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 오페라 집중 소개/필견의 33편

일 트로바토레 - 베르디

정준극 2007. 11. 27. 15:35

일 트로바토레

(Il Trovatore)

G. Verdi

 

일 트로바토레(음유시인: The Troubadour)는 베르디의 18번째 오페라로서 이탈리아어 대본은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Antonio Garcia Gutierrez: 1812-1884)가 1836년에 내놓은 희곡 El Trovador(음유시인)을 바탕으로 엠마누엘레 바르다레(Emmanuele Bardale)와 살바도레 캄마라노(Salvadore Cammarano: 1801-1852)가 공동으로 완성했다.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는 19세기 스페인을 대표하는 가장 위대한 극작가였다. 그가 1843년에 발표한 Simon Bocanegra(시몬 보카네그라)는 나중에 베르디가 같은 타이틀의 오페라로 만들기도 했다. 살바도레 캄마라노는 베르디와 많은 인연이 있는 대본가였다. 베르디의 '알지라'(Alzira), '레냐노 전투', '루이자 밀러'의 대본을 썼다. 일 트로바토레의 초연은 1853년 1월 19일 로마의 아폴로극장(Teatro Apollo)에서 있었다. 아폴로 극장은 베르디 당시에는 로마에서 이름난 극장이었으나 1925년 도시계획으로 철거되어 지금은 그 자리에 기념비만 한가롭게 서 있다.

 

 

아폴로극장 터에 있는 기념비 (일 트로바토레가 초연되었다는 설명문이 적혀있다.) 오른쪽은 철거하기 전의 아폴로극장.

 

베르디는 로마에서의 초연이 있은지 4년후 파리 초연을 위해 스코어의 일부를 수정하였고 프랑스 관객들을 위해 중간에 발레를 추가하였다. 이를 파리버전이라고 부른다. 파리버전의 제목은 Le trouvere라고 했다. 베르디의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는 너무나 유명하기 때문에 영화나 연극에서도 오페라의 장면이 많이 인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막스 브라더스(Max Brothers)의 영화 A Night at the Opera(오페라에서의 하루밤)에는 일 트로바토레에서 집시들의 흥겹고 소란한 장면이 음악과 함께 인용되어 나오며 또 루키노 비스콘티(Luchino Visconti)의 1954년도 영화 Senso(센소)에는 도입부에 베니스의 라 페니체(La Fenice)극장에서 공연되는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장면이 그대로 소개되었다. 일반적으로 일 트로바토레를 무대에 올리는 일은 다른 오페라, 예를 들어 아이다나 가면무도회, 돈 카를로에 비하여 무대 장치등에 별로 어려운 일이 없다. 그래서 엔리코 카루소는 '일 트로바토레를 공연하기 위해서는 뛰어난 성악가 네명만 있으면 된다!’고 말했을 정도이다. 루나백작, 레오노라, 만리코, 아주체나를 말한다.


 

'일 트로바토레'의 원작자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왼쪽)와 대본가 살바도레 캄마라노(오른쪽)


만년의 베르디에게 어느날 누가 이렇게 물었다. ‘선생님, 선생님의 여러 오페라 작품중에서 어떤 작품이 가장 훌륭하다고 생각하십니까?’....베르디는 한참 후에 이렇게 대답했다. ‘아마추어가 보면 라 트리바이타가 제일이지요. 전문가의 입장에서 본다면 리골레토가 제일입니다.’ 이렇게 말한 베르디는 잠시 더 생각하더니 ‘그래도 역시 일 트로바토레를 빼놓을수 없지요’랴고 말했다고 한다. 일 트로바토레는 라 트라비아타와 함께 베르디의 수많은 오페라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작품중 하나이다. 일 트로바토레는 라 트리비아타의 남성형이라는 얘기도 있다. 장쾌하면서도 감미로운 멜로디, 스토리의 전개에 따른 드라마틱한 음악처리... 정말 감동적인 작품이 아닐수 없다. 베르디가 오페라 작곡가로서 이름을 떨치기 시작한 것은 리골레토에서부터였다. 리골레토의 성공으로 자신의 위치를 확고하게 만든 베르디는 곧이어 일 트로바토레와 라 트라비아타를 같은 해에 발표함으로서 모든 사람들을 열광시켰다. 왜 열광했던 것일까? 지금까지 경험하지 못했던 인간적인 드라마를 보여 주었기 때문이다.


