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운명의 힘 - 베르디

정준극 2007. 11. 27. 13:57

운명의 힘

(La forza del destino)

G. Verdi


사람의 운명은 절대자인 신에 의하여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는 것인가? 아니면 자기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것이기 때문에 바꿀수도 있다는 것인가? 종교적인 입장에서 보면 사람의 운명은 이미 절대신(하나님)에 의해 예정되어 있다는 것이 지배적이다. 기독교의 경우, 하나님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낸 것도 이미 오래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일이며 그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고 사흘만에 부활한 것도 모두 예정된 사항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임을 당하기 전에 ‘아버지여, 할수만 있다면 이 쓴 잔을 물리쳐 주옵소서!’라고 하나님께 간구했지만 ‘이게 모두 예정된 일이므로 어쩔수 없다’는 응답이었다는 것이다. 신앙심이 돈독하기로 유명한 베르디는 인간의 생사화복에 대한 모든 것을 전지전능하신 하나님이 모두 오래전부터 예정하고 있었던 사항임을 믿고 있었던 것같다. 베르디는 ‘운명이란 것은 창조주 하나님에 의해 정해지는 것이기 때문에 피조물인 인간들로서는 겸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으며  하나님께 온전히 모든 것을 맡기고 의존해야 한다’는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오페라 ‘운명의 힘’은 이러한 베르디의 종교철학과 신앙심이 점철되어 있는 불후의 걸작이다.


운명의 힘. 알바로와 레오노라(류바 웰리치)


'리골레토', '일 트로바토레'에 이어 '가면무도회'로 한껏 성공을 거둔 베르디는 이제 그만하면 되었으니 더 이상 오페라를 작곡하지 않겠다고 마음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그가 46세 때인 1859년 ‘나는 이제 평범한 시골 사람으로 돌아가련다. 조용한 가운데 경건한 생활을 위해 노력하련다. 나는 이미 음악의 여신에게 작별을 고했노라. 이제부터는 펜을 들어 오선지에 음표를 그리는 유혹을 뿌리치겠노라’고 밝힌바 있다. 그러나 세상이 그를 가만히 놓아두지 않았다. 2년후 베르디는 작곡의 펜을 다시 들지 않을수 없게 되었다. 여기에는 그의 두 번째 부인인 주세피나 스트레포니(일명 페피나: Sop)의 은근한 역할이 컸다. 당시 제정러시아의 상트 페테르부르크(St Peterburg) 제국극장은 오페라의 황제 베르디에게 새로운 작품을 의뢰하기로 작정하고 일단의 사절단을 이탈리아로 파견했다. 물론 이들은 베르디가 펜을 놓고 고향 마을 론콜레(Roncole)로 돌아가 여생을 조용하게 지내겠다는 의중을 알지 못했다. 베르디를 만난 러시아 사절단은 새로운 오페라 작곡을 간청했다. 베르디는 모처럼 먼길을 마다하지 않고 찾아온 이들을 차마 박정하게 대할수 없었다. 더구나 사절단중에는 베르디의 부인 주세피나와 친분이 있는 사람도 있었다. 주세피나는 남편 베르디에게 그들의 청탁을 들어주라고 매달렸다. 베르디는 러시아 사절단에게 ‘정 그러시다니 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우선은 바쁘실 터인데 어서들 돌아가 보시지요!’라고 대답해 주었다. 러시아 사절단들은 베르디가 자기들의 청탁을 승낙한 것으로 알고 무척 기뻐하였다.

 

바스티유 공연. 레오노라 역에 비올레타 우르마나

 

