자에게 비록 전쟁터로 나가야 하기 때문에 멀리 떨어져 있게 되지만 마음만은 절대 변하지 말자고 하며 애간장이 끊어 질듯한 이별의 정을 나눈다. 여자들은 눈물을 떨구며 ‘천년만년 기다리고 있을 것이오니 부디 몸성히 다녀오사이다!’라고 말한다. 돈 알폰소는 속으로 잔뜩 웃으면서 ‘정말 헛소리들 하고 있네! 세상엔 아무리해도 어쩔수 없는 일이 세 가지가 있다네! 바닷물을 두레박으로 퍼 올리는 것, 사막에 곡식을 심는 것, 그물로 바람을 잡는 것이지! 한 가지가 더 있다면 그건 여자의 말을 믿는 것이라네!’라면서 이제부터가 시작이라고 말한다. 두 자매와 여기에 돈 알폰소까지 시치미를 떼고 페란도와 굴리엘모가 잘 다녀오기만을 바란다면서 부르는 트리오가 유명한 'Soave sia il vento(바람은 부드럽게)이다.

 

약혼자들이 멀리 전쟁터로 떠난다고 하자 이별을 슬퍼하는 도라벨라와 휘오르딜리지. 눈물 없이는 도저히 볼수 없는 장면.


두 자매에게는 데스피나(Despina: Sop: ligera)라고 하는 하녀가 있다. 똑똑하고 눈치 빠르지만 장난기가 있고 더구나 ‘누군 팔자 좋아서 잘 먹고 잘 입으면서 사랑 타령이나 하고 있고 누군 온종일 뼈 빠지게 일이나 해야 하나?’라는 생각을 갖고 있는 그런 여자이다. 데스피나 역시 여자의 정절은 별로 믿을 것이 못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부자 귀족 여인들이 이 남자, 저 남자와 연애에 탐닉하고 있는 모습을 수없이 보아 왔기 때문이다. 돈 알폰소는 약간의 돈을 데스피나에게 쥐어 주고 그를 자기편 계획으로 끌어 들인다. 데스피나로서는 용돈도 생기고 이번 기회에 주인 아가씨들을 한번 골탕 먹일수 있으므로 돈 알폰소의 계획에 오히려 대찬성이다. 데스피나에게 부여된 임무는 청년장교들이 멀리 떠난 사이에 두 아가씨에게 새로운 파트너를 주선해 주는 것이다. 어차피 기약 없이 떠난 남자들! 언제 돌아올지 모르니 그 동안 소일할 파트너가 있어야 하지 않느냐는 필요성을 일깨워 주는 역할이다.

 

데스피나가 두 자매에게 '놀면 뭐 합니까? 연애라도 해서 심심한 시간을 때워야죠'라고 설득한다.

                                                                                

두 청년장교는 떠나고 두 여자들이 아직도 약혼자들과의 이별을 슬퍼하고 있을 때 느닷없이 우 사람의 멋쟁이 알바니아 귀족이 나타난다. 알바니아 귀족 청년들은 자기들은 오래전부터 멀리서 아가씨들을 마음속 깊이 사모하고 있던 사람들인데 이제 더는 참지 못하겠으니 자기들의 진정한 사랑을 제발 받아 달라고 하면서 무릎을 꿇고 애걸복걸한다. 이 두 젊은이들은 실은 돈 알폰소의 계략에 따라 알바니아 귀족으로 변장한 페란도와 구글리엘모이다. 갑자기 웬 알바니아 귀족이냐고 하겠지만 나폴리에서 바다만 건너면 알바니아이므로 오래전부터 나폴리에는 알바니아 사람들의 왕래가 많았음을 생각하면 이상한 일도 아니다. 그런데 여기에 돈 알폰소의 진짜 계략이 숨어 있다. 두 청년장교에게 파트너를 바꾸어 사랑을 고백하게 한 것이다. 즉, 원래는 도라벨라-페란도, 휘오르딜리지-굴리엘모가 파트너이지만 서로 상대방을 바꾸어서 페란도가 휘오르딜리지에게 구혼하고 굴리엘모가 도라벨라에게 사랑을 고백토록 한 것이다. 두 아가씨는 마음이 허전하던 차에 잘 생긴 알바니아 귀족들이 나타나서 죽기 아니면 살기로 사랑을 고백하자 짐짓 놀라면서 은근히 마음이 동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장 무슨 내색을 보일수는 없는 노릇이므로 답변은 정석대로였다. ‘아스셔요! 우리에겐 이미 정혼한 남정네들이 있답니다. 제발 이러지 마셔요...’ 뭐 그런 대답이었다.