만년의 베르디


베르디 이전의 이탈리아 작곡가들, 다시 말하여 몬테베르디로부터 시작하여 벨리니, 로시니, 도니제티에 이르기까지의 이탈리아 오페라는 드라마틱한 음악적 처리보다는 그저 아름답고 단순한 노래에 많은 비중을 둔 것이었다. 그러나 베르디는 드라마틱한 내용에 음악적인 감동을 융합함으로서 전혀 새로운 스타일의 오페라를 창조하였다. 주인공의 설정만해도 그렇다. 베르디 이전의 오페라들은 르네상스라는 미명아래 그리스의 신화나 영웅담을 대본으로 삼은 것이 대부분이었다. 몬테베르디의 오르페오는 대표적인 예이다. 신화나 영웅담을 주축으로 한 비현실적인 내용의 오페라에서는 에로스적인 연애를 추구하는 젊은 남녀, 또는 귀족이거나 왕족이 주인공으로 설정되기가 십상이었다. 그러나 휴매니티를 기조로 하는 베르디의 경우에는 달랐다.


레오노라 역의 마리아 칼라스

 

베르디가 추구했던 인간애는 어떤 것인가? 자기를 희생함으로서 숭고한 사랑을 완성하는 것이다. 베르디는 부유하고 권세 있는 사람들의 허구적인 사랑을 경멸했다. 그의 작품에는 오히려 비천하고 멸시받는 사람들의 순수한 사랑이 진정한 의미를 지니면서 찬란하게 빛나고 있다. 우리는 리골레토와 일 트로바토레를 통하여 그런 점을 쉽게 찾아 볼수 있다. 리골레토에서는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를 받는 어릿광대 꼽추가 주인공으로 등장한다. 리골레토가 단순히 딸을 농락한 사람에 대한 복수에 초점을 맞추어 있다면 별다른 의미가 없다. 딸에 대한 아버지로서의 희생적인 사랑, 그리고 질다가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자기를 대신 희생하는 것이 초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오페라 리골레토가 생명력을 지닐수 있었던 것이다. 일 트로바토레에서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의 역할이 중요하다. 일 트로바토레가 천대받는 집시 여인의 뼈에 사무친 복수극이라면 별다른 의미가 없다. 아주체나가 자기를 희생하는 초연한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그리고 레오노라 역시 자기를 희생하는 지고의 사랑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에 이 오페라가 생명력을 지니면서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다. 일 트로바토레에는 두가지 형태의 놀라운 사랑이 표현되어 있다. 하나는 자식에 대한 부모의 무조건적인 사랑이며 다른 하나는 부모에 대한 자식으로서의 끊을수 없는 사랑이다. 어느 것이 더 중요하며 어느 것이 더 숭고할까? 대답은 각자의 가치관에 따라 내려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감옥에서 아주체나가 루나백작에게 소리친다. '보라 네가 네 동생을 죽였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에는 제1막 결투, 제2막 집시, 제3막 집시의 아들, 제4막 처형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이렇듯 각 막마다 부제를 붙인 것도 특별한 사항이다. 베르디는 스페인의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Antonio Garicia Gutierrez)의 원작 El Trovador를 몇 번씩이나 읽고 ‘매우 감동적인 내용이다. 그리고 상황의 설정이 대단히 강렬하다’고 말했다. 트로바토레라는 단어는 원래 탐험가, 또는 발견자라는 뜻이다. 중세에는 이 나라에서 저 나라로, 이 성에서 저 성으로 다니면서 주로 로맨틱한 서사시를 루트(기타와 같은 악기) 반주에 맞추어 노래를 하거나 낭송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이들은 이곳저곳의 소식도 전하는 역할을 했기 때문에 ‘새로운 소식의 전달자’라는 의미에서 트로바토레라고 불렀던 것이며 나중에는 ‘방랑하는 노래시인’ 즉 음유시인으로 부르게 되었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시기는 15세기, 장소는 스페인의 비스케이(Biscay)와 아라곤(Aragon)이다. 무대의 중심이 되는 루나백작의 성은 사라고사(Zaragoza)에 있는 알랴페리아(Aljaferia) 궁전으로 되어 있다. 현재 알랴페리아 궁전의 한쪽에 있는 높은 탑은 트로바토레 타워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 1836년 안토니오 가르시아 구티에레즈의 로맨틱 드라마 El trovador(엘 트로바도르)가 나온 이후 그런 이름을 붙었다고 한다.
                                   