베르디는 처음에 빅토르 위고(Victor Hugo)의 루이 블라(Ruy Blas)를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대본을 맡을 사람을 비롯하여 주위의 반응은 부정적이었다. 작품의 내용이 당시의 사회 정황으로 보아 너무 진보적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베르디로서는 러시아의 청탁을 완전히 받아들이기도 어정쩡하던 차에 잘되었다 싶었다. 적당한 스토리를 찾지 못하여 곤란하다는 말을 할수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러한 낌새를 눈치 챈 러시아 사절단의 간청은 집요하였다. 베르디에게 백지 수표를 전해 주면서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들어 주겠다고 했다. 베르디로서는 다른 주제를 찾아보아야 했다. 마침 당시에 베르디는 스페인에서 화제가 되고 있는 어떤 연극에 무척 관심을 두고 있었다. 앙헬 데 사아베드라(Angel de Saavedra)라고 하는 귀족이 1835년에 대본을 쓴 Don Alvaro(돈 알바로), 또는 La Fuerza de Sino(운명의 힘)이라는 제목의 연극이었다. 지체 높은 리바스의 공작(Duke of Rivas)인 데 사아베드라는 프리드리히 쉴러(Friedrich Schiller)의 Wallensteins Lager(봘렌타인 병영)라는 산문시를 보고 감동을 받아 그 산문시의 내용을 참고로하여 연극의 대본을 썼다. 베르디가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이 연극이 빅토르 위고 스타일의 드라마틱한 면모를 지녔을 뿐만 아니라 프랑스에서 불붙었던 자유주의적 진보사상이 곁들여 있었기 때문이었다. 베르디가 선호했던 빅토르 위고의 작품은 대체로 그 종말이 논리적으로 볼때 인간의 가치관에 대하여 형평을 지니는 것이었다. 다시 말하여 운명이란 것은 피할수 없는 것이고 신만이 인간의 운명을 좌우할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 점이 베르디의 마음에 와 닿았다. 베르디는 ‘돈 알바로’라는 연극을 바탕으로 하여 오페라를 작곡키로 결심했다. 제목은 ‘운명의 힘’(La forza del destino) 이라고 고쳤다. 이탈리아어 대본은 베르디와 오래동안 함께 일해온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Francesco Maria Fiave: 1810-1876)가 맡았다.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는 베르디를 위해서 '리골레토', '시몬 보카네그라', '스티펠리오', '맥베스', '두 사람의 포스카리' 등의 오페라 대본을 제공한바 있다. '운명의 힘'의 대본은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가 베르디를 위해 제공한 마지막 대본이었다.


대본을 쓴 프란체스코 마리아 피아베


베르디의 23번째 오페라인 ‘운명의 힘’은 1862년 11월 10일 상트 페테르부르크의 볼쇼이 카메니(Bolshoi Kamenny)극장에서 역사적인 초연을 가졌다. 평론가들은 ‘운명의 힘’이야말로 베르디의 작품중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완벽한 작품이라고 입을 모았다. 드라마틱한 인스피레이션에 있어서, 멜로디의 창조에 있어서, 그리고 음악적인 전개와 오케스트레이션에 있어서 이보다 더 훌륭한 작품은 전에도 없었고 앞으로도 없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언제나 완벽에 완벽을 기하는 베르다는 러시아의 초연 스코어를 수정하여 이듬해인 1863년 로마에서 이탈리아 초연을 가졌다. ‘돈 알바로’라는 타이틀로였다. 같은 해에 마드리드에서도 공연되었다. 원작 극본을 쓴 리바스공작도 마드리드 공연에 직접 참석하였다.

 

'운명의 힘'이 초연된 제정 러시아 생페테르부르크의 볼쇼이 카메니극장.

 

이어서 ‘돈 알바로’는 1864년에 비엔나와 뉴욕에서, 다음해인 1866년에는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그리고 1867년에는 런던에서 공연되었다. 러시아에서의 초연은 극찬에 가까운 것이었지만 비엔나, 뉴욕, 마드리드, 런던에서의 공연은 호평과 혹평의 엇갈림이었다. 많은 사람들은 ‘돈 알바로’에 담겨 있는 위대한 사상과 탁월한 음악에 매료했다. 그러나 혹평을 던지 사람들은 ‘지루하다’ ‘스토리가 진부하다’ ‘라 트라비아타'나 '리골레토'처럼 음악이 주는 즐거움이 부족하다’는 등의 구실을 내세웠다. 사실 ‘지루하다’는 말은 맞는지도 모른다. 실제 공연 시간이 3시간이나 되기 때문이다. 중간에 휴식시간까지 계산하면 거의 4시간이나 걸리는 공연이다. 베르디는 이같은 논평들을 겸손하게 받아 들였다. 그는 1869년 2월 27일로 예정되어 있는 밀라노 라 스칼라에서의 공연을 위해 또 다시 스코어의 상당부분을 수정하여 공연 시간을 단축토록 했으며 대본도 동료 안토니오 기스란초니(Antonio Ghislanzoni)에게 부탁하여 여러 부분을 삭제하거나 추가하였다. 안토니오 기슬란초니는 베르디를 위해 이미 '아이다' 등의 대본을 쓴 일이 있다. 그리고 타이틀도 원래의 제목대로 ‘운명의 힘’으로 바꾸었다. 밀라노에서의 공연은 대성공이었다. 베르디라는 이름만 나와도 존경심 때문에 엄숙해지고 눈시울을 붉히는 밀라노 사람들에게 있어서 ‘운명의 힘’은 또 하나의 오페라적 금자탑이었다. 이로부터 오늘날 세계 각지의 무대에 올려지는 ‘운명의 힘’은 밀라노 수정본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바르셀로나 리세우극장 무대