 

새로운 연인의 등장.


알바니아 귀족들로 변장한 두 청년장교는 두 여자들과의 1차 미팅을 마치고 나서 ‘그것 보시오! 아, 이 여자들이 어떤 여자들인데 마음이 변해!’라면서 내심 내기에 이겼다고 생각한다. 참고로 두 알바니아 귀족의 이름은 셈프로니오(Sepmprinio)와 티치오(Tizio)라고 했다. 이 얘기를 들은 돈 알폰소는 ‘아직 모르니 좀 기다려 보시오!’라면서 계약을 계속 진행한다. 잠시후 두 여자들이 다시 나타나자 알바니아 귀족들은 얼른 무슨 약을 입에 털어 넣는 것과 동시에 바닥에 쓰러지면서 죽는 시늉을 한다. 그렇게도 애원했건만 두 여자가 사랑을 받아 줄 생각을 하지 않으므로 ‘에라, 그대 없는 세상, 살아서 무얼 하나!’라는 심정에서 자살하는 척 했던 것이다. 두 여자는 너무나 놀라서 ‘아니, 이거 우리가 이 사람들에게 너무 심하게 구는것 아닌가? 죽긴 왜 죽는다고 그러시나? 죽은 사람 소원도 풀어 준다는데 산 사람 소원을 들어주지 못할 것이 무엇 있는가?’라면서 자못 죄책감을 느끼는 모습니다. 때를 맞추어 의사로 변장한 데스피나가 등장하여 각본대로 두 알바니아 귀족들을 겨우 살려내는 것처럼 연극을 한다. 가기스로 깨어난 두 알바니나 귀족들은 이미 죽은줄 알았는데 다시 살아났다고 하면서 ‘이런 기적 같은 일에 어찌 보상이 없을소냐? 원컨대 아름다운 여인들이시여! 부디 한번의 키스면 만족하겠나이다!’라면서 능청을 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 여자들은 몸을 사리면서 겉으로는 계속 일편단심을 주장한다.

 

돈 알폰소의 계략대로 두 자매는 새로운 애인들을 갖게 된다. 아이구.


제2막. 하녀 데스피나는 두 여자에게 ‘자고로 여자란 남자로부터 사랑을 받도록 만들어졌답니다!’라고 설득하면서 도라벨라와 휘오르딜리지의 마음을 살살 흔들어 놓기 시작한다. 집요한 데스피나의 설득, 그보다도 죽음도 불사하는 알바니아 귀족들의 열렬한 하소연 때문에 급기야 두 여자의 마음은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리하여 여차여차하여 결국 구 알바니아 귀족과 두 여자는 서로 사랑을 맹세하는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당초 돈 알폰소의 지시대로 파트너를 바꾼 상태에서 사랑을 굳게 맹세하게 되었으니 사태는 그야말로 점입가경이다. 사태가 이렇게 되자 두 청년장교는 ‘돈 알폰소님의 말씀이 천만번 옳도다! 여자는 다 그래! 변심하지 않으면 여자가 아니지!’라는 씁쓸한 자문자답을 하지 않을수 없었다.

 

두 자매에게 알바니아 귀족 청년들이 미치도록 사모한다면서 나타난다. 모두 돈 알폰소와 데스피나의 계략이다.