루나백작의 병사들에게 붙잡힌 아주체나.


막이 오르기 전의 이야기는 아라곤 공국에서부터 시작한다. 아라곤 공국의 선대(先代) 루나백작(Count di Luna: Bar)에게는 두 아들이 있었다. 늙은 백작은 어린 둘째 아들을 더 귀여워했다. 어딘지 병약한 구석이 있기 때문에 측은해서였다. 어느날 어떤 수상한 집시 노파가 백작의 성에 들어와 그 어린 아들의 방을 기웃거린 일이 있었다. 그런 이후로 어린 아들의 몸은 이상하게도 점점 쇠약해졌다. 선대 루나백작은 이를 수상한 집시노파의 탓으로 돌리고 병사들을 시켜 그 집시 노파를 잡아 들여 마녀라는 누명을 씌어 화형에 처했다. 마침 그날밤 어린 공자가 종적도 없이 유괴되었다. 그리고 집시 노파를 화형에 처하고 난후의 잿더미에서 어린아이의 유골이 발견되었다. 사람들은 집시노파가 어린 공자를 유괴하여 몰래 옷 속에 감추고 있다가 함께 불길 속에서 함께 죽었다고 믿었다. 그로부터 오랜 세월이 흘렀다. 선대 백작의 큰 아들이 루나백작으로서 작위를 이어받아 루나성주가 되었으며 이와 함께 아라곤공국 군대의 사령관이 되었다. 당시 아라곤공국은 이웃 비스케이공국과 영토 문제를 놓고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전투는 소강상태에 들어갔지만 양측 모두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간혹 무술시합을 열어 병사들의 사기를 북돋기도 하고 긴장감을 달래기도 하였다.

 

대장간의 합창

 

어느날 아라곤 궁성에서 예에 의하여 무술시합이 있었다. 만리코(Manrico: Ten)라는 이름의 늠름한 청년기사가 무술시합에 출전하여 용감한 기상을 보여주었다. 모두들 이 미지의 기사에 대하여 찬사를 보냈다. 귀부인들의 찬사가 특별했다. 그 중에는 레오노라(Leonora: Sop)라고 하는 지체 높은 귀부인도 있었다. 아라곤 공국의 공주를 곁에서 시중들고 있는 귀부인이다. 레오노라는 만리코를 언뜻 보자 알지못할 운명의 힘에 이끌린듯 그를 사모하게 된다. 얼마후 만리코는 음유시인(트로바토레)으로서 아라곤 궁성을 방문한다. 만리코는 훌륭한 음성으로 영웅적인 서사시를 노래하여 모두의 찬사를 받는다. 만리코는 그 자리에서 어떤  고귀한 부인을 만나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사랑의 심연으로 빠져 들어간다. 레오노라였다. 만리코는 밤중에 레오노라의 방 발코니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며 사랑을 호소한다. 레오노라도 며칠전 무술시합에서 만리코를 본후 사랑의 감정을 키워왔기에 만리코의 세레나데에 기쁨으로 마음이 설레인다. 이렇게 하여 만리코와 레오노라의 숙명적인 사랑이 시작된다.