베르디 자신은 ‘운명의 힘’을 어떻게 생각했을까? 만족하지 못했다. 특히 주인공들의 주검이 무대에 널려 있는 마지막 장면의 처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생페테르부르크 공연 이후 고민을 거듭하다가 끝내는 개작을 결심하게 된 것이고 그래서 밀라노 버전이 나오게 된 것이다. 베르디는 마지막 장면을 종교적으로 끝나게 손질했다. 즉 사랑하는 레오노라가 죽은 후 번민에 빠진 주인공 돈 알바로(Don Alvaro: Ten)를 신부가 위로함으로서 신앙에 귀의토록 한 것이다. 생페테르부르크의 초연에서는 돈 알바로가 마치 바그너의 ‘방랑하는 화란인’에서 여주인공 젠타(Senta)처럼 운명에 항거하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희생하는 모습과 같이 보이도록 했다. 이제 스토리로 들어가보자. 과연 어떤 피치 못할 운명이길래 이토록 인간의 나약함을 들어내야 했고 절대자 신에게 자신의 운명을 의존해야함 했었는가?


돈 알바로 역의 호세 카레라스


시기는 18세기. 장소는 스페인의 세빌라 부근. 나중에는 이탈리아로 무대로 옮겨지기도 한다. 칼라트라바(Calatrava: Bass) 후작은 이 지방의 영주로서 위엄과 권세를 지닌 인물이다. 그에게는 아들 카를로(Don Carlo: Bar)와 딸 레오노라(Leonora: Sop)가 있다. 카를로는 가문의 명예와 신분을 무엇보다도 중시하는 전형적인 귀족이다. 레오노라는 그 아름다움과 고귀함으로 사람들로부터 한없는 사랑과 흠모를 받고 있는 여인이다. 한편 여기에 알바로(Don Albaro: Ten)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젊은 귀족인 알바로(Don Alvaro)는 남미에서 왔다고 한다. 아마 페루에서 왔다는 얘기가 있으며 인디안의 피가 흐르고 있는 사람이라는 얘기도 있다. 그런 알바로는 레오노라를 우연히 만나 숙명적인 사랑을 나누게 된다. 레오노라 역시 알바로를 만난 순간, 자기의 운명은 바로 알바로에게 달려 있다는 확신을 갖게 된다. 하지만 어떤 비극적인 사건으로 인해 알바로와 카를로는 숙명적인 원수가 된다. 이 점에 있어서는 일 트로바토레(Il Trovatore)와 흡사한 시작이다.


레오노라 역의 마리아 칼라스


‘운명의 힘’은 전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러나 다른 오페라와는 달리 서막이 별도로 마련되어 있다. 서막이 시작되기 전에 비교적 짧은 서곡이 나온다. 서곡의 테마는 근자에 프랑스의 명화 Jean de Florette(장 드 플로레트: 우리나라에서는 ‘마농의 샘’이라고 함)의 주제음악으로 나와서 감동을 준 음악이다. 제1막은 칼라트라바 후작의 저택이 무대이다. 막이 오르면 후작이 딸 레오노라에게 밤이 늦었으니 잘 자라고 하면서 애정 어린 얘기를 건넨다. 후작에게 있어서 레오노라는 한없이 사랑스럽고 소중하기 이를데 없는 딸이다. 그런데 후작은 딸 레오노라가 알바로라는 근본도 확실치 않은 귀족에게 호감을 갖고 있는 것을 알고는 알바로를 은근히 혐오하고 있다. 하지만 레오노라는 아버지 후작의 마음과는 아랑곳없이 이날 밤 사랑하는 알바로와 함께 집과 고향 땅을 버리고 멀리 떠날 생각에 들떠 있다. 이때 부르는 레오노라의 아리아가 Me pellegrina ed orfane(어릴때 집을 멀리 떠나 홀로 고아처럼)이다. 그러면서도 아버지 몰래 가출한다는 것이 너무나 죄스러워서 차마 얘기도 꺼내지 못하고 있었다. 레오노라는 아버지 후작에게 알바로와의 사랑을 허락해 달라고 간청해 볼 생각도 했다. 그러나 아버지가 알바로의 신분이 확실치 않은 상태에서 딸과의 결혼을 허락할리 만무할 것이라고 생각하여 말을 꺼내지도 못하고 있었다. 결국 두 사람은 그들의 사랑을 운명으로 받아들이고 아무도 몰래 먼 곳으로 떠나기로 약속했던 것이다. 잠시후 알바로가 바야흐로 레오노라와 함께 떠나기 위해 후작의 집으로 숨어 들어온다. 한편, 레오노라에게 잘 자라고 말하고 레오노라의 방을 떠났던 아버지 후작은 조용한 한밤중에 딸의 방에서 무슨 수상한 소리가 나기에 칼을 집어 들고 급히 딸의 방으로 들어온다. 후작은 조금전 레오노라를 만났을 때 딸의 안색이 아무래도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터였다.