제2막의 마지막은 결혼식 장면. 두 청년장교는 각본에 따라 두 여자들에게 결혼해 달라고 애걸복걸하여 겨우 승낙을 받았는데 정작 결혼식을 올리려고 하니 통 무어가 무언지 갈피를 잡을수 없어서 걱정이 태산 같다. 그렇다고 해서 당장 사라진다면 돈 알폰소와의 내기에 지는 것이므로 그럴수도 없는 입장이어서 결혼식장에 나오기는 나왔지만 심사가 편할리 없다. 알바니아 귀족으로 변장한 두 청년장교는 ‘아, 정말 어쩌다 이렇게까지 말려들게 되었는지 모르겠네! 우리 스스로가 한심해 죽을 지경이로다! 하지만 기왕 엎질러진 물인데 어찌할 것인가!’라며 서로 약혼자를 바꾸어 결혼식을 올릴 작정을 한다. 공증인이 나타나고! 실은 데스피나가 공증인으로 변장했지만 두 청년장교들고 그런 내막을 까마득히 모르고 있다. 이제 공증인이 준비한 결혼 서약서에 서명만 하면 끝이다. 두 알바니아 귀족들이 막 서명을 하려는 순간, 돈 알폰소가 뛰어 들어오며 전쟁터에 나갔던 두 청년장교들이 막 돌아 온다는 소식을 전한다. 두 자매는 정신이 혼비백산할 정도로 놀라지 않을수 없다. 두 여자는 신랑들인 두 알바니아 귀족들에게 얼른 옆방으로 숨으라고 한다. 천만다행으로 결혼 서약서에 서명하지 않게된 두 청년장교는 다른 방으로 가서 수염을 떼어버리고 본래의 복장으로 갈아 입는다. 그리고는 전쟁터에서 방금 돌아온듯 천역덕스럽게 다시 등장한다. 하지만 두 청년장교들로서도 자기의 약혼녀들을 만나는 것이 여간 서먹서먹한 것이 아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약혼녀를 바꾸어 결혼 할뻔 했기 때문이다. 페란도는 탁자위에 있는 결혼 계약서를 우연히 발견한듯 집어 들고 ‘이게 도대체 무슨 영문이냐?’면서 이제야 기가 살아난듯 소리친다. 두 청년장교들은 그렇게도 철석같이 믿었던 두 약혼녀들이 단 하루도 참지 못하고 자기들을 배신했다고 하면서 비난을 퍼붓는다. 두 여자들은 처음에는 ‘그거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냥 종이입니다. 아무 일도 없었어요!’라며 핑계를 대지만 안절부절 및 후회막급하여 쥐구멍이라고 있으면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다. 결국 두 여자들은 자기들의 성실치 못했던 것 같으니 제발 고정하라고 하면서 ‘우리의 마음은 오직 그대들뿐!’이라고 합창이나 하듯 말한다. 돈 알폰소가 내기에 이긴 것이다.

 

이번에는 데스피나(레이첼 윌리스 소렌센)가 공증인으로 분장하고 등장. 두 자매(제니퍼 아일머, 캐스린 림히우스)는 '이거 정말 이래도 되는지 모르겠다'면서 결혼계약서에 서명하는 것을 주저한다.

                                  
그러나 여기에서 돈 알폰소의 계략이 완전 마감된 것은 아니다. 돈 알폰소는 모두에게 저쪽 방에 이 여자들이 마음을 주었던 증거가 있으니 모두 함께 찾아보자고 제안한다. 두 여자들로서는 참으로 기절초풍할 일이다. 옆방에 숨어 있는 알바니아 사람들이 발견되면 무슨 변명을 할수 있단 말인가? 두 여자들은 차마 옆방으로 따라 들어가지 못하고 ‘아이고 이젠 죽었구나!’라는 생각뿐이다. 돈 알폰소와 함께 옆방으로 갔던 페란도와 굴리엘모는 다시금 슬쩍 알바니아 귀족의 모습으로 변장하여 나타난다. 모든 오해가 풀렸다. 사실 오해일 것도 없지만! 두 여자들은 다기들의 원래 사랑을 되찾은데 대하여 행복해 한다. 해피엔딩이다.

 

피날레의 앙상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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