만리코 역의 호세 카레라스


얼마후 아라곤과 비스케이가 다시 전투를 벌인다. 비스케이공국 인근의 숲에서 집시들과 함께 자란 만리코는 집시 장정들을 이끌고 비스케이공국의 군대에 합류한다. 집시들은 아라곤의 루나백작이 오래전부터 자기들을 멸시하고 억압해 왔기 때문에 비스케이 편에 서기로 한 것이다. 만리코가 비스케이 편의 선두에 서게 된데에는 어머니 아주체나(Azucena: MS 또는 Cont)의 간절한 소원도 크게 작용했다. 아주체나에게 있어서 아라곤의 선대 루나백작은 아주체나의 어머니를 마녀로 몰아 불에 태워 죽인 철천지원수였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어머니를 잊지 못하는 집시 여인 아주체나의 가슴속에는 아라곤에 대한 복수의 불길이 오래동안 타오르고 있었다. 오페라 일 트로바토레의 스토리가 한많은 여인의 복수극으로 종결된다면 일반적인 드라마와 다를바가 없다. 하지만 운명의 여신은 짓궂은 반전(反轉)을 선호한다.

 

만리코와 아주체나


배경 이야기는 다시 집시 노파의 화형 장면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선대 루나백작에게 체포당한 집시 노파에게는 딸이 하나 있었다. 아주체나(Azucena)이다. 아주체나에게도 마침 어린 딸이 하나 있었다. 아주체나는 어머니 집시 노파가 선대 루나백작의 병사들에게 체포된후 마녀로 낙인이 찍혀 화형을 당하게 되었다는 무서운 소식을 듣자 미칠것만 같았다. 아주체나는 자기 어머니를 화형시키는 날 밤에 몰래 성안으로 숨어 들어가 자고 있던 선대 루나백작의 작은 아들을 아무도 몰래 납치하였다. 선대 루나백작의 작은 아들과 어머니인 집시 노파의 목숨을 바꿀 심산이었다. 그러나 그러기도 전에 이미 화형은 시작되었다. 집시 노파는 죽어가면서 아주체나의 이름을 부르며 루나백작에게 복수할 것을 간절히 당부하였다. 아무런 죄도 없는 자기 어머니가 불길 속에서 비명을 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보고 있던 아주체나는 순간 이성을 잃었다. 아주체나는 구경꾼들 틈에 섞여 있다가 기회를 엿보아 납치한 선대 루나백작의 작은 아들을 불길 속에 던져 버렸다. 원수는 원수로 갚아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그러나 이것이 무슨 운명이 장난이란 말인가? 아주체나는 정신이 황망한 상태에서 자기도 모르게 품에 안고 있던 자기의 딸을 선대 루나백작의 어린 아들 대신에 불길 속으로 던졌던 것이다. 돌이킬수 없는 엄청난 실수였다. 그로부터 모든 것을 체념한 아주체나는 선대 루나백작의 어린 공자를 자기 아들로 삼아 온갖 사랑을 쏟으면서 키웠다. 그가 다름아닌 만리코이다. 한편, 선대 루나백작은 세월이 흘렀지만 자기의 어린 아들이 어딘가는 살아 있을 것으로 믿어 큰아들에게 무슨 수를 써서라도 그 집시를 찾으라고 당부하고 숨을 거두었다. 사람들은 선대 루나백작이 화형에 처한 집시 노파의 저주가 효험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억울하게 화형당한 어머니의 복수를 다짐하는 아주체나


훌륭한 청년으로 성장한 만리코는 예술에 재능이 있어서 노래를 잘 불렀으며 무술에 있어서도 뛰어난 실력을 보여 주었다. 만리코는 아라곤의 무술시합에 나가서 우승을 하며 음유시인으로서 아라곤 궁성에 들어가 로맨틱한 서사시를 노래로 부르다가 레오노라를 보고 운명적인 사랑을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앞에서 설명한바 있다. 만리코의 형인 선대 루나백작의 큰 아들은 역시 루나백작이라는 타이틀로서 루나성과 영지를 다스리게 되었다. 그러다가 비스케이공국과 아라곤공국과의 전투가 일어나자 아라곤공국 군대의 사령관으로서 전선에 나서게 되었다. 전선은 바로 루나백작의 성(城)이 있는 곳이었다. 루나백작은 오래전부터 레오노라를 사랑해 왔다. 이같은 모든 스토리는 오페라에 표현되어 있지 않다. 다만, 아주 간략하게 1막에서 루나성의 수비대장인 페란도가 부하 병사들에게 과거에 어떤 끔찍한 일이 있었는지 설명해 주는 대사가 고작이다. 아무튼 지금까지의 배경 스토리를 요약하면 현재의 루나백작과 만리코가 형제간이라는 것이며 아울러 레오노라를 가운데 두고 서로 라이벌이란 것이다. 그리하여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스토리가 시작된다. 막이 오르기 전에 북소리와 함께 시작되는 도입부는 이 오페라의 비극적인 내용을 압축하여 암시해 주는 것이다.