 

라타플란의 장면


갑자기 누가 칼을 들고 들어서는 바람에 놀란 알바로는 반사적으로 피스톨을 꺼내 든다. 그러다가 그 사람이 다름 아닌 레오노라의 아버지인 것을 알자 알바로는 피스톨을 한쪽으로 던져 놓고 두 사람의 사랑에 대한 이해를 구하려한다. 하지만 운명의 장난이던가! 피스톨을 내려놓는 바람에 재어 놓은 총알이 발사되어 레오노라의 아버지를 쓰러트린다. 후작은 알바로가 자기를 죽이기 위해 피스톨을 쏜 줄 알고 쓰러지면서 레오노라에게 저주의 말을 남긴다. 너무나 놀란 레오노라! 사랑하는 사람의 총탄에 맞아 피를 흘리며 쓰러져 있는 아버지! 레오노라의 가슴은 찢어질것만 같다. 사랑을 위해 알바로를 따라야 할 것인가? 그렇지 않으면 자식으로서 아버지를 죽게 만든 사람을 원수로 삼아야 할 것인가? 레오노라는 순간 혼란에 빠졌으나 잠시후 결국 운명적인 사랑을 피할수 없다고 생각하여 알바로를 따라 어둠속으로 사라진다. 이것이 서막의 내용이다.    


도피하기 위해 남장한 레오노라(에바 마튼)

 

 제1막의 무대는 어느 시골의 주막집이다. 알바로와 레오노라는 카를로 백작이 보낸 병사들의 추격을 피해 도피중이다. 알바로와 레오노라는 함께 있으면 추격을 피하기 어려우므로 서로 헤어지기로 결정한다. 이후로 두 사람은 서로가 죽은 것으로 믿는다. 이제 알바로와 헤어진 레오노라는 세상을 등지고 숨어서 지낼 도피처를 찾아야 했다. 레오노라는 아름다운 모습을 가리고 남자로 변장한 후 수도원을 찾아 나선다. 한편, 카를로는 살라만카의 대학생으로 가장하고 이름도 페레다(Pereda)라는 가명을 쓰며 알바로와 레오노라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신분을 숨기고 두 사람을 찾아나선다. 주막집에서 농부들과 목동들에게 들려주는 카를로의 아리아가 Son Pereda son ricco d'onore(나는 페레다. 명예로운 가문의 후손이다)이다. 저녁이 되자 집시들이 나타나서 흥겨운 시간을 갖는다. 그 중에서 젊은 집시 여인인 프레지오실라(Preziosilla)는 대학생으로 보이는 청년(실은 카를로)을 보고 손금을 보아주겠다고 말한다. 집시 여인은 카를로가 이탈리아의 자유를 위해 전쟁에 나갈 운명이라고 말한다. 카를로는 그렇게 하겠다고 동의한다. 프레지오실라가 부르는 노래가 Al suon del tamburo(작은 북이 울릴때)라는 곡이다. 이러한 때에 레오노라는 우연히 이곳 주막집에 들렸다가 오빠 카를로를 목격한다. 반가운 오빠! 아버지는 어찌 되었을까? 그러나 레오노라는 오빠에게 모습을 보일수는 없었다. 주막집에서 카를로(페레다)는 마을 사람들에게 후작의 죽음을 알리고 자기는 후작을 위해 일하는 사람으로서 살인자인 알바로를 찾아 다니고 있다고 말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비로소 알게된 레오노라는 슬픔에 울음을 삼키지만 어찌할 도리가 없다.