 

만리코와 레오노라


제1막의 무대는 루나백작 성의 수비대들이 있는 곳이다. 수비대장인 페란도(Ferrando: Bass)가 부하들에게 성을 더욱 철저히 지키라고 명령한다. 페란도는 선대 루나백작 때부터의 가신(家臣)이다. 한편 젊은 루나백작은 레오노라가 머물고 있는 방의 창문 아래를 서성거리면서 무언가 초조한 기분이다. 루나백작은 아라곤 공주의 시녀인 지체 높은 레오노라를 오래전부터 사모해 왔다. 루나백작은 레오노라가 근본도 모르는 어떤 음유시인(트로바토레)에게 마음을 주고 있음을 알고 질투에 불타있다. 수비대장 페란도는 병사들이 잠들지 않고 깨어 있도록 하기 위해 루나백작의 동생에 대한 슬픈 사연을 이야기 해준다. 마침 추위 때문에 피운 화톳불이 훨훨 타오르고 있다. 페란도의 아리아가 Di due fiigli vivea padre beato(두 아들이 있었다네)이다. 병사들의 합창이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하여 가슴 두근거리게 만든다. 

장면은 바뀌어 아라곤 공주 궁성의 정원이다. 레오노라는 시녀 이네스(Ines: Sop)에게 이름모르는 음유시인을 사랑하고 있다고 털어 놓으며 Tacea la notte placida(조용하고 평화스러운 밤)이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매우 서정적인 아리아이다. 자정의 종이 울린다. 레오노라는 오늘 밤에도 그 음유시인이 찾아 주기를 기다린다. 한편 레오노라를 사랑하고 있는 루나백작은 밤중에 미지의 젊은이가 레오노라의 창문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는 것을 알고 숨어 기다리고 있다가 그 젊은이의 정체를 밝히고 결판을 낼 심산으로 있다. 잠시후 과연 음유시인(트로바토레)이 등장하여 레오노라의 창문 아래에서 Desserto sulla terra(이 세상에서 홀로)라는 아리아를 부른다. 대단히 아름답고 우수에 넘친 곡이다. 숨어 있던 백작은 참을수 없어서 뛰쳐나와 미지의 음유시인에게 칼을 빼어들고 ‘누군데 감히 한밤중에 고귀하신 레오노라의 창문 아래에서 세레나데를 부르느냐?’면서 칼을 빼어 든다. 백작과 음유시인은 결투를 벌인다. 이 음유시인(트로바토레)이야 말로 죽었다고 믿었던 백작의 친동생이었으나 피차 알 리가 없다. 결투에서는 음유시인이 루나백작을 제압하여 바야흐로 칼로 찔러 죽이려는 순간이다. 서로의 눈빛! 음유시인 만리코는 루나백작의 눈빛을 보자 어쩐 일인지 칼을 들어 차마 찌를수가 없다. 만리코는 자비를 베풀어 백작을 살려준다.
                                   

라 스칼라 무대. 레오노라는 카르멘 자나타시오. 수녀원에 있는 레오노라를 만리코가 구출코자 한다.

 

제2막은 아주체나 모자가 살고 있는 집시 캠프. 아라곤과 비스케이와의 전투가 다시 불붙는다. 전투에 참가했던 만리코가 중상을 입고 쓰러진다. 아주체나가 전쟁터를 헤매며 만리코를 극적으로 찾아내어 집시 마을의 집으로 데려온다. 만리코는 아주체나가 정성으로 보살핀 덕분에 건강을 회복한다. 막이 오르면 이른 아침, 집시들이 하루 일을 시작하게 위해 부산하게 움직인다. 이 장면에서 유명한 ‘대장간의 합창’(Anvil Chorus 또는 Zingarella)이 힘차게 울려 퍼진다. Vedi le fosche notturne(보라, 어두운 구름이 사라진다)로 시작하는 합창이다. 베르디의 오페라에 나오는 가장 유명한 합창중 하나이다. 아주체나는 타오르는 모닥불을 바라보면서 그 옛날 자기 어머니를 집어 삼킨 무서운 불길을 회상한다. 이제 아주체나도 노파가 되었다. 이때 부르는 아주체나의 아리아가 Stride la vampa(소름끼치는 불길이 치솟는데)이다. 메조소프라노(또는 콘트랄토)의 아리아로서는 매우 유명한 아리아이다. 비통하면서도 열정에 넘쳐 있는 감동적인 아리아이다. 집시들이 자리를 뜨자 아주체나는 만리코에게 자기가 친어머니가 아니라고 고백하면서 그 옛날 있었던 참혹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의 아들이 아니란 말입니까?’...절규하는 만리코! 만리코는 원수인 루나백작이 자기의 친형이라는 사실을 비로소 알게 된다.

 

아주체나는 만리코가 분명히 자기 아들이며 어릴때부터 얼마나 사랑과 정성을 쏟으면서 키워왔는지를 얘기한다. 만리코는 아주체나에게 오직 아주체나만이 자기의 어머니임을 강조하며 어린 시절부터 지금까지 성실한 사랑으로 자기를 키워왔음을 강조한다. 만리코는 얼마전 레오노라의 창문 밖에서 루나백작과 결투할 때 루나백작이 자기 발아래 쓰러졌으나 무언가 거스를수 없는 힘이 그를 죽이지 못하도록 한 것 같다고 얘기하며 그것이 바로 자기와 피를 나눈 형이기 때문이 아니겠냐고 말한다. 이 소리를 들은 아주체나는 아들 만리코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극심한 불안감에 싸여 다시는 절대로 원수를 살려주지 말라고 당부한다. 만리코와 아주체나는 Mal reggendo all aspro assalto(나의 자비 앞에 원수가 있도다)라는 듀엣을 부르며 루나백작이 원수인 것을 다짐한다. 그때 전령이 들어와 아라곤과의 전투가 다시 벌어졌다고 전한다. 한편 만리코가 전투에서 죽었다는 소문을 들은 레오노라는 절망가운데 모든 세상일을 잊고자 수녀원으로 들어가기로 결심한다. 이 소식을 들은 루나백작은 레오노라가 수녀원에 들어가기 전에 납치하려는 계획을 세운다. 그러나 만리코가 이런 상황을 한발 앞서서 파악하고 병사들과 함께 수녀원으로 달려가 레오노라를 납치의 위험으로부터 구출하여 비스케이공국의 카스티요(Castillo) 성으로 안전하게 데려온다.

 

루나백작에게 다시 잡힌 레오노라


제3막은 루나백작의 진영이다. 만리코가 레오노라를 수녀원에서 구출하여 적국인 비스케이공국의 카스티요 성에 데려다 놓았다는 소식을 들은 백작은 분노하여 곧장 카스티요 성을 포위하고 결전을 준비한다. 막이 오르면 아라곤의 병사들이 ‘진군나팔 소리 울릴 때’라는 합창을 힘차게 부른다. 잠시후 병사들이 근처를 배회하고 있는 수상한 집시 노파를 체포하여 루나백작 앞으로 끌고 온다. 아주체나이다. 루나백작은 아주체나가 그 옛날 마녀로 판결받은 집시 노파를 화형에 처할 때에 어린아이를 불길 속에 집어 던진 바로 그 여인일 것이라고 의심한다. 병사들이 아주체나를 거칠게 다루며 자백을 강요한다. 아주체나가 무심코 만리코의 이름을 외치며 도움을 구하자 루나백작은 ‘그래,  네가 만리코의 어미였구나! 그래! 너를 통해 만리코에게 복수하겠다!’라고 소리친다. 아주체나는 아무래도 만리코가 자기 어머니의 원수를 직접 갚아주지 못할것 같아 직접 원수를 갚기 위해 아라곤 진지를 배회하며 기회를 찾고 있었던 터였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체포되자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복수를 하지 못하고 죽게 될것 같아 절망중에 있다. 