 

주막에서의 장면. 시장과 프레치오실라

 

모든 것이 허망하다고 생각한 레오노라는 어느 산속 깊숙한 곳에 있는 수도원으로 들어가 영원히 몸을 삼기기로 한다. 수도원에서 부르는 아리아 La Vergine degli angeli(천사이신 우리 성모님)은 고통받는 한 여인이 성모 마리아의 자비를 구하는 아름다운 기도곡이다. 은은한 올갠 반주와 함께 수도승들이 성가합창이 들려온다. 세속을 떠난 천상의 음악이다. 이 음악은 베르디의 모든 오페라 아리아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라는 평을 받고 있는 것이다. 그 가사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다.

 

La vergine degli angeli (천사이신 성모님께서)

Mi copra del suo manto (만토로 우리를 감싸주시고)

E me protegga vigile (주님의 거룩하신 천사께서는)

Di dio l'angelo santo (우리를 밤새워 지켜주시리)

 

레오노라는 수도원장인 과르디아노(Guardiano: Bass) 신부에게 자기의 본명을 말하고는 남은 생애를 이곳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지내겠다고 말한다. 수도원장은 어떤 사연이 있는지 모르지만 레오노라를 긍휼히 여겨 수도원에서 한참 떨어진 어느 동굴에 홀로 머물도록 한다. 수도원장은 레오노라에게 앞으로 레오노라가 겪어야 할 힘든 생활고 시련에 대하여 얘기하며 견딜수 있겠느냐고 다짐한다. 레오노라의 아리아가 Sono giunta! Madre, pietosa Vergine(이곳에 왔도다. 오 성모님 감사합니다)이다.


수도원에 들어간 레오노라


제2막은 이탈리아 국경지대의 어느 전쟁터이다. 사랑의 상처를 입은 알바로는 페데리코 에레로스(Federico Herreros)라는 이름으로 스페인을 위해 군대에 들어간다. 아버지를 죽인 원수를 찾아 헤매던 카를로도 펠릭스 보르노스(Felix Bornos)라는 이름으로 같은 부대에 들어간다. 같은 부대에 있지만 두 사람은 서로를 알지 못한다. 서로 이름과 신분을 감추고 입대했기 때문이다. 막이 오르자 알바로 대위가 먼 하늘을 바라보며 레오노라를 그리워하는 아리아를 부른다. La vita e inferno...O, tu che in seno agli angeli(행복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산다는 것이 지옥이다. 오, 나의 사랑이여, 천사들 가운데서 일어날지어다)이다. 레오노라가 오빠 카를로에게 붙잡혀 죽임을 당한 줄로 믿고 자기도 어서 속히 레오노라의 뒤를 따라 영원한 세계로 가고 싶다는 내용이다. 갑자기 소란스런 칼부림 소리가 들린다. 카를로가 못된 도박꾼들에게 공격을 받고 있다. 자칫 칼에 찌려 쓰러질것만 같다. 알바로가 뛰어 들어가 도박꾼들을 물리치고 거의 죽음 직전에 있는 카를로를 구출한다. 서로를 모르는 두 사람은 영원한 우정을 다지면서 생과 사를 함께 하자고 굳게 맹세한다. 카를로에게는 원수가 은인으로 바뀐 셈이었고 알바로에게 있어서는 레오노라를 죽게 만들었다고 생각되는 사람을 영원한 친구로 삼게 된 것이다.

 

병영 장면

 

얼마후 전투가 벌어진다. 알바로가 큰 부상을 입고 죽음을 목전에 두게 된다. 친구가 된 카를로가 총탄을 헤치고 뛰어나가 알바로를 구하여 후방으로 데려온다. 중상을 입은 알바로의 생명은 풍전등화와 같다. 죽음을 앞둔 알바로는 몸에 지니고 있던 편지주머니를 카를로에게 건네주며 자기가 죽게 되면 이 주머니를 열지 말고 그대로 없애 달라고 부탁한다. 죽음을 앞둔 알바로와 그를 구해낸 카를로의 두 사람이 부르는 Solenne in quest'ora(엄숙한 이 순간의 약속)는 우정과 약속을 다짐하는 뛰어난 곡이다. 부상당한 알바로를 병사들이 어깨에 메고 병원 막사로 데려간다. 알바로가 죽음을 눈 앞에 두고 있으면서 부르는 아리아가 Morri! Tremenda cosa!...Urna fatale del mio destino(죽는다는 것! 이 얼마나 놀라운 생각인가. 나에게 주어진 운명이로다)이다. 한편, 알바로를 병원으로 보내고 난후 카를로는 어떤 이상한 예감에 사로잡혀 자기도 모르게 편지주머니를 열어 본다. 누이동생 레오노라의 초상화가 한 장 나온다. ‘그렇다면 이 사람이 아버지를 죽이고 사랑하는 누이동생 레오노라를 유혹하여 도망갔던 그 사람이란 말인가?’...카를로는 Ah, egli e salvo(아, 그가 살아있다)라는 유명한 아리아를 부른다. 카를로는 병사들로부터 알바로가 회복될 것이라는 말을 듣자 이제는 아버지의 원수를 갚게 되었다고 기뻐한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의 무대. 거대한 공장이 세워졌다.