장면은 바뀌어 카스티요 성의 어떤 방. 아라곤 군대의 공격이 아침까지는 있을 것 같지 않자 만리코는 그 시간을 이용하여 레오노라와 결혼식을 올리려고 한다. 그러나 레오노라는 떨리고 두려운 나머지 행복한 신부(新婦)의 모습이 아니다. 아라곤을 배반한 심정을 억누를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 레오노라를 만리코가 부드럽게 위로한다. Amor, sublime amore(사랑이여. 성스러운 사랑이여)라는 감미로운 아리아이다. 만리코는 원래 음유시인 출신이므로 노래 하나는 기가 막히게 잘 부른다. 만리코의 노래로 인하여 레오노라도 마음의 평정을 찾은것 같다. 성당의 올갠 소리가 은은하게 울려 퍼진다. 이제 곧 결혼식이 시작될 참이다. 이때 만리코 휘하의 루이즈(Ruiz: Ten)가 뛰어 들어와 루나백작이 아주체나를 체포하여 화형에 처하려 한다는 놀라운 소식을 전한다. 만리코는 어머니를 구하기 위해 결혼식을 미루고 병사들을 독려하여 루나 진영을 공격키로 한다. 만리코가 부르는 Di quella pira(떨어라! 너 폭군: 타오르는 불길)은 대단히 극적인 아리아이다.

 

오스트리아 브레겐츠 호수무대. 일 트로바토레의 무대를 거대한 공장으로 꾸몄다. 집시들의 공장이다.

                                    

제4막. 무대의 한쪽에는 성당이 다른 한쪽에는 높은 담장의 감옥이 보인다. 아주체나를 구하려던 만리코 부대의 전투는 실패로 돌아간다. 만리코는 체포되어 아주체나와 함께 루나백작의 감옥에 갇힌다. 어두컴컴한 감옥으로 레오노라가 찾아온다. 레오노라는 D’amor sull'ali rosee(사랑의 장밋빛 날개에)라는 아리아를 부르며 만리코와의 짧은 사랑을 주마등처럼 회상한다. 레오노라는 루나백작에게 자기 자신을 희생하고 만리코의 목숨을 구하려고 온 것이다. 감옥의 작은 창문을 통해 만리코의 노래가 흘러나온다. Ah, che la morte(아, 저 죽음)이라는 아리아이다. 무대 한편에서 성당의 신부들이 부르는 단조로운 미사곡 Miserere(주여, 긍휼히 여기소서), 레오노라의 절규, 만리코의 애끓는 호소, 그리고 꾹꾹 억누르는 듯한 오케스트라의 음향! 이런 모든 것들이 혼합되어 절묘한 분위기를 조성해 주고 있다.