              

장면은 바뀌어 전쟁터에 있는 막사이다. 천우신조로 알바로의 상처는 회복되어 간다. 카를로가 알바로를 찾아온다. 카를로는 알바로에게 언제쯤 결투할수 있는지를 묻는다. 이미 서로의 정체를 알게된 두 사람은 어쩔수 없이 숙명적인 결투를 벌인다. 그러나 병사들이 두 사람의 결투를 막는 바람에 서로 칼을 집어넣어야만 했다. 알바로는 사랑하는 레오노라의 오빠이며 자기의 목숨을 구해준 카를로와 결투를 하게 되어 몹씨 괴롭다. 알바로는 번뇌하는 중에 수도원으로 들어가 평생을 보내기로 결심한다. 날이 밝자 집시들이 타란텔라 춤을 추며 등장한다. 모두들 유쾌한 하루를 맞이하기 위해 행진곡을 부른다. Rataplan, rataplan, della gloria(라타플란: 북을 둥둥친다는 뜻)이라는 경쾌한 곡이다.  북소리 둥둥 울리면 병사들이 사기가 높아진다는 내용이다. 왜 이 시점에서 집시들이 등장하여 활기찬 모습을 보여주어야 했는지 그 이유는 확실치 않다. 다만, 집시들의 생활이란 세상사를 뒤로하고 바람이 부는 대로 물결이 움직이는 대로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너무나 숙명에만 얽매여 있는 진행에 한가닥 소나기를 뿌려주기 위함이라는 해석이다.

 

집시 여인 프레치시올라


제3막 1장은 수도원의 정원이 무대이다. 원작에는 코르도바 지방의 오르나추엘로수(Hornachuelos)에 있는 수도원이라고 되어 있다. 알바로와 카를로가 결투를 벌인 때로부터 상당한 세월이 흘렀다. 알바로가 수도승이 되고자 수도원을 찾아온다. 세상의 모든 헛된 것을 잊고자 수도원을 찾아온 것이다. 알바로가 몸을 의탁한 수도원은 레오노라가 은둔하고 있는 동굴로부터 멀지 않은 곳이다. 알바로는 라파엘이라는 이름의 수도승으로서 지낸다. 얼마후 카를로가 원수인 알바로를 추적하여 이곳 수도원까지 찾아온다. 알바로를 찾은 카를로는 다시금 결투를 요청한다. 알바로는 카를로에게 이제 자기는 모든 것을 버리고 수도승이 되어 속세에서 떠나 살기로 했으니 제발 마음을 돌려 과거의 모든 일을 용서하라고 간청한다. 알바로의 아리아가 Le minacce, i fieri accent(바람이 모든 것을 가져가기를)이다. 그러나 카를로는 알바로에게 참을수 없는 모욕을 주어 결국 칼을 뽑지 않을수 없게 만든다. 장면은 바뀌어 레오노라가 은둔 생활을 하고 있는 동굴의 밖이다. 레오노라는 자기가 아직도 알바로를 사랑하고 있음을 고백하며 괴로운 마음에 죽음으로서 평화를 찾고자 한다는 독백을 한다. 이 때 부르는 아리아가 유명한 Pace, pace, mio dio(주여 평화를 주소서)이다. 매우 격정적인 아리아이지만 평화에 대한 진실한 기원을 담은 노래이다. 무대 뒤에서는 알바로와 카를로가 벌이는 결투의 칼부림 소리가 처절하게 들린다. 마침내 알바로가 피묻은 칼을 손에 쥔채 뛰어 들어온다. 카를로를 찌른후 당황하여 그를 살려야 하겠다는 생각에 사람의 기척이 있는 동굴까지 달여온 것이다. 그곳에서 극적으로 상봉하는 알바로와 레오노라.....

 

수도원 장면


그러나 그 감격도 잠시뿐! 알바로는 레오노라에게 자기가 결투 끝에 카를로를 칼로 찔러 쓰러트렸다고 고백한다. 그말을 듣는 순간 레오노라의 심정은 찢어질것만 같다. 아, 오매불망 잊지 못하고 있는 오빠 카를로가 사랑하는 사람의 칼에 찔려 죽음을 앞에 두고 있다니! 이 또 무슨 운명의 장난이란 말인가? 레오노라와 알바로는 쓰러져 있는 카를로에게 달려간다. 한편, 카를로는 알바로의 칼에 찔린 몸을 이끌고 알바로의 뒤를 쫓아갔다가 동굴 앞에서 레오노라와 알바로가 서로 부등켜안고 있는 모습을 보고 두 사람이 이미 오래전부터 이 동굴에서 동거하고 있었다고 생각하여 레오노라가 가문의 명예를 더럽혔다는 증오의 심정에서 하나뿐인 누이동생 레오노라를 칼로 찌른다. 쓰러지는 레오노라! 그토록 만나고자 했던 레오노라가 아니던가? 알바로는 다만 비통한 운명을 저주할 뿐이다. 죽음을 앞둔 레오노라가 알바로에게 마지막 말을 전한다. ‘사랑하는 알바로! 하늘이 나에게 모두를 용서하는 능력을 주었어요. 알바로, 신께서 당신에게도 모두를 용서하는 능력(힘)을 주시기를... ’ 마침내 레오노라는 알바로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둔다. 수도원의 과르디아노 신부가 등장하여 ‘모든 것이 신의 뜻에 따라 일어난 일’이라면서 Salita a Dio(하나님 곁에 올라갔도다)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이제 모든 은혜와 원한이 끝을 맺었고 이를 위해 죽은 레오노라가 천국에 올라가기를 바라는 기도이다. 베르디는 세명의 주인공을 통하여 ‘운명의 힘’이 어디서부터 비롯하는 가를 표현코자 했다. 가장 잔혹한 운명을 겪어야 했던 레오노라, 불명예로 저주받은 운명을 받아 들여야 했던 알바로, 그리고 복수의 집념으로 운명을 거스르고자 했던 카를로! 이들은 모두 나약한 인간들이었다. 그리고 이들이 끝내 몸을 던져야만 했던 곳은 용서와 평화가 깃들여 있는 절대자 신(神)의 품안이었다.

 

전쟁터 장면

 

[한마디] 이탈리아의 성악가들은 어찌된 셈인지 '운명의 힘'이 저주를 받아 불운을 가져온다고 생각하고 있다. 루치아노 파바로티가 알바로의 역할을 맡기를 기피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1960년 3월 4일 메트로폴리탄 오페라에서는 소프라노 레나타 테발디, 테너 리챠드 터커, 그리고 미국의 바리톤인 레오나드 워렌(Leonard Warren)이 출연하여 '운명의 힘'을 공연하고 있었다. 카를로를 맡은 레오나드 워렌이 3막에서 Morri! tremenda cosa라고 시작되는 격정적인 아리아를 부를 순간이었다. 그런데 그는 아무 말도 못하고 그자리에서 가만히 서 있었다. 그러더니 가쁜 숨을 내쉬면서 '도와줘요, 도와줘요'(Help me, help me!)라고 겨우 말한후 바닥에 쓰러졌다. 잠시후그는  숨을 거두었다. 급히 무대로 올라온 의사는 급성 뇌출혈이라고 진단했다. 그날 밤 '운명의 힘'의 나머지 파트는 공연이 취소되었다. 레오나드 워렌은 겨우 48세였다. 그로부터 성악가들, 특히 이탈리아의 성악가들은 혹시 일어날지도 모르는 불운을 막기 위해 이상한 습관을 가지기도 했다. 예를 들어 프랑코 코렐리는 오페라에 출연할 때면 국부를 가리는 장치를 하고 나왔다. 1950년대로부터 80년대에 이르기까지 유명한 감독이었던 이탈리아의 안토니 스티바넬로(Anthony Stivanello)는 극장에서 소용되는 의상이나 소도구들을 대여하는 일도 했는데 '운명의 힘'에 필요한 의상이나 소도구를 대여할 때에는 절대로 만지지 않았다. 뉴저지의 베르겐 카운티에서 열린 연주회에서 어떤 테너가 Oh, tu che in seno를 부를 때에 갑자기 공연장의 전기가 나갔다. 나중에 알아보니 길건너에 있는 공동묘지에서 전기문제가 생겨서 공연장의 전기가 나갔다는 것이다.