레오노라는 루나백작에게 만리코를 살려주는 조건으로 백작의 사랑을 받아들이겠다고 약속한다. 백작은 이제야 레오노라가 자기의 것이 되었다고 생각하고 자못 기뻐하며 만리코를 석방하겠다고 약속한다. 사랑하는 만리코의 석방을 약속받은 레오노라는 비록 루나백작에게 자기를 바치겠다고 말을 했지만 마음에도 없는 사랑을 할수 없다고 생각하여 죽음으로서 만리코와의 사랑을 지키기로 결심한다. 레오노라는 미리 반지 속에 감추어두었던 독약을 마신다. 다시 장면이 바뀌어 감옥이다. 레오노라가 마지막으로 만리코를 보려고 감옥 안으로 찾아온다. 그러나 레오노라는 이미 독약이 온 몸에 퍼져 죽음을 눈앞에 두고 있다. 레오노라는 만리코의 팔에 안겨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결혼할수 없다고 말한다. 마침 감옥에 들어선 루나백작이 이 모습을 보고 분노하여 당장 만리코를 처형하라고 명령한다. 지친 몸으로 감옥의 다른 한쪽에 쓰러져 있던 아주체나가 깨어나 만리코를 찾는다. 아주체나는 레오노라가 만리코의 팔에 안겨 죽어가고 있는 참담한 모습을 본다. 이 장면에서 4명이 부르는 쿼테트가 Prim a che d'altri vivere(다른 사람으로 살기보다는)이다. 백작은 아주체나를 감옥의 작은 창문으로 데려가 만리코의 처형장면을 보도록 한다. 총에 맞아 쓰러지는 만리코! 아주체나는 절망과 회한, 그러나 아주체나는 어머니에 대한 복수가 성취되었다는 감정에 북바쳐 루나백작에게 Egli era tuo fratello!(그는 당신의 동생이다)라면서 '아, 이제야 어머니의 복수를 했다!’고 소리친후 그의 발아래 쓰러져 숨을 거둔다. 모든 사실을 알게된 백작이 회한에 넘쳐 절규하는 가운데 막이 내린다. 


만리코의 팔에 안겨 숨을 거두는 레오노라를 바라보는 루나백작

 

일 트로바토레의 음악 하이라이트

 

- 1막 수비대장 페란도의 아리아

Di due figli vivea padre beato - 사람 좋으신 루나백작은 행복하게 살았다네 두 아들의 아버지 (The good count di Luna lived happily. The father of two sons)

- 1막 레오노라의 아리아

Tacea la notte placid....Di tale amor - 아름답고 적막한 밤...사랑은 어떤 글로도 표현하기 어렵다네 (The beautiful night lay silent...A love that words can scarecely describe)

- 1막 만리코의 아리아

Deserto sulla terra - 나 홀로 이 세상에 (Alone upon this earth)

- 1막 레오노라의 아리아

Di geloso amor sprezzato - 불길같은 사랑의 질투 (The fire of zealoous love)

 

- 2막 집시들의 합창(대장간의 합창)

Vedi le fosche notturne - 보아라, 하늘이 밤의 어두운 옷을 벗도다 (See, the endless sky casts off her sombre night garb)

2- 막 아주체나의 아리아

Stride la vampa - 울부짖는 불길 (The flames are roaring)

2막 아주체나의 아리아

Condotta ell'era in ceppi - 그들은 어머니를 묶어서 끌고 갔도다 (They dragged her in bonds)

- 2막 아주체나와 만리코의 듀엣

Mal reggendo - 아무런 도움도 되지 못하였다 (He was helpless under my savage attack)

- 2막 루나백작의 아리아

Il balen del suo sorriso...Per me ora fatale - 그대 웃음의 빛...나의 삶의 운명의 시간 (The light her smile...Fatal hour of my life)

 

- 3막 합창

Or co'dadi ma fra poco - 자 주사위 놀이를 하세 (Now we play at dice)

- 3막 만리코의 아리아

Ah si, ben mio coll'essere - 아 그렇다 내 사랑 그대의 것 (Ah yes, my love, in being yours)

 

- 4막 레오노라의 아리아

D'amor sull'ali rosse - 사랑의 장밋빛 날개를 타고 (On the rosy wings of love)

- 4막 합창과 듀엣

Miserere - 주여 불쌍히 여기소서 (Lord, they mercy on this soul)

- 4막 레오노라와 루나백작의 듀엣

Mira, d'acerbe lagrima - 보라 이 쓰라린 눈물을 (See the bitter tears I shed)

4막 듀엣(아주체나, 만리코)

- Ai nostri nonti ritorneremo - 우린 다시 산으로 돌아가리 (Again to our mountains we shall return)

- 4막 쿼텟(레오노라, 루나, 만리코, 아주체나)

Prima che d'altri vivere - 다른 사람으로 살련다. (Rather than live as another's)

- 4막 아주체나의 아리아

Egli era tuo fratello - 그는 그대의 동생 (He was your brother. You are avenged. Oh, mother!)

- 4막 루나 백작의 아리아

E vivo ancor! - 그리도 나는 살아야 하는가. (And I must live on)