 

[한마디 더] '운명의 힘' 서곡에 나오는 주제 멜로디는 프랑스의 영화 '장 드 플로레트'와 '마농의 샘'(Jean de Florette: Manon des Sources)에서 메인 주제로 사용되었다. 한국 영화인 '주홍글씨'(2004)에서는 첫 부분에 레오노라의 아리아인 '파체 파체 미오 디오'(Pace, pace, mio Dio)를 사용하였다. 한석규와 이은주가 주연한 영화이다.

 

피렌체 무대


[또 한마디 더] '운명의 힘'은 서막과 3막으로 구성되어 있다고 했지만 전4막으로 공연하는 경우도 있다. 그럴 경우, 각 막과 장의 배경은 다음과 같다.

 

1막: 세빌리아에 있는 레오노레 가족의 저택

2막 1장: 코르도바 지방의 오르나추엘로스 마을에 있는 어떤 주막

2막 2장: 오르나추엘로스 마을 인근에 있는 수도원

3막 1장: 이탈리아의 발레트리 부근의 숲속

3막 2장: 장교들의 막사

3막 3장: 전쟁터 부근의 진영

4막 1장: 수도원

4막 2장: 레오노라의 은둔지

 

수도원 장면

 

[명음반]

 

○ 1862년 오리지널 버전 (레오노라, 알바로, 카를로, 과르디아노 - 지휘자, 오케스트라)

- 1981년: Marina Arroyo, Kenneth Collins, Peter Glossop, Don Garrard - John Matheson, BBC Concert Orchestra and the BBC Singers

 

○ 1869년 수정 버전

- 1941년: Maria Caniglia, Galliano Masini, Carlo Tagliabue, Ebe Stignani(프레치오실라), Tancredi Pasero - Gino Marinuzzi, Orchestra Sinfonica e Coro dell'E.I.A.R di Torino

- 1954년: Maria Callas, Richard Tucker, Carlo Tagliabue, Nicola Rossi-Lemeni - Tulio Serafin, Teatro alla Scala orchestra and chorus

- 1955년: Renata Tebaldi, Mario del Monaco, Ettore Bastianini, Giulietta Simionato(프레치오실라), Cesare Siepi - Francesco Molinari-Pradelli, Orchestra dell'Accademia Nazionale di Santa Cecilia

- 1958년: Renata Tebaldi, Franco Corelli, Ettore Bastianini, Boris Christoff - Francesco Molinari-Pradelli, Orchestra and chorus of the Teatro di San Carlo, Naples

- 1962년: Gre Brouwenstijn, Jan Peerce, John Shaw, Georg Littasy - Alberto Erede, Orchestra and Chorus of the Netherlands Opera, Amsterdam

- 1964년: Leontyne Price, Richard Tucker, Robert Merrill, Giorgio Tozzi - Thomas Schippers, RCA Italiana Opera orchestra and chorus

- 1969년: Martina Arroyo, Carlo Bergonzi, Piero Cappuccilli, Ruggero Raimondi - Lamberto Gardelli, Royal Philharmonic Orchestra and the Ambrosian Opera Chorus

- 1976년: Leontyne Price, Placido Domingo, Sherrill Milnes, Fiorenza Cossotto(프레치오실라), Bonaldo Giaiotti - James Levine, London Symphony Orchestra and the John Alldis Choir

- 1985년: Rosalind Plowright, Jose Carreras, Renato Bruson, Agnes Baltsa(프레치오실라), Paata Burchuladze - Giuseppe Sinopoli, Philharmonia Orchestra and the Ambrosian Opera Chorus

- 1986년: Mirella Freni, Placido Domingo, Giorgio Zancanaro, Dolora Zajick(프레치오실라), Paul Plishka - Riccardo Muti, Teatro alla Scala orchestra and chorus

- 2006년: Susanna Branchini, Renzo Zulian, Marco Di Felice, Paolo Rumetz - Lukas Karytinos, Orchestra Filarmonia Veneta 'G.M. Malipiero' and chorus of the Teatro Sociale di Rovigo

 

[레오노라를 맡았던 프리마 돈나들]

   

마르티나 아로요                              마리아 카닐리아                             마리아 칼라스

   

레나타 테발디                                     그레 브라우웬스틴                        레온타인 프라이스

   

미렐라 프레니                                     로잘린드 플로라이트                      수잔나 브란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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